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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27. 2023

그때는 의리라도 있었지

교내에서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는 요즘 이슈되고 있는 학폭 문제에 대해서 실상을 파헤친다거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럴 주변도 못되구요.

다만 '라떼는 어땠지?' '그때는 학폭이 없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학폭으로 주변이 시끄럽다.

뭐 학폭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학폭을 다룬 드라마가 뜨면서 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 같다.


과거에 있었던 학폭 문제로 트로트 경연프로의 우승후보가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기도 하고,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나기도 한다.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입에 오르내리고, 방송사 PD까지 과거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나섰다.


학폭은 학생 간의 문제를 넘어서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폭력 행사로 까지 번지는 모양새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학폭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피해자로서 또는 가해자로서 혹은 그 가족으로...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는 어땠을까?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선생님한테 맞고 선배한테 맞고...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하며 선생님이 따귀를 올려붙이던 장면.

영화 '친구'에 나오는 학교모습이나 주변 풍경이 바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때의 모습과 똑같다.



학교에 별명이 '도깨비'인 눈이 부리부리하고 덩치가 큰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은근히 시동이 늦게 걸리는 타입이었다.


한번은 그 선생님 수업시간 중에 뒷좌석에 앉은 한 아이가 도시락을 몰래 먹다 걸렸다.

교탁 앞으로 불려 간 아이에게 '몰래 먹으면 밥이 더 맛있냐?' 하면서 머리를 가볍게 몇 대 쥐어박는 것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 자식이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하네! 자식아! 내가 허수아비로 보였냐?' 하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구타에 들어갔다.


'짝!'

도깨비의 쫙 펼쳐진 커다란 손이 그 아이의 뺨에 작열했고, 체구가 작은 아이는 비틀하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선생님의 손바닥이 다시 아이의 뺨에 작열했다.


점점 차오르는 부화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선생님은, 입에 거품을 물고 쌍소리를 내질렀다.

교탁 앞에서 시작한 매질은 교실 끝까지 이어갔고, 다시 아이를 교탁 앞으로 끌고 와서는 매질을 이어나갔다.


그날 그 아이는 몰래 먹은 밥 한 숟가락이 제삿밥이 될 뻔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그림 그리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몸을 쓰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싸움도 잘 못했고 친구들에게 모진 소리 한마디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키는 좀 컸지만 운동도 못하고 체격도 왜소한 편이라서 폭력이 난무하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내 몸 하나 지켜낼 주제가 못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법천지 같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폭이나 따돌림 같은 문제에 시달렸던 경험은 없다. 또 주위에 다른 친구들이 그런 일로 고민하거나 시달리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요즘 대두되는 학교폭력과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시대와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닐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불온서클이 있었다.

매년 신입생이 입학하면 그 서클의 선배들이 은밀하게 접근하여, 깡이 세고 힘깨나 쓸만한 들을 색출해서 자기 서클에 가입시키려고 난리를 쳤었다.

서클 이름도 '몬스터' '불사조' '아브락삭스'니 하여 그 이름만 들어도 왠지 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신입부원들이 모이면 이들을 데리고 학교 밖의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아지트로 갔다.

거기서 인내심과 담력을 키운다고 빳다를 쳤다.


'퍽! 퍽!'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멍이 들고, 피가 배어 나와 살과 속옷이 엉겨 붙었다.


아이들이 픽픽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지경이 되면 매질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앉히고 담배를 피우게 하고 술을 먹였다.

술도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사발로 들이켜게 하였다. 별로 술을 마셔본 경험이 없는 신입생들은 서너 잔이면 늘어졌고, 술기운에 빳다로 얻어맞은 자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한달 정도 정신교육이 끝나면 실전에 들어갔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나 주변의 불량배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들이 실제 싸움은 조직 폭력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나이라 오히려 더 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등을 예사로 휘둘렀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패싸움을 즐겼다.


패싸움을 하다 파출소에 잡혀가더라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훈방조치 되었고, 학교에서 유기정학 1~2주 처벌을 받는 걸로 끝났다.

어린 나이에 유기정학이나 무기정학 한두 번쯤 받는 건 훈장으로 알고 객기를 부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방학 때외곽 지역에 아지트를 마련또래 여학생들과 어울려 집단 혼숙을 하기도 했다.

밤새도록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소란을 피워,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여 단속에 걸리기도 하였다.

일종의 '섹*파티'를 벌였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에 이런 생활을 하던 고등학생 중 일부는 퇴학을 당하거나 졸업 후 조직 폭력배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로 학교 내에서는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특히 같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들은 같은 반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은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반아이들을 괴롭히는 놈이 있으면, '양아치 새끼!'라고 하며 응징을 다.


그랬기 때문에 반아이들을 괴롭히는 양아치가 발붙일 자리가 없었고, 같이 힘없고 평범한 학생들은 오히려 학폭이나 따돌림으로부터 자유롭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의리'라고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폭력조직이 많이 있었는데, 주로 유흥업소나 오락실, 사창가 등지를 주 무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조직에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신조로 삼았고, 조직을 위해서 타 조직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곤 하였다.


아마도 학교의 불온서클 아이들도 그런 흉내를 내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신군부가 들어서고 '삼청교육대'라고 하는 대대적인 사회정화 활동이 전개되었을 때, 고등학교에까지 인원 할당이 내려왔었다.

그때 동기 한 명이 잡혀갔다. 그 친구는 어린 나이에 거기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퇴소하고 나서 시름시름 않다가 죽었다.


불온서클에 가입하여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니던 아이들 중에는 뒤늦게 철이든 경우도 있었다.


한 친구는 기본 머리는 있었는지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교엘 갔고,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임원까지 지냈다.

불온서클 생활을 하면서 리더십과 카리스마라도 배웠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평범한 학생들과 불량학생들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들은 평범한 학생들을 절대 건드리지 않았고,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교내에서는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선생님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학교 내에서는 나름 원칙과 의리라는 걸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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