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사나운 날을 끝내는 나만의 방법
오늘 참 일진이 좋지 않다.
직장에서는 부서의 이동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서운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하루를 시작했다. 급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업무가, 일과중에 마무리되지 못했다. 게다가 캐나다 여행 때 면세점에서 구입했던 카메라가 아예 켜지지 않는데, 환불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여러가지 좋지 않은 일만 겹친 하루였다.
한숨을 푹 쉬며 집으로 들어오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오늘 무엇이 문제였지? 입고 간 옷이 재수가 없는 옷이었나? 하나하나의 사건들로부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기어이 이 사건들에 영향을 미친, ‘나의 성격’까지 탓하게 된다.
왜 좀 더 나는 일찍 환불을 신청하지 않았던가? 회사 일처리가 늦어지게 된 원인을, 혹시 내가 제공한 것은 아닌가? 누군가가 서운해 한 부서의 이동에 대해 내가 잘못한 점은 없는가?
그런 자책들로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갑갑한 마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저런 한탄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갑자기 제안했다.
“예전에 네가 나를 달랠 때 썼던 방법, 그걸 해보는 건 어때? 차 번호판 맞추기”
생각이 났다. 그 친구도 며칠 전,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고서는 일진이 너무 안좋은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꼭 오늘 나처럼, 그 친구도 '앞으로 안좋은 일들이 계속 벌어질거'라면서, 하루종일 안좋았던 일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것을 멈춰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내가 친구에게 제안한 것이 ‘차 번호판 맞추기’였다.
“음. 이렇게 하자. 지금 우리 옆을 지나는 차의 번호판이 짝수라면, 나쁜 일들이 거기서 멈추는 거야”
친구는, 피식 웃으면서 그래보자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 한대가 우리 옆을 지나갔지만, 번호판이 홀수였다.
“뭐야. 홀수 번호판 차잖아. 그러면 나쁜 일이 오늘 계속된다는 거잖아”
“아니야, 다음 차가 있잖아. 다음 차가 짝수로 끝나는 번호판을 가진 차면, 오늘의 나쁜 일이 멈추는 거야.”
우리는 뒤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번 차도 번호가 홀수로 끝나는 차였다.
“거 봐. 나 오늘 일진이 안좋다니까”
“아니야, 다음 차가 있잖아.”
그런 내 말이 무색하게, 이후로도 7대의 차가 우리 옆을 지나갔는데, 진짜 일진이 안좋은 날이 있는건지, 하나같이 모두 끝자리가 홀수인 차들만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이미 이 황당한 우연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쾌해져서, 깔깔댔다.
“야, 이러다 밤 새우겠다.”
그 때, 또 멀리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외쳤다.
“이번에는 짝수일거야!”
과연 이번 차는 번호판이 짝수로 끝나는 차였다.
“이걸로 너의 오늘 하루 안좋았던 일진은, 마무리가 된거야. 축하해”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그의 운없는 날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의 안좋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같은 방법을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집안에서 차 번호판을 맞출 수는 없어서, 대신 시계의 마지막 자리를 맞춰 보기로 했다.
“지금 시계의 마지막 숫자가 짝수이면, 오늘 하루의 안좋은 운이 마무리가 된다!” 하고 외치고서 나는 휴대폰 시계를 켜 보았다. 시계의 마지막 숫자는 홀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 10초쯤 지나서, 나는 다시 중얼거렸다.
“지금 시계의 마지막 숫자는 짝수다!”
과연 시계의 마지막 자리는 2로 끝나고 있었다. 이로써 나의 운이 없었던 하루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안좋았던 하루는, 과거가 된다.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내 스스로에 대한 근거없는 실망감이, 나의 남은 하루까지 망쳐버리기도 한다. 이 때, 시계의 마지막 자리나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 끝자리를 맞춰보자. 아니면 다른 하찮은 의식이라도 상관없다. 이 안좋은 일의 마지막을 그런 사소한 의식으로 끝내보자.
만에 하나, 그것마저도 십만번 정도 맞지 않은 우연이 생긴다면, 누군가가 정말 의도적으로 나의 하루에 저주를 걸어뒀다고 믿어도 된다. 그러면 우리의 하루에 강력한 저주를 내린 그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그런 정도의 흑마법사라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혹시 그런 흑마법사를 발견하게 되면, 나에게도 꼭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십만번 정도 안에 당신이 자동차의 번호판이나 시계의 마지막 숫자가 짝수인 것을 맞춘다면, 그것만으로 우리의 불운은 멈춰진다고 믿어도 되겠다. 너무 작위적이라고? 언젠가는 짝수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 생기는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인생은 없다. 항상 나쁜 일만 생기는 인생도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중간 기준은, ‘내가 이제껏 겪었던 일들의 평균’이기 때문에, 그 둘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나쁜 일’이 생기면 언젠가 분명 그 일은 멈추게 되어있다. 최소한 ‘평범한 일’ 정도가 일어나, 내 생각이 그 나쁜 일에 더이상 머무르지 않게 되면, 나쁜 일의 퍼레이드는 그 자리에 멈춘다. 아무리 홀수 번호판의 자동차들이 몰려 지나가더라도, 언젠가는 짝수 번호판의 자동차가 지나갈 수 밖에 없듯이.
그마저도 수십번 연속으로 홀수 번호판이 지나가더라도 상관없다. 우리에겐 다음 기회가 남아있다. 마치 우리앞에 거의 무한한 다른 기회가 남아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