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기와 알아채기에 관하여
“힘내”라는 말은 분명 악의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은 묘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힘이 든 사람에게 “네가 우울한 것은 네가 힘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가끔 사람이 “힘을 내어도” 안될 때가 있다. 아주 깊은 감정의 구렁텅이란, 그 끝을 붙잡고 애를 써도 결국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영화 속의 거대한 사막 벌레 같은 것일 때가 있다.
그런 감정에 휩싸인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고민 없이 쉬운 말일 수 있다. 고민 없이 쉬운 말은 끝내 듣는 사람에게도 와닿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예의바름을 쉬이 표현할 뿐, 듣는 사람의 감정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렇게 감정의 끝에까지 선 사람에게는,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너의 감정이 무엇이냐고, 이야기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더 물어봐 준다.
“너는 그 일로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그럴 때 있지“
라고 비난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내 감정이 비난받지 않고, 누군가에게 공감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참 쉽게 나오는 “힘내” 보다 훨씬 부지런한 위로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가 하염없이 무너진 순간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힘내”라고 이야기해도 전혀 와닿지 않는다. 혹은 감정에 휘둘린다면서 스스로를 자책한다면 일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나와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나 스스로’가, 감정에 휩싸여 어떻게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나는 우선 감정을 알아채 줘야 한다. 어떤 일로 그렇게 느꼈는지를 혼잣말로써 정리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를 혼잣말이나마 하기 어렵다면, 편하게 글로라도 쓸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시간을 줘 본다.
그렇게 솔직한 나의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들어주는 순간이 온다면, 그제야 상처 입은 동물처럼 같이 날뛰던 내 마음은 평온해지고는 한다.
사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위로받고 싶었던 내 스스로가,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줬기 때문에, 나는 부지런하게 위로받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 감정의 절벽에서 한걸음 뒤로 빠져 돌아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