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강아지 “싼”

다이빙 샵 강아지 싼의 흥겹고 기운찬 일상

by 잭변 LHS

세부의 인상은 내 생각과는 달리 허름했다. 그 곳의 화려한 리조트야 머물기 편안하고 조용하지만, 리조트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물웅덩이와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거리의 풍경에는, 작년 12월의 태풍도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유, 진짜 그때 난리였습니다. 한국 교민들 중에 고립되었던 사람들도 많고요. 복구는 빠르기나 한가요, 반년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복구를 시작도 못한 곳이 많아요.”


한인 스쿠버다이버 샵의 강사님은, 폐허가 된 옛날 가게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집에는, 아직 전기가 복구되지 않은 곳도 많을걸요”


어쩐지, 어스름한 저녁이면, 거리 곳곳에서는 가로등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 모여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기운차게 웃고 있어서, 나는 그 모습을 정겨운 동네 모습이라고만 생각했었지, 태풍의 피해로 어려워졌을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잘 웃고 흥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런 재난의 복구 와중에도 밝게 웃고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저희 다이빙 샵도, 태풍으로 망가져서 옮긴 것이에요. 원래 저기 저 건물에 있었거든요."


다이빙 마스터가 손가락으로 가르친 곳에는, 조금은 쓸쓸하게 텅 비어져,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발 옆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져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대며 내 신발을 입에 물려고 하고 있었다.


“걔 이름이 싼이에요. 태풍 지나가고 얼마 안돼서 비가 퍼붓던 날에, 저기 싼미구엘 플라자에서 혼자 떨고 있길래 다이빙 샵에 데려왔어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싼은, 내 다이빙 슈즈를 장난감 삼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허리를 굽혀 살짝 손등을 내어주니, 강아지 싼은 내 손등에 코를 비빈다.


"꼭 한국에서 본 친구네 강아지처럼 생겼네요."

"온 지 몇 달 안되었는데, 부쩍 컸어요. 여기 다이빙 샵 사람들이 사료도 잘 챙겨줘서, 쑥쑥 잘 크는 것 같아요."

싼은 내 손등을 가지고 놀더니, 이내 나한테서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이빙 샵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아주머니에게 폴짝폴짝 뛰어가 귀찮게 한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일하는데 방해가 되어서인지, 싼을 번쩍 안아서 마당에 만들어 놓은 케이지에 내려놓고는 케이지 문을 잠근다.


갑자기 갇히게 된 싼은 케이지 문을 열심히 물어서 문을 열려고 한다. 손바닥만 한 싼한테서 어떻게 그런 큰 힘이 나왔는지, 우당탕탕 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싼은 열심히 문을 물어뜯는다.


"와, 싼이 성격이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요. 녀석이 아마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커서, 구속받기를 엄청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자 싼은 케이지 옆면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케이지를 물어뜯는다. 조그마한 녀석이 저렇게 하다가 진짜 케이지를 망가뜨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싼은 힘차다. 그렇게 한 5분을 케이지와 씨름하는데, 지나가던 필리핀 직원이, 싼의 기운찬 입질을 보더니 씩 웃으며 뭐라고 싼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더니, 케이지 문을 열고 싼을 꺼내 마당에 풀어준다.


자유를 되찾은 싼은, 다시 마당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탐구한다.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와서, 나와 한동안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이내 다른 다이버들에게 다가가 귀찮게 하더니 번쩍 들려 품에 폭 안기기도 한다. 다이버의 품에 안기자, 싼은 내려달라는 듯 기운차게 짖어보지만, 왕 하는 정도의 작은 강아지 인형 소리만 나올 뿐이다. 다이버들은 이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몇 시간 뒤, 오후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강아지 싼은 마당 그늘에 누워 잠들어 있다. 워낙 기운찬 녀석이라,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까지도 힘차 보인다.


오전에 다이버들이 오가던 세부의 바다는, 오후가 되자 현지인들로 조금씩 붐비기 시작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챙겨 온 스노클링 장비들을 서로 돌려가며 쪽빛 바닷속 넓은 세계를 유영한다. 그들의 힘찬 웃음에서는 태풍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그들을 옥죄었던 재난의 흔적은 남았지만, 그들은 굴하지 않고 다시 그들만의 기운찬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쪽빛 바다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자, 세부 바닷가 여기저기에서는 흥겨운 음악소리까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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