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변 LHS Sep 24. 2023

사법시험 2차에서 세 번 떨어지면서 알게 된 것들

법이 절대불변의 원칙일 수 없는 이유

사법시험 2차에서 세 번을 내리 떨어진 이유

사법시험에서 나는 논술시험이던 2차 시험에서 3년을 내리 낙방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내가 판례와 다수설을 달달 외워서 ’잘 쳤다 ‘고 생각했던 과목에서는 어김없이 낮은 점수가 나왔고, 판례의 입장을 잘 몰라서 나름의 논리로 대충 적었다고 생각했던 과목에서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원인이 무얼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법대에서 들었던 한 수업을 기억해 냈다.


법대에 다니던 시절, 법대에 개설된 수업 중에는 “입법론”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법조3륜으로 불리는 사법(司法)만을 알고 있었던 나는, 입법론이 법대 과목에 들어와 있는 이유가 궁금해 그 강의를 수강했다. 그런데, 그 과목이, 내가 법대에서 들었던 과목 중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있었다. 입법론 강의는 ‘법의 도구성’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법은 불변하는 어떤 목적이 아니라, 그 이면의 어떤 사상을 표상하는 도구라는 점이, 내가 입법론 강의에서 배운 바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법시험의 2차 시험에서 채점자들이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런 법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서, 나만의 생각을 구현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2차 시험의 문제 사례를 받아 들고, 마치 정답이 있는 마냥 법과 판례의 입장, 그리고 다수설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적어냈고, 정작 내 생각은 몇 단어 정도로만 간단히 적어냈었으니, 2차 시험에서 3년을 낙방한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그런 깨달음을 얻은 덕인지, 나는 다행히 네 번째 2차 시험을 합격하고,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법률을 도그마로 보게 되는 언어습관


사람들은 흔히, 법이란 정답이 있는 도그마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법을 하나의 도그마로만 보는 오류는, 우리의 언어습관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법률을 줄여서 가리킬 때 쓰는 ‘법’이라는 용어는, 그 쓰임이 너무 다양하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라는 말은 상대방의 비논리성을 따져 물을 때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고, 하다 못해 물리학계의 여러 원칙들도 “관성의 법칙“과 같이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률“을 가리키는 “법”이라는 용어를 쓸 때, 그것이 불변의 논리결함이 없는 원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법’을 인지하다 보면, 법을 능숙하게 언급하는 변호사들이나 판사, 검사들은 마치 어떤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는 사제와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법이 절대불변의 원칙일 수 없는 이유


하지만, 법은 끊임없이 변한다. 법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다수결에 따라 정한 규칙인 것이 원래의 모습이다. 구성원들이 변함에 따라 모든 법의 가장 원천이 된다는 헌법부터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다른 모든 법들도 늘 개정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법률의 내용이, 그 나라에서는 말이 안 되는 규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법의 문언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다.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하나의 잣대로 표준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굶는 아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을 절도죄로만 처벌하여야 하는가와 같은 아주 해묵은 논쟁부터, 종래 인정되지 않던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태도변경까지,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하거나, 또는 그 해석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모든 이야기를 정당하게 반영하고 있는 절대선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정의롭게 적용되는 법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항상 노력해 왔지만, 만약 다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둔 그 원칙이, 구체적인 정의를 담고 있지 못하다면, 사법의 해석을 통해서든 혹은 입법적인 변경을 통해서든 그 정의를 설득해야 한다.

법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법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법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의 도그마에만 갇혀 있다면, 우리는 법이라는 도구가 진짜 목적했던 개별적인 정의를 못 보게 될 수 있다. 도그마로서의 법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정답이 없을 수 있다.


그것이 세 번의 사법시험 낙방이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왕이면 병’ 애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