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변 LHS Mar 19. 2023

<더 글로리>는 치료제인가 마약인가

극한 쾌감의 뒤에 남는 질문


2부로 완결된 <더 글로리>는 솔직히 너무 재미있다.


1부에서 시청자들을 위해 마련해 둔 각각의 복선들은, 완전한 복수의 끝을 향해 모아지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다. 작가가 마련해 둔 장치들의 역할부터,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연출의 힘까지, <더 글로리>는 우리가 꿈꾸던 권선징악의 완벽한 끝을 향해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끊이지 않는 반전들과 속도감 있는 쾌감. <더 글로리>는 오락 드라마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잘 갖추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과연, <더 글로리> 속 완벽한 악인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현실에서 그토록 완벽한 악인이 존재하는가


드라마 속 박연진이나 그 엄마인 홍영애, 주인공의 어머니인 정미희나 주여정의 아버지를 살해한 강영찬과 같이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악인이, 우리 주변에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가. 우리가 꿈꾸는 복수가 드라마에서처럼 가능한가의 문제는, 다음에 고민해 볼 문제이다.


애초에 드라마는 이들 악인들이 동정의 여지가 없음을 계속 강조한다. 문동은의 이야기대로, 어렸을 적 악인의 모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게 “그대로여서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들 악인에 대한 문동은의 시원한 복수를 아무런 가책 없이 즐길 수 있다. 살인마 강영천과 같은 악인이 진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면, 주여정의 “대상화”도 정당화될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히포크라테스 선서마저 지킬 필요가 없는” 어떤 대상으로 바꾸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 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런 완벽한 악인보다는, 선과 악의 어느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겪는 고통이 훨씬 많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기적일 뿐일 경우가 많다. 나에게는 악인일지언정, 누군가에게는 선인인 사람들마저 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과연 악인으로 규정해야만 하는가조차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혹은, 우리의 일상의 많은 고통들은,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 선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도 고통받을 수 있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승리하는 경우들도 많다. 이 부조리한 현실들은, 우리의 세상에 대한 기대와 너무 다르기에, 우리는 그 인지부조화로부터 고통받는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과연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판단하기 힘들다.


그 완전한 판타지가 위험한 이유


그렇기에 더 글로리는 속 시원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판타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문동은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세상은 드라마처럼 완전한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더 글로리> 안길호 PD의 학폭문제에 있어서도, 여론은 둘로 나뉘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의 모호한 고통을 견디는 데 있어, ‘더 글로리’가 주는 극강의 쾌감은, 일종의 치료제인가,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채우는 단순한 마약인가. 그 마약중독의 부작용은 너무 심해서, 이 모호한 현실세계에서 억지로라도 완벽한 악을 찾아내는 방향으로만 사람들을 이끈다면 어떨까.


그 지점에서 우리가 <더 글로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