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에 빠진 마우스

그때는 말이쥐~ #1

by 이은호



이 글은 미키 마우스나 스튜어트 리틀과 같은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쥐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니지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생생하고 영악하고 때로는 소름 끼치는 실제 쥐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비위가 약하신 분은 건너뛰기를 권고합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을 할 무렵 가족 모두가 나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리고 말았다. 진작에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그쪽 지역으로 진학을 해서 쫓아갔을 텐데,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사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졸지에 혼자 떨어진 나는 할 수 없이 하숙을 하게 되었고, 형편이 넉넉지 못한 관계로 비싼 집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산비탈에 위치한 허름한 하숙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주인집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외동딸이 있어서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만 보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어쨌든 그때 하숙집에서 겪었던, 내 머릿속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정말 더러운 일을 큰맘 먹고 밝히고자 한다. 정말 그 기억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또렷하게 떠올라 날 괴롭히는 추억 아니 악몽이 되고 말았다.



당시 나는 지금과 달리 매우 부지런해서 아침 5시 반이면 눈을 떴다. 별로 할 일도 없었지만 폼 잡고 어슬렁거리다가 '기상!' 하며 하숙생들을 깨우는 게 내 유일한 취미이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는 날이 밝기 전에는 절대로 밖에 안 나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일찍 일어나 맘 잡고 공부나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성공했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 막심이다.



사건이 있던 날은 늦가을이라 6시도 안 된 시각이면 제법 캄캄한 새벽이었다. 난 잠이 덜 깬 졸린 눈을 두 손으로 비비며 칫솔을 입에 물고 비실비실 밖으로 나갔다.


당시 그 집에는 마당 한가운데에 세면대가 있고 물을 받아놓는 빨간색 커다란 물통이 있었다. 난 맨날 하는 일이라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양치질을 하고 파란색 플라스틱 물바가지로 물을 떠서 입을 헹궜다.


그런데 찝찔~ 비릿비릿~ 콤콤?!


기대했던 양치질 후의 상쾌함은 어디 가고, 왠지 물 맛이 이상하고 영 기분이 찜찜한 것이었다.


이거시 아닌디...


난 다시 한번 물을 떠서 입에 물을 머금고 쩝쩝 맛을 보았다. 그러나 물 맛은 여전히 찝찔 비릿 콤콤!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든 나는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물통 속을 들여다보았다. 날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커먼 물속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감이 딱 오는 것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물통에 바가지를 넣고 휘휘 저어 보았다. 기어이 뭔가가 바가지에 걸렸다.


이런 세상에나!


배가 빵빵하게 불은 쥐 한 놈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몸이 2/3쯤 물에 잠겨 두 앞발은 하늘로 치켜들고 새까만 눈을 똥그랗게 뜬 채 바가지에 담겨있는 게 아닌가? 주둥이는 헤 벌어져 있었고 그놈의 까만 꼬리 절반은 바가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런 그놈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소름이 쭉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삣 섰고 너무도 놀란 나머지 바가지를 홱 집어던졌다.


웩웩~


하지만 먹은 것 하나 없는 새벽, 아니 아까 맛본다고 물을 넘기기는 했었다,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요란하게 해대었다.



마당에 있는 물통 위로 전깃줄이 지나고 있었다. 가끔 보면 쥐란 놈이 마치 곡예라도 하듯 전깃줄을 타고 지나갔는데, 난 그걸 재밌게 보았었다. 앙증맞은 발 네 개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쪼르륵 달려가다가 중간에 딱 멈춰 서서, 코를 씰룩씰룩거리다가 또 냅다 달려서 반대편 처마 밑으로 사라지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이내 또 한놈이 나타나서 똑같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르는 모습이 여간 재미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중 술 취한 놈이라도 있었는지, 밤중에 서리 앉은 미끄러운 전깃줄을 지나다가 최소한 발 두 개 이상을 동시에 헛디뎠던 모양이었다.


덴장할!


난 그날은 물론 이후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식욕이 떨어져서 밥을 굶기론 제일 오랫동안 굶었던 가슴 쓰라린 기억이었다.




세월이 일 년쯤 지나 같이 하숙을 하던 한 선배로부터 그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선배가 졸업을 앞두고 하숙집을 떠나게 되어 조촐한 환송연을 가졌는데, 술에 얼큰하게 취해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던 선배가 물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뜻밖의 고백을 하였다. 그 선배의 이야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대학 다닐 때 하숙하던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부지런해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하였다. 늦가을이었던 어느 날, 퍽 캄캄한 새벽이었다. 난 잠이 덜 깬 졸린 눈으로 화장실에 갔다. 같이 하숙을 하던 한 후배 녀석은 일어나면 맨 먼저 양치질을 했는데, 난 똥부터 쌌다. 그 녀석은 위생을 중요시했을지 모르지만 난 건강을 최고로 삼았다.


푸세식 화장실에 들어가 앉으려는데 똥 무더기 속에서 뭔가가 꼬무락거리는 게 보였다.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보니 쥐 한 마리가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짜식! 마당이고 화장실이고 전깃줄 타는 걸 좋아하더니 결국은 떨어졌구나. 불쌍한 놈!


불쌍한 맘이 든 것도 잠시, 난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그래서 밖에 나가 꼬챙이를 하나 주워서 그 녀석을 꺼내려고 이리저리 건드리다가, 그만 잘못하여 뾰족한 꼬챙이로 그놈의 주둥이를 푹 찔러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쭉 뻗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몸에 똥칠하고, 물에 빠진 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그저 살려고 꼬챙이를 물다 피칠갑을 하며 죽은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양심에 가책을 느낀 나는 그놈을 묻어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내세에 뭘로 태어날지도 모를 놈을, 피똥을 뒤집어쓴 채로 파묻기는 찜찜해서 씻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놈을 꼬챙이에 꿴 채 마당으로 들고 나왔다.


마당 한가운데는 세면대가 있고 그 옆에 물을 받아놓는 큰 물통이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그 넘을 막 씻으려고 하는데, 그놈이 갑자기 푸드득! 몸부림을 치더니 스스로 물통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을 네발로 발발거리면서 스스로 피똥을 말끔히 씻어내는 아닌가? 죽어가는 마당에 스스로 목욕재계를 하다니...


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면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직 일을 안 본걸 깨달았다. 배가 사르르 아프면서 뒤로 막 밀려 나오는 신호가 왔다.


설마 '이 시간에 누가 나오겠나?' 싶어 그놈을 건져내는 걸 일단 뒤로 미루고,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똥 싸는 용무를 마치기 위해 급하게 화장실로 내달았다. 그 시간이 5시 반이나 되었을까...




난 선배의 고백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래서 그때 물맛이 찝찔~ 비릿비릿~ 콤콤에 더해서 꾸리꾸리 했었구나!


우웩!!




* 이 글은 오래전 유즈넷 뉴스그룹(유머)에 올렸던 글을 다듬은 것인데, 그때 댓글로 선배 역할을 해주신 분을 찾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연락 한번 주세요. 쥐포에 소주 한잔합시다!^^


* '똥' 단어가 거시기해서 '×'로 표현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브런치 글을 검색해 보니 너무도 많은 글에 '똥'이 버젓이 쓰이고 있어, 글의 사실감을 위해서 '똥'을 썼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