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난관에서 찾은 사람들
2019년 5월 5일 일요일 아침, 나는 중국 시안에서, 한 공안 사무실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철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전날 토요일인 5월 4일 밤에, 여행 중이던 나는 시안 기차역에서 여권과 지갑을 모두 잃어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숙소는 미리 예약되어 있었고, 중국판 우버도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숙소까지는 이동할 수 있었지만, 6일 월요일에 예약되어 있던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더군다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중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하여는, 온갖 무서운 경험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여권과 비자를 다시 만들어서 귀국하는데 2주일이 걸렸다느니, 누구는 한 달이 걸렸다는 이야기까지, 난감한 이야기들만 즐비했다. 어쨌든 새로운 여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안의 분실신고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새벽부터 공안사무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공안사무소는 아침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열기 때문에,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걸 모르고 있던 내가 공안사무소 앞에서 일요일 새벽부터 안절부절못하면서 서성이고 있자, 숙직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던 공안이 철문 틈으로 나를 보고는 문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철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어 무슨 일로 왔느냐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조금 부족한 중국어 실력으로 더듬거리며, 한국인인데 여권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분실신고서를 공안에서 발급받아 여권과 비자를 새로 신청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 공안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자기들은 그런 서류를 발급해 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이미 인터넷에서 찾아본 서류 양식을 휴대폰으로 보여주자, 그 공안은 ‘아.. 이거 말이군요. 이건 해줄 수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그는 철문을 살짝 열어 나를 공안사무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공안사무소는 허름하면서도, 어딘가 우중충한 느낌이었다. 공안은 잠시 나를 안뜰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출근을 하는 공안들이 안뜰로 오며 가며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가끔은 자기들끼리 나를 눈짓하며 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조금 무서운 공안사무실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높다란 공안 건물의 안뜰은, 하늘도 조금밖에 안 보여 왠지 무서운 느낌까지 들었다.
잠시 후, 나를 데리고 들어온 공안이 작은 사무실 문을 열더니 안뜰에 앉아있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그 사무실로 따라 들어가자, 그는 나를 책상 앞에 앉히고 컴퓨터를 켜서 조서 같은 것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
- 한국 사람입니다.
- 한국.. 한국.. 이상하네. 국적란에 한국이 왜 선택지에 없지?
그는 안뜰로 향하는 문으로 가서 멀리 있는 동료를 불러오더니, 둘이 한참을 컴퓨터 앞에서 씨름했다. 공안 둘 사이에, 한국 버튼을 찾아서 한동안 어디를 눌러봐라, 어디를 열어봐라 하는 이야기가 계속 오갔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나라 회사원들의 모습 같아서 조금씩 나의 긴장감도 풀어졌다. 그는 결국 컴퓨터에서 한국 버튼을 찾았는지, 다시 나에게 물어봤다.
- 당신은 무슨 일로 공안에 방문했죠?
- 시안 기차역에서 어제, 여권과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 지갑 안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 한국 신분증과 100달러 정도 되는 돈이 있었어요.
그는 내 진술을 다 듣더니, 자판을 이리저리 쳤다. 그리고는, 동료에게 인쇄된 프린트물을 좀 가져오라고 이야기했다. 조사가 마무리된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데리고 들어온 공안과 단둘이 조사실에 남게 되었고, 나는 공안에게 쎄쎄를 연발했다. 그는 별일 아니라고 이야기하더니, 나에게 이야기했다.
- 그런데, 우리가 주는 서류로 새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 괜찮아요. 이걸 출입국 사무소에 가져가서 신고하면 영사관에서 도와줄 수 있다나 봐요.
- 혹시라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다시 한번 와봐요.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긴장을 안 하니까,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게 안 좋은 일도 벌어지네요.
푸근한 인상의 공안은 그 말을 듣자 나를 보며 씩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도 인생에는 또 행운들도 많이 있어요.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중국에서는 일하는 날이거든요. 그건 사실 당신이 운이 좋은 거예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중국에는 ‘일하는 일요일’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체휴일의 반대로 연휴의 마지막 일요일에 다 같이 일을 하는, '대체 근무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불행 중 다행히도 그날은, 관공서들이 근무를 하는 일요일이었던 것이다.
- 그러네요. 당신처럼 좋은 공무원을 만나게 된 것도 정말 제 행운인 것 같아요.
푸근한 인상의 공안은 내 말에 씩 웃더니 마침 동료가 가져온 문건에 서명을 하고는 나에게 내어주며 이야기한다.
-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당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출입국 공안들도 도와줄 거예요.
나는 그가 내어준 문서를 가지고, 출입국공안 사무소로 달려갔다. 출입국공안은 약간 무뚝뚝한 인상이었는데, 내일 귀국이라는 내 어려운 사정 이야기도 표정 없이 듣고 있어서 나는 무척 긴장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오늘 비자가 나올 수 있을지 확답할 수는 없다고 무뚝뚝하게 이야기했지만,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주면서 수시로 전화해서 비자가 나왔는지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나는 업무시간이 몇 분 지날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그 무뚝뚝한 출입국공안 덕분에, 정말 기적처럼 하루 만에 새로운 여행증명서와 출국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여행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떻게든 여행 도중에는 무언가 어긋나고, 실패하며 가끔은 낭패의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사실 여행의 묘미인데, 낯설고 무섭기만 한 이국에서,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제야 그곳이 결국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찮은 행운이라도 따르면, 생각보다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증명서용 사진을 찍는 곳을 직접 데려다주던 중국 아주머니, 한국 영사관 건물이 맞는지를 일일이 다 확인해서 내려준 택시 기사, 마침내 여행증명서를 새로 발급받았다는 내 말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호텔 직원까지, 평상시라면 그냥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서로 소통 없이 스쳐갈 뻔한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난관 앞에서는 함께 부대끼며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우연히 부대끼는 행운이 또 기대되어서, 나는 또 여행을 떠나겠지.
p.s. 그리고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는데, 시안 한국 영사관의 직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친절했다. 24시간 전화 채널을 가동하고, 여행증명서 발급도 신속히 처리해 준 한국 영사관의 일처리를 보면서, 한국인이라서 뿌듯한 감정도 몇 번씩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의 노고가 있기에, 앞으로도 또 나는 더 큰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세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