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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24. 2023

마우스 시리즈의 진실

그때는 말이쥐~ #마무리



쥐 이야기의 1,2편에서 다소 황당하고 쇼킹한 글을 썼었는데, 아마 많은 분들이 그 글을 보시고 '이거 진짜야?' '설마!' 하고 의심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보시고는, '에이, 지어낸 이야기잖아!' 하고 짐작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사실일 거라고 믿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계신다면, 그분은 앞으로 은하계를 지킬 제다이로 거듭날만한 잠재력을 갖춘 분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글에서 쥐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진실 여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마우스 시리즈를 진짜로 끝내고자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반 어느 날이었고, 장소는 회사 사무실이었다.

이사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셨다.

"요즘 윈도운가 뭔가 하는 게 각광을 받고 있다던데, 그걸 사용해 보고 이야기를 해주게!"


당시 회사 회장님은 주로 서울에 주둔하고 계셨는데, 서울의 일번지에서 접촉하시는 신문물들을 보시고는, 회사 임원들에게 한 번씩 씀하셨다.

"그래 자네들은 이런 걸 아나? 지방에 있다고 신문물에 뒤쳐져서는 절대로 안된데이, 뭔말인지 알긋나?"


회장님께서 신문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그런 게 있습니까?' '그게 뭔데요?' 했다가는, '그래 니들이 아는 게 뭐꼬?'하고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게 뻔했기 때문에, 평소에 회사 내에 신문물의 출현을 탐지하는 경계병을 육성시켜 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렇게 하여 그나마 제일 할 일 없어 보이는데다가,  새로운 것 없나 하며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는지, 나한테 그 임무가 떨어진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돈이 좀 들겠는데요?"

"아 이 사람아! 지금 돈이 문젠가? 임원들이 다 바보취급받게 생겼는데 말이야!"




당시 사무실에서는 286AT 기종에 흑백 모니터가 달린 PC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1인 1PC가 아니라 부서별로 한두 대씩밖에 없어서, PC를 쓰려면 짬밥순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교대로 사용해야만 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마치려고 미리 이면지에 초안을 잡아놨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손가락을 휘날리며 자판을 두들겨다.

PC 사용이 서투르던지 초안이 잘못되어 제때 일을 끝내지 못하는 불상사라도 생기, 그날은 여지없이 남아서 잔업을 해야만 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돈 걱정 하지 말고 맘껏 장만하라니 이런 횡재가 어딨겠는가? 

앗싸~!


나는 잽싸게 수소문하여 386DX 기종에 컬러 모니터에, PC통신을 위한 모뎀도 넣고, 업무와는 전혀 관없는 사운드 블라스터까지  제법 폼나는 장비를 구입하였다.

사운드 블라스터는 리얼한 소리를 생생하게 듣기 위한 필수장비였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라 IBM PC가 아닌 IBM 호환기종을, 그것도 대기업 완제품이 아닌 조립 PC를 고르는 것으로, 회사의 경비절감에 기여했다는 명분까지 추었다.

이사님께는 IBM PC 대비 반값으로 구매했다고 보고를 드렸고, '그래, 니가 잘났다'라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돈으로 조립 PC에 350만원쯤 들었으니까 큰돈은 큰돈이었다.


그것으로 윈도우 3.0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Solitaire'나 'Reversi'라는 게임을 하고 놀았다.


당시 MS 윈도우 환경에서 돌아가는 업무용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고,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는 여전히 286PC에 MS-DOS 환경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내가 쓰는 PC는 완전 내 전용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이후 윈도우 95가 나왔고, PC도 386을 거쳐 486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윈도우 95는 어찌나 버그가 많았는지, 95번을 지웠다 다시 깔아야 제대로 굴러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PC가 펜티엄으로 바뀌었고, 윈도우 2000이 나왔다.

그러면서 사무실에서의 PC환경이 확 바뀌게 되었다.


그런 변화가 올 때마다 제일 먼저 내가 신문물을 구입하여 사용하게 되었고, 이후 회사에 차례로 보급되었다. 사실상 회사의 얼리어답터 역할을 한 셈이었다.


그렇게 고급 장난감을 가지고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기웃거리던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게 바로 '유즈넷 뉴스그룹'이었는데, MS의 '아웃룩익스프레스'란 프로그램으로 접속할 수가 있었다.


유즈넷 뉴스그룹은 전자 게시판의 카테고리와 비슷한 분류체계를 갖고 있는 개방형 구조였는데, 여기에 데이터나 메시지를 올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올린 메시지에 'Re.***'과 같이 댓글을 달 수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han.rec.humor'라는 주로 유머를 올리는 뉴스그룹이었는데, 사용자가 상당히 많았고 꽤나 인기가 있었다.


뉴스그룹 중 또 하나 재밌는 게, 동영상을 바이너리 파일로 잘게 쪼개 올려놓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희귀본(?) 동영상을 내려받아 몰래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기하였다.^^*

바로 이때 사운드 블라스터가 제 값을 톡톡히 하였다.^^;


당연히 이런 유즈넷 뉴스그룹이 있다는 사실은 이사님께는 철저한 비밀로 하였다.--;




근무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나는 웹서핑을 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게 중요무였다. 신문물의 출현을 감지하...


그곳 'han.rec.humor' 올라있는 재밌는 글들을 보는 것도 내 일과였는데, 웃기는 이야기를 읽으며 혼자 키득키득하고 있으면 동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눈팅만 하다가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시답잖은 이야기를 올렸는데, 제법 반응이 괜찮았다.

그래 얼마 후 진짜 용기를 내어 내가 겪었던 경험담인 쥐 이야기를 올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곳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계신 몇몇 고수분들이 내가 올린 글에 댓글 형태로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주신 게 아닌가?

바로 하숙집의 선배이야기이다.


한편을 올리면 댓글로 이야기가 달리고, 또 한편을 올리면 다시 댓글로 새로운 이야기가 달렸다.

게다가 댓글에 또 다른 분이 대댓글까지 달아주어, 마치 쥐구멍에서 쥐새끼가 끝도 없이 기어 나오듯 새끼를 쳤다.

심지어 '쥐꼬리 선생님' 이야기는 5개까지 댓글에 대댓글이 달리며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은호 -> 담임선생님 -> 교장선생님 -> 교육감 -> 교육부장관까지 올라갔다.


즉, 쥐 이야기는 나 혼자 쓴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여러 명이 쓴 이야기인 것이다. 공동저술이라고나 할까?^^;

그 당시 네트워크는 강력했고, 사람이 머리를 맛대면 없는 쥐도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쓴 이야기 중 상당 부분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다.


예를 들어, 양치질을 하며 쥐가 빠져 죽은 물에 입을 헹궸다던지, 하숙집 천장에서 쥐를 잡았다던지, 지하벙커 환기통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던지, 상황실에 개구리와 쥐가 감전돼서 기절했다던지, 사병식당에서 국솥에 쥐가 빠졌다던지.. 실제로 병사들 급식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등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별명이 쥐똥인 선생님이 계셨고, J가 예뻤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세월이 20년이 넘게 흘렀고, 유즈넷 뉴스그룹은 새로운 서비스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더불어 거기에  실렸던 많은 이야기들이 사라졌고, 불행하게도 마우스 시리즈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나는 브런치의 한 귀퉁이에 쥐 구멍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우스의 부활을 꿈꾸며 슬그머니 풀어놓았다.


'브런치에 둥지를 틀고 마우스여 영원하라!'



그동안 마우스 시리즈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S. 요즘 외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데, 동화책에 의외로 쥐가 많이 등장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쥐는 우리 주변 어디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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