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는 길

Driver(최종회)

by 이은호



해가 바뀌고 3월이 되었다.

영은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한성수는 영은이 일어나자 밥을 먹이고 양치질이며 세수하는 것을 봐주고 나서 앞에 앉히고 머리 손질을 해주었다. 긴 머리를 양쪽으로 반씩 나누어 빗기고 빨간 방울이 달린 고무줄로 예쁘게 묶어 주었다.

자줏빛 교복을 입히고 그 위에 연한 분홍색 외투를 입혔다. 빨간 운동화를 신고 신이 나서 깡충거리며 뛰어가는 영은을 한성수는 서너 발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뒤쫓았다.


학교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학교 앞에 다다르자 엄마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어린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가 뒤 따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한성수처럼 아빠와 둘이서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한성수는 진짜 아빠도 아니었으니 그런 경우는 아마도 없지 싶었다.


학교 강당에서 입학식이 있어서 모두들 강당에 모였다.

1학년 신입생은 모두 5개 반이었는데 영은은 2반이었고 젊고 예쁘장한 여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들만 반별로 선생님 앞으로 줄을 섰고 학부모들은 모두 뒤편으로 가서 강당 의자에 앉던지 아니면 서서 입학식 구경을 하였다.

아이들이 서 있는 줄 속에서 영은이 고개를 살짝 내밀고 한성수를 보며 손을 흔들었고 그도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입학식이 시작되었고 오래 걸리지 않아 식이 모두 끝났다. 이어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배정받은 반으로 이동하였다.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학교 시설에 대한 소개와 교과 일정 그리고 보호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 미리 준비된 유인물을 나눠 받은 후 첫날 일과는 모두 끝이 났다.


한성수는 영은과 함께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국집에 들렀다.

역시 입학식 졸업식 등 무슨 날에는 짜장면이 최고 아니던가?

영은은 입가에 까만 짜장을 묻혀가며 맛있게 먹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한성수의 입가엔 밝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 미혜 씨가 함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성수는 미혜 씨와 헤어지고 영은이와 둘만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니 바빴다기보다는 하나에서 열까지 결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일들의 연속이라 무엇이 무엇인지 정신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영은이랑 같이 지내기 시작한 첫날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 떨어져 엉엉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여자아이를 어떻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야 할지, 무섭다고 혼자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그래도 여자아이인데 데리고 자야 하는지 아닌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다.


다음날 한성수는 일어나자마자 가사 도우미를 찾았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곳 수배를 한 끝에 50대의 경험도 많고 성격도 싹싹한 아주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

그분은 젊은 홀아비 혼자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한성수를 불쌍하게 여겨 아주 살뜰히 살펴주었다. 일주일에 세 번을 방문하여 집안일을 봐주었는데 한성수는 그 아주머니로부터 밥 짓기부터 빨래하기, 청소하기, 기본적인 음식 만들기까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사 일을 배웠다.


당장 하는 일이 없었던 한성수로서는 남는 게 시간이었고 어차피 영은과 함께 생활하려면 기본적인 집안 살림을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였고 아주머니도 알고 있는 기술을 성심껏 전수해 주었다.

한성수가 그렇게 하나 둘 집안일을 하다 보니 그게 또 희한하게 본인 적성에도 맞는 듯싶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흥미가 붙어 아주머니가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할 줄 아는 모범적인 가정주부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성수로서는 영은이를 씻기고 속옷을 갈아입히는 게 가장 곤란한 일이었는데 아주머니가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어린 영은이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씩 한성수는 영은이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카운터에 부탁하여 여탕에 때 미는 아주머니 도움을 받아 영은이를 깨끗하게 씻겨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용실에도 데리고 가 같이 나란히 앉아 머리도 하고 영은일 예쁘게 꾸며 주었고, 미용실 아주머니로부터 여자 아이 머리 손질과 고무줄 묶는 법 등 기술을 전수받아 영은이 머리를 예쁘게 꾸며줄 실력까지 쌓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여느 엄마가 딸을 키우는 것 이상으로 깔끔하고 예쁘게 영은이를 꾸며 데리고 다녀, 이웃 아주머니들로부터 정말 딸아이를 예쁘게 잘 키운다고 칭찬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한성수가 안돼 보였는지 아니면 어린 딸을 예쁘게 키우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참한 색시감이 있는데 생각 없느냐는 의사 타진을 하기도 하였다.



