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들의 조우
그날 밤 차림상에 단출하게 차려진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이제껏 맛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일행 중 이탈리아에서 온 셰프인 B의 솜씨였다. 미국에서 온 새침한 C와 영국 군인 출신의 D도 최고로 맛있다고 감탄하며, 우리만의 저녁 만찬을 만끽했다.
나는 2주째 호주에서 홀로 여행 중이었고, 서핑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바이런 베이의 허름한 2박 3일 서핑 캠프에 참가했다. 거기서, 나는 역시 혼자 여행 중이던 이탈리아인 B, 미국인 C, 영국인 D와 만나게 되었는데, 넷의 동선이 우연히 겹치는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업이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무엇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외국인 세명이, 캠프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레 나의 “일행”이 되었다.
캠프는 숙식이 모두 제공되는 시설이었지만, 며칠 존부터 캠프에 먼저 묵고 있었던 B는, 캠프의 저녁이 너무 형편없다며, 본인이 저녁으로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해주겠노라고 했다. B는 필요한 음식 목록을 메모장에 적어줬고, 나는 그것을 들고 C, D와 함께 캠프 밖으로 나와서 장을 봐왔다. 그 음식들을 가지고, B는 허름한 캠프 취사시설에서, 내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있는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만들어냈다.
우리 세명이 쩝쩝대며 지상 최고의 파스타를 맛보는 동안 B는 자신이 요리한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며 파스타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순간 내 캐리어에 있던 매운 한국 라면이 생각나서, B에게 한국 인스턴트면이라도 조리해주겠다고 했다. B는 인스턴트면은 별로일 것 같지만, 그렇게 해주면 감사히 먹겠다면서 별 기대 없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매운 라면을 끓여내 놓자, B, C, D 모두 그 인스턴트면의 푸짐한 비주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B는 한입을 먹어보더니, 서양인에게서 나오는지도 몰랐던 카~ 소리를 내가며 급하게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이 인스턴트면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 스마트폰에 받아 적었다.
이탈리안 셰프의 정통 파스타를 얻어먹은 3인과, 그 답례로 동양의 신비한 매운 라면을 얻어먹은 1인의 일행은, 식사 후 캠프의 가운데에 있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았다.
리쿼샵에서 사 온 맥주며 와인이며 위스키를 홀짝거리면서, 네 명의 일행은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내가 온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다 보니, 북핵 이야기도 나왔고, 역사의 이야기,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도 하나씩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말이 없어진 어느 즈음부터는 또 당연하게도 연애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움, 설렘 그리고 또 외로움도.
그리고, 네 명의 여행자는, 서로가 사실 잊고 싶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나오기 위해 여행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는 연애에 실패했고, 누군가는 오랜 꿈을 접게 되었으며, 누구는 회사에서 모함을 받고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각자 잊고 싶은 것으로부터 아주 먼 곳을 여행지로 골랐고, 그렇게 골라진 여행지가, 각자의 나라로부터 먼 호주였다. 생각해보면 호주는 뉴질랜드를 빼고 나면 모든 나라로부터 먼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일행은 낄낄거렸다.
바닷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모닥불과 술, 그리움이 공유되며 익어가던 그날 밤, 모든 곳으로부터 먼 나라의 바이런 베이는, 온도가 아주 포근했다.
다음 날 네 일행이 캠프 인솔자를 따라 간 해변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무척 한적하지만 파도가 거센 해변이었다. 네 명의 일행은 첫째 날에는 아무도 서핑보드 위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둘째 날이 되자 한 명씩 서핑보드 위에 균형을 잡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욕심이 생기자, 일행은 서핑보드에 엎드려 패들링을 하며 먼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먼바다에서 바라보는 해변은 약간은 흐린 햇볕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고,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는 먼바다에는, 누군가가 구름 틈으로 살짝 흩뿌린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적당한 파도가 하나 밀려왔다. 나는 배운대로 엎드린 채 패들링을 하다 파도에 업혔다는 느낌이 들자, 보드 위로 일어선다. 보드 위에서 나는 균형을 잡기도 하고, 그러다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다 해변에 다 왔다고 생각할 즈음, 중심을 잃어 파도에 내동댕이 쳐졌다. 파도는 꽤나 거세어서 나는 묵직한 파도의 힘에 서핑보드와 함께 해변에 엎어져 버린다.
그동안 군인 출신의 D는 금방 익숙해져 제법 파도를 즐기고 있다. C도 캠프 여자들 중 처음으로 보드 위에 올라타 능숙하게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나도 오기가 생겨 다시 패들링을 하고 먼바다로 나가 파도를 기다린다. 이 파도는 너무 급하다. 이 파도는 너무 밋밋하다. 하고 흘러 보낸다.
그러다 적당한 파도 하나가 다가오자, 다시 나는 그 파도를 잡아본다. 흔들리다가 또 균형을 잡았다가, 파도면을 타 해변가를 향해 비스듬히 다가간다. 그러다 파도가 점점 세지는 순간, 나는 온몸을 짚어 일어섰고, 파도를 올라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무섭고 험난하기만 해서 두려웠던 파도는 나를 힘껏 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조금은 무섭지만 두 다리에 완급을 줘가면서, 나는 그 힘을 즐겨본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쳐온 도망자 동료들과 함께, 나를 내동댕이 칠 것 같은 맹렬한 파도를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법을 배워갔다.
저녁이 되어 캠프 일정이 모두 끝났다. 네 명의 일행이 다시 혼자가 되어 각자의 여행길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일행은 아쉬운 표정을 가득 담아 서로를 한 명 한 명 포옹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해준다.
“남은 여행도 잘하기를 바래.“
네 명은 모든 곳에서부터 먼 나라의 이름 없는 해변에서 만나, 무서운 파도를 타는 법을 함께 배웠지만, 앞으로 우리가 언제 또다시 만난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을 테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넨, '남은 여행을 잘하라'는 축복은 어쩌면, 이번 여행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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