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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an 03. 2023

전무님의 욕심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J기업의 강 전무는 회장님의 처남이다.


과거 여성들이 일찍 결혼하여 자녀들을 대여섯 명씩 낳아 기르던 시절, 친정엄마와 시집간 딸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여 같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들이 더러 있었다.


강 전무가 그랬다. 강 전무의 큰 누나가 J기업의 회장과 결혼을 하였는데 친정엄마랑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졌고, 그렇게 태어난 게 J기업의 강 전무와 현재의 사장이었다.

강 전무와 사장은  비록 촌수로는 삼촌과 조카 사이였지만, 나이가 동갑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거의 친구같이 지냈다.


강 전무의 큰 누나는 늦둥이 동생을 자기 아들만큼이나 끔찍이 좋아해서, 아들 옷을 살 때나 장난감을 살 때 꼭 하나를 더 사서 어린 동생에게 주었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회장도 그런 처남을 자식처럼 귀여워하였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한 강 전무는 자연스럽게 J기업에 입사하였고 승승장구하여 전무까지 올랐다. 그리하여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사장도 강 전무를 무시하지 못하는 공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었다.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그렇듯, 어려서부터 힘든 것 모르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자란 강 전무는 마음이 푸근하고 정이 많았다.


꼭 챙기지 않아도 될 직원들의 세세한 경조사까지 챙겨 돈봉투를 건넸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마련하여 직원들에게 돌렸다.

회식을 하면 꼭 직원들을 2차까지 데리고 가 개인 돈으로 술을 샀고, 여직원들에게는 집에 갈 택시비까지 챙겨 주었다.

회사에 임원들 골프모임이 있었는데 라운딩이 끝나면 꼭 자신이 잘 가는 단골 술집에서 2차로 뒤풀이를 하였다. 물론 술값은 강 전무가 다 계산하였다.


강 전무가 가진 건 돈과 시간뿐이어서 직원들에 대한 그 정도 씀씀이는 푼돈에 불과하였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모두 강 전무를 잘 따랐고, 강 전무 말이라면 사장님 말씀 이상으로 직원들에게 힘이 있었다.


강 전무는 동네 유지 노릇도 톡톡히 하였다.

지역 장학회의 이사를 맡아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였고, 주민센터, 파출소, 소방서 등에도 가끔씩 들러 주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들을 격려하였고, 기초 단체장이나 기초의회 의원들과도 폭넓은 교류관계를 형성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누가 보아도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강 전무의 삶이었지만, 강 전무는 늘 마음 한편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바로 회사의 일인자, 사장님으로 불리는 것이었는데 J기업에서는 현재의 사장이 건재하고 있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 거래관계로 알고 지내던 인사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자기 동서가 대기업 연구실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신소재 개발 아이템을 가지고 독립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강 전무가 사업자금을 대고 공동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사장은 강 전무가 하고 자기 동서는 연구소장을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사업설명을 자세하게 들은 강 전무는 귀가 솔깃해졌다.

개발에 성공하여 대기업 납품으로 이어지면 금방 수천억 원대의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강 전무는 일단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H신소재라는 회사 및 연구소를 차리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J기업의 전무 역할은 그대로 수행하면서 별도로 회사를 차린 것이었는데, 워낙 회장님 뒷배가 든든하여 사장조차도 강 전무가 다른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하여 입을 대지 못하였다.


강 전무는 J기업에 앉아 있었지만 모든 신경과 관심은 H신소재에 쏠려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를 붙잡고 그 회사 직원들과 통화하였고, 매일 결재를 받으러 오는 그 회사 관리이사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다.


연구소에서의 신소재 개발은 성공하였고, 이어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건설에 들어갔다. 공장건설과 시설투자에 수백억 원의 자금이 소요되었는데 은행에 차입을 하면서, 강 전무는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넣었다.




연구개발은 전문가가 맡아서 한다고 하지만, 신설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장이 차고앉아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강 전무는 남의 집에 앉아 관리이사의 보고만 받고 전화로 지시를 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H신소재의 관리이사와 연구소장 간에 회사 주도권을 두고 알력이 생겼고, 직원들도 내편이니 네편이니 하면서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한 제품이 막상 대량생산에 들어가자 대규모 불량이 나고 좀처럼 공정이 안정화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운영자금이 달리게 되었고, 강 전무는 개인보증으로 은행차입을 더 늘려 그 돈을 메꾸어 나갔다.


우여곡절을 거쳐 공정이 안정화되고 대기업에 납품이 이루어지면서 회사는 정상괘도로 진입하는 듯했다.

이제 곧 수천억 원대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길만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강 전무는 그런 회사의 사장으로, 이제껏 마음 한구석을 채우지 못했던 인생의 퍼즐을 완성시키는 기쁨을 누리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불행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왔다. 아니 사실은 당연히 예견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기업에 납품한 제품에 문제가 생겨 대규모 클레임을 맞은 것이다. 소재를 사용한 제품에 문제가 생겼고, 분석 결과 샘플로 제출한 것과 대량 납품한 것과의 품질 차이가 밝혀져, 납품가의 서너 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품질문제를 둘러싸고 사내에 다툼이 생겨 품질문제를 해결해야  연구소장이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결국 H신소재는 부도가 났고 담보로 제공된 강 전무의 부동산은 모두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졸지에 가진 재산의 9할을 넘게 잃은 강 전무는 큰 병이 났고, 건강을 잃은 그는 J기업마저도 그만두어야 했다.


병실에 누워 강 전무는 뒤늦은  후회를 하였다.

그냥 가진 것으로 직원들과 이웃들에게 베풀면서 어르신 대접이나 받고, 골프 치고 여행 다니고 하고 싶은 일 다하며 즐기고 살아도 평생을 다 못쓸 재산인데, 뭐 한다고 욕심을 내서 이 모양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잠겼다.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바싹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졌다.

그리고 강 전무의 푸석한 두 볼을 타고 눈물이 또르르르 굴러 떨어졌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 하숙생 가사에서



* 본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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