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
나에게는 오른팔에 큰 화상이 있다.
네 살 때, 친척 어른 한 분이 내 팔에 국을 쏟아버리는 바람에 생긴 화상이다. 그리고 나는 이 화상이 생긴 네 살의 그 순간을 기억하는데, 그때가 “내 삶의 첫 기억"이다. 그래서 그때의 놀란 감정이 내 자아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삶 동안, 언제나 나에게는 오른팔에 화상이 있었다.
이 화상은 처음에는 검붉게 부풀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곧 큰 병원에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때 병원에서의 기억들도 나에게는 인생 극초반의 기억들이다.
수술 전날, 어머니는 많이 슬퍼 보이셨던 것 같고, 아버지는 간호사들 몰래, 시간강사의 없는 살림에도 비싼 회를 사 오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렇게 무리해서 회를 사 온 아버지께 미안하게도, 그 날따라 몸이 안 좋았던 나는 그 회를 모두 병원 바닥에 게워냈었다.휠체어에 앉은 다섯 살 내 모습과 병원복도 바닥에 게워진 회 조각을 치우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내 기억에 삼인칭 시점으로 남아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수술 당일에는 수술실에 들어가 산소 호흡기를 썼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열까지 세라는 아빠 말에 열까지 더듬더듬 세다가 다 세지 못하고 잠든 기억도 남아있다.
그렇게 수술을 받은 뒤, 다섯 살의 내 오른팔에는 피부 이식을 받은 화상자국이 큼지막하게 지금 모습대로 남겨졌다.
이 화상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에 항상 존재했던, 배꼽 같은 존재였다. 배꼽이 그런 것처럼 이 화상도, 자세히 보면 이상하게 생겼지만, 내게는 화상이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화상을 가졌다는 것을 잊고 지낸다. 반팔 옷을 입을 때, 또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는 화상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니까.
그러다가 나를 처음 만난 누군가가 유심히 내 오른팔을 쳐다보거나, 혹은 나에게 화상에 대해 물어보면, 그제야 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화상을 가졌다는 것을 상기한다.
이 화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리는 만무하겠지만, 거꾸로 내 화상까지도 좋아해 주는 사람 치고, 성품이 나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인연들은 대체로 착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고,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내 오른팔의 화상은 나쁜 사람을 걸러주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나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한다.
혹은 오른팔의 화상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 쉽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다른 사람들끼리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잘생긴" "키 큰" 따위의 형용사를 붙일리는 만무한데, 나를 "오른팔에 화상이 있는 사람”으로 부르면 사람들이 훨씬 기억하기도 쉽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 들어보니, 의술이 발달해서 다시 한번 수술을 받으면, 나는 아무 흉터 없이 깨끗한 오른팔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딱히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누구도 배꼽이 이상하게 생긴 부위라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그건 또, 이 화상을 지우면 화상이 지닌 기억들도 지워질 것 같은 근거 없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화상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모든 순간에 있어, 내 자신의 일부분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소소한 상처들을 나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어쩌면 그때부터 배워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에게는, 오른팔에 꽤 괜찮은 화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