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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31. 2023

피라미를 찾아서(상)

피라미가 고래로 바뀐 사연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인 B상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어린 나이였지집안 형편상 편하게 대학교에 다닐 처지 못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상고에서는 배우는 교과목이 확실히 달랐다.

대학교 진학이 아닌 취업이 목표였기 때문에 거기에 필요한 과목이 과반이 넘었다.

게다가 주산, 타자, 부기 등 사무 업무에 필요한 기능도 익혀야 했고 검정시험을 봐서 졸업에 필요한 급수를 따야 했다.


학교에는 또 축구팀과 야구팀이 있어서 입학하자마자 응원가와 고함지르는 요령 익혀야 했, 바로 춘계대회에 투입되어 목이 터져라 '우리편 이겨라! 너희편 져라!'를 외쳤다.

켁켁! 목이 마르고.. 목이 쉬었다.


특활반으로는 문예반을 지원했었는데, 첫날부터 선배들이  감기고 무릎 꿇리고 정신교육을 는 바람에 질려서 바로 도망쳐 나왔다.

그 후로 찾으러 다니는 문예반 선배를 피해서 숨어 다녔고 보름쯤 지난 후에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에서 시간 보내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하였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



그나마 사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건 학교생활이 익숙해지고 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된 2학년 때부터였다.

특히 1학년에 이어 2학년까지 나의 담임이셨던 K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K선생님은 S대학교 사범대를 나오신 '생물'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는데, 미남에다가 키도 훤칠하고 성격도 활달하신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셨다.

우리가 보기에도 '어떻게 렇게 선택받은 우량한 유전자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멋진 분이셨다.

나이는 서른을 조금 넘겨 나와  조금 넘게 차이 나는, 사실상 큰 형님 뻘인 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술도 잘 드시고 춤도 잘 추고 고스톱도 잘 치셨다. 게다가 연애도 잘하셨다.

도대체 못하는 게 뭐람?!


2학년 새 학기가 시작 첫날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불러일으켜 세우셨다.

"우리 반 반장은 은호다. 모두들 박수로 환영해 주기 바란다."

얼떨결에 나는 박수를 받고 반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손짓하는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널 반장 시키려고 내 반으로 데리고 왔으니 네가 앞으로 반장을 하고, 이번 학기에 특활반으로 '생물반'을 새로 개설하는데 네가 특활반 반장도 맡아서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담임선생님께서 새로 만드신 특활반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과 재밌는 추억거리를 쌓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었다.



당시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학생과학전시회'가 열렸다.

거기에 우리 생물반에서도 출품을 하였는데, 주제는 '부산 근교 하천의 어류 분포'에 관한 조사였다.

낙동강의 한 지류인 양산천, 그리고 회야강과 수영천, 이렇게 세 개의 하천에 서식하는 민물 어류의 분포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민물고기는 염분 농도 차이로 바다로 나갈 수가 없으므로 그 하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폐쇄성'이 있다.

따라서 하천마다 주로 분포하는 어종이 다르고, 같은 하천에서도 어종 간에 먹이사슬이나 좋아하는 서식환경의 차이로 경쟁이 일어나게 되어,  중류 류별로 어종 분포가 다르게 나타난다.


때문에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직접 하천으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야 했다.

세 개의 하천, 상류 중류 하류에 각각 서식하는 물고기를 잡아서, 어종이나 개체수를 확인하는 게 필수였다.


즉,

앞으로 우리의 사명은 민물고기를 잡는 것이었다.

우리는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대신 낚싯대와 어망, 뜰채, 채집통을 짊어지고 선생님 뒤를 따랐다.



선생님 불알친구 중에 아주 재밌는 분이 계셨다.

조그만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또 아주 활달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계신 분이었다.

게다가 특히 중요한 건 민물낚시에 아주 일가견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선생님은 꼭 그 불알친구와 함께 민물고기 채집을 가셨다.

따지고 보면 고기 잡는 데는 오히려 그분이 사부고 우리 선생님이 조수인 셈이었다.

