세상 밖, 그 찬란한 꿈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나보다 더 나의 가족을 사랑했어, 내 친구들도, 선생님도, 그리고 같이 어른이 되어야 했던 나의 옛사랑도. 물론 지금도 무척이나 사랑하지. 그래서 새로운 인연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심해. 진심으로 대하지 못해서 언제나 곤혹이야.
오래된 걸 잘 버리지 못해. 컴퓨터, 책상, 의자, 핸드폰 심지어 볼펜 한 자루까지도. 모두 다 금세 정이 들어버려서, 쉽게 정을 떼어내듯 과감한 행동을 하지 않아 나는. 남들보다 유독 정이 넘쳐나서 그렇다고 생각해. 마음이 정말 약하거든 내가.
매일 세상이 궁금해 항상 꿈을 꿨어. 상상을 했지.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어. 뿐만 아니라 되고 싶은 것들도, 정말 넘쳐났지.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혼자서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어른. 그래, 그땐 부모님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 같아. 물론 지금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절로 감탄사가 나오지만 말이야.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되고 보니, 어렸을 때와 다를 게 없는 거야. 아니 사실 내가 무능력하단 걸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지. 이력서. 그게 참 사람 초라하게 만들더라. 내가 너무 오래되고 안정된 어떠한 것들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넓은 세상을 꿈꾸며 그 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나를 상상했지. 얼마나 좋아! 천재가 나타났다는 둥, 이 세상의 둘도 없는 인재라는 둥 하면서 나를 모두가 우러러 보기도 해. 오늘만 사는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좀 더 프로페셔널해 보이기도 하면서 무진장 멋져 보여. 당장 알아봤지. 그런데 그러려면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야. 다들 그렇게 했대. TV에 나오는 슈퍼 A급 K모양도 원래는 광주 우물 안 출신인데 나오려고 무진장 애를 썼대. 그래서 생각했지. 나가기만 하면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구나 라고. 어떻게 고민 따위를 해봤겠어? 무작정 나오기로 결심했지. 엄마, 아빠, 친구들 심지어 내 방에 있는 모든 가구들까지 나를 뜯어 말렸어. 근데 어쩌겠어.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는걸.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모두가 나를 말릴 수 없었어. 훨씬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엄마는 나를 보내고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대… 정말 불효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어.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내가 한 행동이 정말 잘했다 싶은 거야. 엄마를 위해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버렸으니까.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서 우물 밖을 먼저 나온 거지, 내가.
그렇게 나를 위해 나는 우물을 넘었어. 내 두 팔과 두 다리로. 사실 숨은 공신이 더 컸지. 우리 부모님 어깨가 나를 지탱해줬거든. 무거운 나를 들어 올리느라고 무진장 고생했을 거야. 나는 그걸 알면서도 부모님의 어깨를 밟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님도 사랑하는 걸. 그래서 나보다 더 가슴 아플 부모님을 스스로 밟았어. 눈을 질끈 감고서.
사진출처: 히죽히죽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