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말이쥐~ #번외편
막상 쥐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글을 쓸만한 소재가 없어, 부득이하게 마우스 시리즈 번외편을 발행해 봅니다.^^
오래전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가슴설레게 했던 이성과의 통신 수단으로 펜팔(pen pal)이 있었다.
이성에 눈을 뜨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찾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참한 여학생을 한번 엮어보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들이 있었다.
버스정류소에서 보는 여학생이나 이웃 여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에게 집주소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고, 도망치듯 뒷걸음을 친 기억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수학여행을 가서는 타 지역 여학교 학생들이 묵고 있는 숙소 담 너머로 집주소가 적힌 쪽지를 던져 넣기도 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가다 여학생들이 보이면 창문밖으로 쪽지를 던지는 방법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노력들의 결과가 펜팔로 이어진 친구들이 있었는데, 분홍색 꽃편지를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친구를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이메일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다음(Daum)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기 시작한 '한메일'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이메일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도 당연히 한메일 계정을 만들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메일계정에는 쓸데없는 스팸메일만 잔뜩 쌓이곤 하였는데, 그래도 그때 메일이 요긴하게 쓰였던 게 바로 메일 친구, '멜친' 만들기였다.
과거 펜팔의 향수를 느낀 사람들이 있었고, 온라인상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편지보다 편리한 메일을 주고받는 게 또 묘한 매력이 있어서, 멜친을 사귀는 게 유행을 탔었다.
그 시절 나도 우연한 기회에 멜친을 사귀게 되었다.
뭐 그런 게 있잖은가?
'부부간에도 말 못할 사연이 있는데, 익명이 보장된 멜 친구라면 서로의 고민도 들어주고 조언도 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는...
첨엔 30대 중반의 아가씨나 진배없는 미시라고 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한참 위인 50을 코앞에 둔 쥐띠 아줌마였다.
그 당시 그 나이에 인터넷을 하고 이메일을 사용했으니 보통 여자는 아니었던 셈이었다. 그러니 내가 속을 수밖에...
하지만 무려 10년을 넘게 뻥을 치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 나이가 대수냐? 여자가 이쁘고 몸매 고우면 됐지! 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본인이 그랬다. 나이는 좀 먹었지만 얼굴과 몸매는 자신 있다고...
그렇다고 도끼눈을 뜨고 이상하게 볼 건 없다.
그녀와 난 정말 순수하게 메일만 주고받았으니까!
한 번은 그 쥐띠 아줌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언제부턴가 심하게 속이 아프고 먹은 걸 토하고 해서 병원에 다녔는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 소개로 용하다는 '체증 내리는 곳'을 찾게 되었다.
80이 다 되었지만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체증 내리는 분이었는데, 가슴을 쓸어내리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손끝을 침으로 따서 피를 내면서 체증을 내렸다.
며칠 동안 피를 보며 고생한 덕분에 속 아픈 건 나았는데, 더 큰일이 생기고 말았다.
체증 내리는 일 외에 점도 보았던.. 주위에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함.. 그 할머니 왈,
"음력 9월을 넘기기 힘들겠어!"
그 말을 들은 쥐띠 아줌마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신을 신봉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세 달도 안 돼서 죽는다는데 마음에 걸리지 않았겠는가?
그곳에서 나온 쥐띠 아줌마는 다른 점장이를 찾았고, 꼭 죽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길한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최근에 신이 내려 한참 신빨이 서 있는 동자보살은, '웬 아저씨가 울다가 웃다가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였다.
동자보살 말을 들은 쥐띠 아줌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의심이 가는데, 만일 자신이 죽으면 무덤에 잔디도 자라기 전에, 남편이 새파란 뇬하고 놀아날 걸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죽을 수가 없었다.
쥐띠 아줌마는 할머니를 다시 찾았고,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지라, 친절한 할머니는 그 비방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칠공으로 피를 흘리며 죽을 상'이라며, 자기 띠에 해당하는 동물을 잡아서 꽁꽁 묶고 하얀 창호지로 감싼 다음, 검은 붓으로 창호지에 본인 이름을 적어서 차들이 다니는 길에 놔두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 동물이 차에 치이면 집으로 가지고 와, 밥 한 그릇과 정수 한 사발을 떠놓고 두 번 절을 한 뒤, 이름이 적힌 창호지는 불살라 버리고 죽은 동물은 산속에 묻어줘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돈 50만원을 주면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쥐띠 아줌마는 반신반의했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고, 만일의 하나를 생각해서 그 말대로 비방을 실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50만원이 아까워 본인이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다.
쥐띠 아줌마는 첨부터 난관에 봉착하였다. 우선 쥐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쥐 보기가 힘든 데다가 남들 보기에 민망하여 몰래하자니 더욱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철물점에서 어렵게 구한 쥐덫 4개를 쥐들이 들락거릴만한 하수구 입구에 설치하였다.
허나 먹고살만하여 배부른 쥐들은 잡히지가 않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쥐띠 아줌마는 애가 닳아 한밤중에 정한수를 떠 놓고 빌었다.
'달님, 제발 쥐 한 마리만 내려 주세요!'ㅜ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달님이 굽어살펴 주셨는지, 나흘째 되는 날 쥐 한 마리가 잡혔다. 그것도 몸집이 큰 왕쥐로!
솔직히 쥐가 아줌마 몸집을 닮았대나 어쨌대나...
쥐띠 아줌마는 쥐가 징그러웠지만 눈을 질끈 감고 실로 두 다리씩 꽁꽁 묶었다.
그리고 창호지로 둘둘 만 다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이름을 창호지 위에 적었다.
우여곡절 끝에 쥐띠 아줌마는 비방대로 모든 일을 마쳤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세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무사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쥐꼬리 대신 남편 꼬리를 밟는다고 바쁘다고 했다.
밟힐 듯 밟힐 듯 밟히지 않는 그 꼬리가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든다고 하소연을 했다.
내가 그랬다.
"덫을 한번 놓으시죠!"
귀가 솔깃해진 쥐띠 아줌마는 조만간 내가 사는 곳에 올 일이 있다며, 한번 만나서 의논해 보자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