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Driver(첫회)

by 이은호



그는 동그라미로 사는 사람이다.


그의 주위엔 동그라미가 참 많다. 우선 타고 있는 자동차의 바퀴 네 개가 동그라미고, 원래는 은색이지만 기름과 먼지로 뒤덮여 까맣게 보이는 휠 캡 네 개도 동그라미이다. 늘 잡고 돌려대는 꼬질꼬질 손때가 묻은 핸들도 동그라미고, 핸들 왼쪽 위에 붙어있는 나무 색칠이 벗겨지고 반들반들해진 파워 손잡이도 동그라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넣다 뺐다 하는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끼리릭 거리는 변속기 기어 손잡이도 동그라미이다.


그리고 또.. 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가 끼어 까만 , 새로 나와 반짝이는 , 한쪽 끝이 찍힌 , 우그러진 등등, 똑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김새가 각각 다른 오백원, 백원짜리 동전들도 다 동그라미다.


동그란 바퀴가 돌고, 동그란 핸들이 돌면서 그는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바퀴가 돌면서 차가 굴러가고, 차가 굴러가면서 세상도 함께 굴러간다. 어지럽게 돌아가고 어지럽게 굴러가는 세상살이에 그의 하루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굴러간다.


돌고 도는 세상! 돌고 도는 인생!



이 정도면 눈치챘겠지만 그의 직업은 택시 드라이버다.


미국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사이코 기질도 아니고, 프랑스 영화 <택시>에 나오는 스피드광도 아니지만 그도 역시 예사 분위기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는 평범한데 비해서 오히려 세상이 정신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정말 정신없는 넘을 만났다.


새벽 두 시가 좀 넘었을까? 그는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덕분에 짭짤하게 수입을 올렸다.^^ 어디 늦은 술손님이나 태워볼까 하고 술집이 즐비한 뒷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 ...흔들리는 날 잡던 두 손 이젠

독한 소주잔만이 날 위로해

두 눈 꼭 감고 입 맞추던 내 입술엔

해로운 담배 한 개비로 널 추억해본다... ♬♪


눈을 가늘게 뜨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담배를 빨아들여 연기를 후- 내뿜곤 하는데, 저 앞에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술이 잔뜩 취해서 비틀비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사실 다가온다기 보다는 좌로 3보, 우로 2보, 앞으로 3보, 뒤로 1보, 어디로 갈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그런 걸음걸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차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아~ 저런 넘은 안태우는 게 상순데...'


고주망태가 된 손님을 태웠다가 낭패를 본 경험을 떠올리며 그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술 취한 넘의 행동거지를 주시하였다. (앞으로 그와의 구별을 위해 부득이하게 '그 넘'이라고 쓴다.)


그런데 그 넘은 마치 오락실 펌프를 슬로 템포로 하듯 전.후.좌.우를 불규칙적으로 왕복하더니 그의 택시 옆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그 넘의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그는 스쳐 지나가는 그 넘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택시 타려는 게 아니었구나.'


순간! 그의 방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넘이 갑자기 뒤로 2보 후퇴하더니 택시 뒷문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가 누군가? 비록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하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정신을 가다듬고 차를 조금 전진시켰다. 당연히 그 넘이 손잡이를 잡지 못하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에서였다.


덕분에 그 넘은 뒷문 손잡이를 헛짚었고 손잡이를 잡기 위해 몇 번을 더 더듬었다. 하지만 그 넘이 순순히 손잡이를 잡도록 내버려 둘 그가 아니었다. 그가 다시 차를 조금 더 전진시켰다.


"어어~ 이 눔 봐라! 이 따식이 막 움직이?"


그 넘의 혀는 이미 잔뜩 꼬여있었다. 그 넘은 취중에도 둔한 발을 앞뒤로 놀리며 계속 뒷문 손잡이를 더듬어댔다. 그러다가 드디어 손잡이를 잡게 되었는데, 혹시라도 손잡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힘껏 부여잡고는 홱 열어젖혔다.


"아얏!"


그 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넘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 문을 열어젖히다가 문의 모서리 부분에 그만 자기 오른쪽 무릎을 사정없이 부딪치고 만 것이었다.


'에그~ 피웅신!'


그 넘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던 그는 실소를 터뜨렸다. 한편 자기 무릎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그 넘은,


"어쭈? 이 따식이 사람을 막 치네?" 하며 왼쪽 발로 택시 바퀴를 툭툭 걷어차는 게 아닌가!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래도 명색이 차를 타려던 손님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그 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여보쇼! 가만히 있는 택시를 왜 발로 차는 거요? 술을 마셨으면 곱게 집에나 갈 것이지."


그 넘은 게슴츠레한 눈을 치켜뜨고 삐딱하게 씌워진 뿔테 안경 너머로 기사 복장을 하고 서 있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쭈~ 넌 뭐야! 잔말 말고 이 차 쥔이나 오라 그래!" 하며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어라? 저 넘이 이 제복을 물로 보네? 택시 드라이버도 몰라보고.'


그 넘의 어이없는 말에 그는 기분이 나빴지만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해봤자 본전도 못 뽑을 건 뻔한 일, 그냥 한번 째려주는 걸로 대신했다. 그는 입고 있는 제복을 보란 듯이 가슴께를 툭툭 쳐 보이고는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끼리릭 기어를 넣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에이~ 딴 데 가서 손님을 태워야지!'



한 백여 미터나 굴러갔을까?


"이 차 어디로 가는 거야? 난 상곡동엘 가야 하는데."


난데없이 뒤통수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깜짝 놀라 뒤돌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 틈에 올라탔는지 아까 그 술 취한 넘이 뒷좌석에 떡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어라? 저 넘이 언제 탔지?'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보고 그 넘이 한마디 덧붙였다.


"어라? 너 아까 나한테 시비 건 놈 맞지!"



<2회에 계속>


* 오래전에 쓰다가 미완성으로 두었던 글인데.. 이번에 완성해보려고 합니다. 시대 배경은 2천년대 초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