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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21. 2022

인구절벽에 대응하는 자세

그 남자의 횡설수설



우리나라의 작년 출산율이 0.81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 셈이다. 인구가 유지되려면 출산율이 최소한 2.1이 되어야 한다는데, 2는 커녕 1에도 미치지 못하니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내닫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를 가리켜 '집단자살로 가는 사회', 지구상에서 '인구감소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라느니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다. 우리 부모세대에는 4~5명, 우리 세대에는 2~3의 자녀가 보통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마도 정부주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에 걸맞은 질적 수준은 향상되지 못한 결과이지 않나 싶다. 우선은 그 단초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꼽고 싶은, 교육제도를 이끌어가는 높으신 분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나라의 교육이 오직 '스펙''돈'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좋은 스펙과 그것을 발판으로 한 좋은 직업 그리고 돈. 그래서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거기에 필요한 '요령''잔기술'만을 가르치고 있다. '먼저 사람이 되자'가 아니라 '먼저 스펙을 쌓자'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 구구단 같은 요령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손가락이 됐건 발가락이 됐건 스스로 세어가면서 생각하고 고민해서 답을 내야지, 조건반사적으로 공식에 넣어 해답만 찾는 일을 지양하는 것이다. 그러한 요령과 잔기술에만 매달린 결과 우리나라 경우 순발력은 앞설지 모르지만 창의력이 떨어지고, 모방기술과 응용기술은 앞설지 모르지만 기반기술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자랑하면서 아직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기초과학 얼마나 부실한지 짐작할 수 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학교 선택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기술학교로, 공부를 더 깊게 하고 싶은 사람은 일반 대학교로. 굳이 대학교를 나오고 학위를 받는데 목숨을 걸지 않는다. 긴 가방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우리의 행복은 스펙과 돈에 달려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첫째, 남자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로 남자의 가사 및 육아 분담률이 낮고,  둘째,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에 따른 불평등큰 요인으로 꼽는 듯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상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추세로 쭉 갈 것 같다. 정부는 근본적인 해법을 찾는 걸 이미 포기한 것 같고. 고용의 주체가 되는 기업은 이를 수용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경영자가 종업원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자원' 또는 '비용'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에서는 어떻게든 인원수를 줄이고 연차가 쌓일수록 월급만 축내는 늙다리들을 쳐내는 것이 기업 생존의 키가 되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력 단절녀를 비롯한 중도 퇴사자들을 위한 재취업의 자리는 없다.


혹시 유럽 선진국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같은 직무에는 같은 급여를 지급하는 '직무급'이 도입되고 고용 유연성이 보장되다면 모를까, 하는 직무에 관계없이 연차만 쌓이면 급여가 오르는 '연공서열급' 급여체계와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며 정년까지 가는 게 목표'굳건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 한, 기업들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사람 즉 '비용'을 줄여나갈 것이다. 이러한 경영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기업들이 국내 생산은 줄이면서 해외에서의 생산을 늘려나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선택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주 결핍된 개념으로 '다양성(Diversity)'이 있다. 사실 출산율 저하의 주 요인으로 지목된 가부장적인 남녀차별 문제나 여성들의 출산 육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문제도 다 다양성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은 '성별, 나이, 국적, 인종, 종교, 신념, 가치관, 출신학교, 출신지역,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 장애 여부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존중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대접받고 존중받아야 하고 또 나도 상대방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우열'이나 '차별'의 개념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전한 조직이라면 구성원들의 특성을 배려하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있어서 이 다양성을 수용하는 성숙된 사회로 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정치인들로 보인다. 그들은 예로부터 국민들의 편 가르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잇속을 채워왔고 국민들을 교묘하게 선동하여 끝 모를 수렁으로 몰아가는 데 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 사회가 다양성 문제를 폭넓게 품을 수 있다면 출산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이 개선되고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질뿐더러, 내부에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외부로 눈을 돌려 해법을 찾기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혼주의자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사실 그것은 각 개인의 판단과 가치관의 차이로 남이 강요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출산을 강요하기 보다는 차라리 인구절벽 문제를 외부에서,  국경을 폭넓게 개방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이미 오늘날의 사회는 '초글로벌 사회'이다. 더 이상 순혈주의니 민족주의니를 외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검으면 어떻고 희면 어떻고 노란색이어떤가? 다 똑같은 사람들인 것을.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수많은 민족이 어울려 살면서 세계 최고의 국가 지위를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치인들이 호남사람 영남사람 하면서 가르기 하여 두쪽 난 난장판에 차라리 외부로부터 검은사람 하얀사람 노란사람을 들여와 섞어서 '비빔밥'을 만드는 것이다. 비빔밥 하면 바로 K-푸드 아닌가? 인구부족으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가 무슨 짓인들 못할 것인가?


아프리카에는 멀쩡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세계 여러 곳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차라리 이들을 우리가 품음으로써 단순히 봉사나 기부활동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박애주의도 실천하고 인구절벽도 해결하는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이를 잘 가공하여 수출함으로써 성장해 왔다. 인구가 부족하고 그 자원이 고갈된다면 그 역시 수입해서 잘 가공하면 된다. 정부에서 이들의 교육을 제대로 주도한다면, 요령과 잔기술을 가르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하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사회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더 나은 국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더구나 극성스런 학부모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하루라도 빨리 '이민부'신설하여 국가적으로 나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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