한성수는 어려서 일찍 친부모를 잃고 자식 없는 노부모의 손에 맡겨져 외롭게 컸다. 학창 시절에는 밖으로 나돌며 사고나 치고 다녀 노부모의 속을 무단히도 썩였고 줄곧 방황하며 자라 가족 간의 사랑이나 정이란 걸 몰랐다.

그러나 영은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 자식을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한편 아빠 없이 자란 영은은 한성수와 같이 생활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는 또 다른 든든하고 자상한 아빠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한성수를 잘 따르게 되었다.

영은은 가끔씩 죽었다던 아빠가 사실은 한성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성수랑 재밌게 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빠!'란 소리가 한 번씩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한성수와 딸 영은과 헤어진 차미혜는 오빠 차상호와 함께 자수를 하였다.

차근차근 준비해 두었던 자료들을 모두 제출했음은 물론 유수의 로펌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법정에서 대응하였다.


본거지 및 은신처에 대해서 환하게 알고 있는 차미혜의 제보로 빰에 칼자국 일당은 대부분 체포되었다. 그리고 빼돌렸던 돈으로 제3국에서 합법을 가장하여 리조트 개발사업을 하던 해외조직도 인터폴과 공조하여 체포, 국내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은 마약 조직이 마약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국내의 유망한 벤처기업을 장악한 후, 합법을 가장하여 해외로까지 사업을 확대한 특이한 경제사건으로 대서특필되었다. 아울러 관계 당국은 유사한 경우가 또 없는지 업계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차미혜와 차상호가 자수를 하였고 마약조직 일당을 체포하는데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사안이 중대했던지라 둘 다 형사 처벌을 면할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 6월이 되었다.

차미혜가 드디어 나오는 날이 되었다. 한성수는 그동안 친해진 영은이의 반 친구 엄마에게 영은을 맡기고 차미혜의 마중을 나갔다.


그동안 차미혜의 부탁도 있었고 한성수의 생각도 그래서 영은과 함께 차미혜를 한 번도 면회하지 않았다.

다만 한성수 혼자서 가끔씩 차미혜를 찾아 영은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영은에게 엄마의 낯선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영은이 엄마를 보지 못한 게 벌써 10개월이 된 셈이었다.



아직 주위가 어두운 새벽.. 한성수는 한쪽 구석에 차를 세워놓고 초조하게 서 있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한참을 기다렸음에도 시간을 다시 확인하면 겨우 5분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기가 수차례 반복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문 안쪽으로 불이 환하게 켜지고 인기척이 들리더니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한성수는 긴장하여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드디어 그녀.. 차미혜의 모습이 보였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한성수를 알아보고 옅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반면에 한성수는 너무도 반갑고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차미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를 양팔을 벌려 와락 껴안았다.

그녀는 잠시 놀란 기색이었으나 이내 두 팔을 벌려 한성수를 마주 안았다.


두 사람 다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차미혜는 한성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고.. 한성수는 '내가 혼자 영은일 키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아요?' 하는 원망의 눈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성수 씨!"

"뭘요, 미혜 씨 고생 많았지요?"

"영은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를 알아볼까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 있나요? 누구 딸인데! 하하"


한성수는 한 팔로 차미혜의 어깨를 감쌌고 차미혜는 한성수의 품으로 몸을 살포시 기대며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검은색 SUV 차에 미등이 켜지고 시동이 걸리더니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그 위로 방금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의 붉은 기운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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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어려운 근무여건 속에서 고생하시는 택시 운전기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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