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오비완커노비

우리에게 포스가 늘 함께 하기를

by 잭변 LHS

Helmut은 시드니에서, 파트너 John과 함께, 정원과 별채가 있는 멋진 집에서 살고 있다. 30년을 함께 한 이 노부부는, 숙박 공유 어플을 통해 자기네 집의 별채를 여행자들에게 빌려주고 있는데, 나는 그 별채를 나흘간 빌려 쓴 ‘최초’의 동양인 게스트였다. 그런 내게 노부부는 종종 홍차와 먹을거리를 대접해주며 환대해 주었다.


내가 시드니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 밤늦게 들어온 나는 본채와 별채 사이의 테이블에서 집주인 Helmut을 마주쳤다.


Helmut 은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시드니 여행은 좋았냐고 물으며, 다음 날 아침에 내가 깨서 퇴실할 때까지 자신들은 집에 없을 것이라, 별채 키를 놓고 갈 곳을 알려주기 위해 나를 기다렸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Helmut은 와인병과 잔을 두 개 꺼내왔다.


Helmut이 건네주는 와인을 들이키며, 나는 시드니가 무척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시드니에 오게 된다면, 이렇게 고즈넉한 Helmut의 집에 다시 묵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Helmut은, 자신들도 동양인 게스트는 처음이라며, 다음에도 한국 사람이 묵게 되면 내 이야기를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Helmut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와인 한 병을 비워갔다. 와인은, 겉보기엔 그리 강한 술이 아니지만, 사실 소주 정도의 도수가 되는, 생각보다 강한 술이다. 그래서, 시드니 한적한 정원 속 테이블에 앉은 인심 좋은 집주인과 이방인 게스트는 꽤 거하게 취해갔다.


나는 취기에 젖은 채 Helmut에게, 그 해 내게 일어난 많은 일들에 대한 걱정과, 또 인생의 목표가 보이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도 어떤 삶을 원하는지, 또 어떤 힘든 일들이 앞으로 닥칠지도 잘 모르겠고,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Helmut은 시드니라고는 믿기지 않게 푸른 밤정원의 고즈넉한 바람소리에 실어,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나이가 많다고? 네가 벌써 그런 걱정을 하면, 우리는 얼른 땅속에 파묻히라는 얘기지? 삶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 확실한 건, 넌 지금 젊고 자유롭고, 그걸 즐겨도 돼. 넌 그렇게 행복해질 자격이 있으니까, 오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너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


그 밤의 진리를 알려주는 Helmut이,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의 현인 '오비완 커노비' 같은 느낌이라고 농담을 했더니, 그는 한국에서 온 영 스카이워커에게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당신에게 포스가 함께 하기를)"



그날 밤, 술자리를 마친 나는 기분좋게 취한 채로 별채로 돌아왔다. 대충 씻고 침대에 앉아서, 창밖으로 보이는 조용한 주택가의 작은 공원을 바라보다가 그 해의 첫 날을 갑자기 떠올렸다.


나는 그 해 1월 1일을 태국 방콕에서 맞이했었고, 새해 첫날 새벽, 홀로 호텔에 돌아가던 길에, 뜬금없이 마주친 어느 허름한, 인적이 드문 사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새해 소원을 적는 금빛 소원용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이라고 꾹꾹 눌러 적어, 기원을 듬뿍 담아 소원함에 집어넣었더랬다. 그런데, 그때 내가 정작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의 행복은 빼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비완에게 가르침을 받은 영 스카이워커는 침대에 누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May the Force be with us all.(우리 모두에게 포스가 함께 하기를)”


나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음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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