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온 호수
간밤에 보슬비가 내린 패트리샤 호수는 깨끗했다.
호수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수면에 비추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또 하나의 하늘 같았다. 숙소에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 임시로 만들어진 호수가의 데크로 걸어가면, 호수의 중앙에 닿을 수도 있었다. 그곳에 누워 있으면, 하늘이 나의 위와 아래에 있었다.
호수 데크에 앉아 둘러보면 사방은 식물의 세상이다. 호수의 수면의 끝에 닿은 높은 침엽수림, 그 뒤의 배경이 되어주는 높은 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초원 빛의 언덕까지, 어느 것 하나 식물이 점령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넓은 식물의 세계에, 사람은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침엽수림 너머 어디에선가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있어서, 비로소 이곳에 찾아온 손님이, 나 혼자만은 아닌가 싶다.
고요한 호수에 오면 나는 꼭 명상을 하고 싶었다. 도시에서도 삭막한 회색빛에 쫓겨 명상으로 도망칠 때에, 나는 거울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꿈꾸었었다. 오늘은 꿈만 꾸던 호수에서, 명상을 시작한다. 호수 가운데의 데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는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이완을 시작한다.
하늘을 들이쉰다. 하늘을 내쉰다. 있는 줄도 몰랐던 긴장조차 사라진다.
명상을 마치고 호수를 떠나서, 숙소로 가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이른 새벽이지만, 주변은 한낮인 것처럼 환하다.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서, 저녁 10시나 되어야 어둑해지더니, 일출시간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독채 캐빈으로 가는 길 옆으로, 빈 채로 문이 열린 캐빈이 보인다. 아마도, 새벽부터 남쪽 도시인 밴프로 떠난 어떤 가족이 머물던 곳인가 싶었다.
다른 캐빈은 어떤가 하고 밖에서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 한 명이 수건들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빈 방을 정리하고 있던 방갈로의 직원이었다.
직원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이에요. 어디에 머무르고 계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저는 저기 위의 캐빈에 머물고 있어요.”
“아, 메이플 케빈이군요. 숙소는 어때요? 불편한 건 없어요?”
“무척 좋아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제가 온 나라와는 다른 느낌이네요.”
“아 어디에서 오셨어요?”
“전 한국에서 왔어요.”
“아, 그곳도 아름다운 곳이라 들었어요.”
그녀는 전동 카트에 수건을 실으며, 환한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요. 아침 호수는 다녀왔어요?"
"네,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아름다운 호수를 마음에 잘 담아두세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직원은 전동카트를 타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 뒤 로비 오두막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사라졌다.
다시 조용해진 오솔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검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내가 다가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길 위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다.
나는 숙소 오두막으로 발을 옮기려다가, 그녀가 알려준 대로, 다시 한번 더 뒤를 돌아 호수를 눈에 가득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