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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린 Jan 08. 202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한동안 뜸했던 임용 원서 쓰기를 시작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강의계획서 등등을 쓰다 보면 이 기나긴 그리고 지난한 글쓰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작업이 아님을 깨닫는다. 임용 원서를 읽을 분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관심이 없으므로.


오로지 나는 그 조직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고, '무엇'까지 될 수 있는가를 어필해야만 한다. 별것 아닌 미천한 경험도 인류에 큰 보탬이 된 공헌 인양 당당하게, 허무맹랑한 계획도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자신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에서 시키면 양잿물도 꿀물처럼 들이켤 것처럼 무모하게.


없는 소리, 쉰 소리, 헛소리를 가득 채운 기나긴 지원서를 다 쓰고 나면 그제야 보인다. 내가 얼마나 초라한 인생인지.


우리 틸리가 내 옆을 지키다가 잠들어 버렸다.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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