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엄마의 주말에 관한 단상
월요일이다. 학기 중이라면 월요일은 늘 가장 긴장되고 분주한 날이다. 한주의 할 일을 빠짐없이 점검하고 강의와 강의 사이에 강의 준비 시간을 짜 맞춰 넣고, 그 사이로 아이 픽업 순서와 내가 챙겨야 할 집안 대소사를 끼워 넣은 다음, 화요일과 일요일 클리닉 일정을 재확인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밀린 연구 과제를 짬짬이 채워 놓는다. 물론 각종 미팅 알람이 반짝반짝 아이캘린더에 떠올라 이 촘촘한 일주일 계획에 뻥뻥 구멍을 뚫는다. 저녁 먹고 집 치운 시간에 겨우 운동할 시간을 계획하면서도 ‘이번 주는 틀렸다’는 예감에 한숨을 살짝. 아직 월요일 아침인데 다이어리가 깜지가 된다. 힘이 빠지면서, 마음속 다짐, ‘나 이번 주 아프면 안 돼!’
연말이 되어 2학기 성적처리 마감하고 시간강사 계약이 종료되면 갑자기 실직자가 되어 뭘 해도, 뭘 안 해도 맘 한구석에 찬바람이 분다. 물론 남반구의 연말은 해가 쨍쨍한 한여름이지만 말이다. 실직이라고 해도 연구자이자 주부이자 고3 엄마인 나의 무급 휴가는 진공상태가 될 수 없다. 일단, 결코 도달할 수 없을 만큼의 연구계획을 3월 개강까지 십자가처럼 짊어진다. 주말에야 겨우 얼굴 맞대고 밥 몇 끼 같이 먹을 수 있는 세 식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을 한두 개 정도 마련한다. 그렇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학이라고 빈둥거린 고3 학생이 황금같은 주말도 쭉 이어서 마냥 노는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한두 시간이라도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보고 싶는 게 부모 마음. 그래야 월요일 아침부터 뺑뺑이를 돌아도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뿌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으니까.
허나, 고3 청소년의 생각은 고3 부모와 한참 다르다. (주중에 얼마나 잘 놀았건간에) 주말이므로 쉬어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받들어 일단 책상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고 책과 눈도 안 맞춘다. 겨우 잡은 토요일 아침 방학 보충 수업도 금요일까지 멀쩡하던 속이 울렁거려 취소. 날이 이렇게 화창 한대, 우리 집 고3은 공부 울렁증으로 몸져눕고, 급하게 과외 취소하느라 선생님들께 죄송해서 진땀 빼고는 속이 짠하게 상한 나와 남편은 별말 없이 과자만 먹는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 노래방 사이즈 콘칩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음주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술 대신 과자를 나누며 인생의 쓴 맛을 달래는 편이다.
분명 일요일 아침부터 ‘차도’가 눈에 보이는데도 월요일로 미뤄 둔 과외 수업도 못 가겠단다. 더 이상 실망감과 절망감을 참을 수 없게 된 남편이 한소리 하고, 청소년은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서 분출된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차일피일 미뤄온 과외 숙제를 새벽까지 안 자고 벼락치기로 끝낸다.
아무도 웃지 않고 어색하게 눈길을 피하는 월요일 아침. 아이가 드디어 수업 들어가고 나는 근처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주말을 돌아본다. 제대로 휴식하지 못 한 자의 월요일은 할 일이 많아도 할 일이 딱히 없어도 서글프다. 그래도 다음 주말엔 어떤 쪽이든 성숙의 기적을 경험하고 좀 더 편안히 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기를...
2021.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