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효기간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어유 저는 이제 남편 머리 벗겨져 가는 것도 귀여워 보이는 걸요.
이게 귀여워 보이는 거 보면 게임 끝인 것 같아요.
얼마 전 만난 후배가, 외국인 남편과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툭 하고 던진 말입니다. 그들이 연애시절부터 함께한 지 1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둘은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새 그윽한 눈빛을 교환하는 안정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저는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속설을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설레는 상대방을 보면, 성호르몬과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머릿속에서 나오는데, 이 호르몬들은 우리가 상대에 대해 엄청난 열정을 가지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 가득한 설렘이 있는 사랑을 우리는 ‘에로스’라는 이름으로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은 그런 에로스를 매우 아름답게 그리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은 그런 에로스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호르몬의 유효기간은 18개월에서 30개월이고, 그 기간 내에 급격히 줄어든다고 하네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에로스가 가지는 범위는 사실 무척 좁습니다. 설렘 가득한 에로스뿐 아니라, 루두스 (유희적 사랑), 스토르게 (친구 같은 사랑), 마니아 (소유적인 사랑), 프라그마 (실용적 사랑), 아가페 (헌신적 사랑)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성호르몬이 작용하는 에로스가 3년 안에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의 사랑이 3년 안에 사라진다고 말한다면, 사랑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에로스는 다른 유형의 사랑으로도 변할 수 있으니까요.
후배가 처음 설렜었던 남편은, 머리숱이 가득한 젊은 시절의 남편이었을 텝니다. 그리고, 10여년의 시간 동안, 남편과 후배 둘 다, 서로를 설레게 했던 처음의 외모가 많이 변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들이 결혼을 하고, 수많은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가면서, 그들의 사랑은 에로스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했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의 사랑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하는 새로운 종류의 사랑으로 변화했을 겁니다. 그 호르몬은, 동물들이 다른 존재와 깊은 관계를 맺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가족들을 껴안을 때, 강아지를 안을 때, 또 아기를 안을 때에도 이 호르몬이 듬뿍 생겨서, 그 놀라운 존재들을 우리가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남편의 벗겨져 가는 머리가 귀여워 보인다면, 이것 또한 옥시토신의 작용일 겁니다.
다행히 이 옥시토신의 유효기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로스의 유효기간에 굳이 사랑을 가두지 않고, 마음껏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종류의 깊은 사랑은, 짧은 에로스에의 갈구도 멈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후배는 이제 자신이 찾던 사랑을 찾았으니, 사랑에 있어서는 자신은 이미 게임 끝이라고 이야기하며 남편의 벗겨져 가는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한국말에 서툰 후배의 남편이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아는 듯 둘은 사랑스러운 눈빛을 나눕니다.
따뜻한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꼭 잡은 후배 부분의 뒷모습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