사부님은 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낚싯대를 매고 앞장을 스셨다.

자~ 나를 따르라!


수영천 상류에 도착한 우리는 피라미 낚시를 시작했다.

사부님은 '여울낚시'라고 하는 방법을 써서 피라미를 잡으셨다.

긴 낚싯줄에 20cm 간격으로 털이 달린 낚시 바늘을  연결 한 뒤, 낚시 바늘이 물살에 살짝살짝 튈 정도의 높이로 흐르는 물에 가로로 설치해 놓았다.

그렇게 해놓으면 물속의 피라미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낚시 바늘이 파리나 곤충으로 보여 덥석 무는 것이었다.


우리는 낚시 바늘에 걸린 피라미를 떼어내는 일을 맡았다.

물은 깊지 않았지만 물살이 좀  곳이라 물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꽤나 힘들었다. 

낚시 바늘에는 계속 피라미가 매달렸고, 우리는 바쁘게 물속을 허우적 대며 피라미를 떼어내 채집통에 담았다.

따가운 햇볕에 이마엔 땀이 흘렀고 아랫도리는 차가운 물속에서 오그라 들었다. 호두알이 복숭아 씨만 해졌을 때,

피라미가 가득 찼는데요!


이제 피라미 낚시는 끝났고 다음은 다른 어종을 잡을 차례였다.

바로 뜰채를 이용하여 하천 기슭 수풀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고기를 잡는 것이었는데, 사부님이 뜰채를 강바닥에 쫙 펼쳐서 고정시키고 있으면, 우리들이 위쪽에서 수풀사이를 발로 텀벙거리며 고기를 쫓아  뜰채 쪽으로 몰아갔다.

이 방법으로도 고기가 제법 많이 잡혔는데, 붕어 미꾸라지 기름종개 버들가지 민물새우 심지어 민물복어까지 잡혔다.

사부님, 이러다 씨가 마르겠는데요!



한나절 열심히 고기를 잡고 났더니 모두들 기운이 빠지고 허기가 찾아왔다.

우리는 고기 잡기를 중단하고 물에서 나와 하천가 돌무더기 위에 자리를 잡고 식사준비에 들어갔다.

버너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가지고 온 야채를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사부님은 낚시 실력뿐만 아니라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으셔서 정말 맛있게 매운탕을 끓이셨다.

물론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에다가 민물새우도 들어갔고, 모두들 배까지 잔뜩 고팠으니 어떤 매운탕인들 맛있지 않수가 있었으랴!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하얀 쌀밥이 보슬보슬 익어갈 때쯤이면 배낭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하야비치'라고 하는 보드카였는데, 선생님과 고기 잡으러 다닐 때 빠지지 않고 꼭 준비해 가는 필수품이기도 하였다.

하야비치는 색깔부터 이슬처럼 맑고 투명했고 뒤끝이 없어서 출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술이었다.


얼큰하고 진한 매운탕과 하야비치 술 한잔은, 초여름 강가에서 정말 딱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자, 선생님이 주는 술이니까 한잔씩 받아라!"

선생님은 우리들한테도 하야비치를 한잔씩 따라 주셨다. 어떻게 보면 그때 선생님한테 처음 주도(酒道)를 배운 셈이었다.


보드카 한잔을 꿀꺽 삼켰다.

속이 짜르르 울렸다.

뜨겁고 매운 매운탕 국물을 훌훌 마셨다. 

속이 시원하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중에는 선생님께서 남은 매운탕 국물로 손수 라면을 끓여 주셨는데 이게 또 예술이었다.

하야비치와 라면국물이 또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모두들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고 얼굴은 태양빛이 되어 씩씩거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야, 니들 노래 불러라! 내가 춤을 출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누군가 선창을 했다. 자연스럽게 모두들 따라 불렀다.

 ...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우리는 응원가로 다져진 실력으로 목청껏 노래를 불렀고, 선생님과 사부님은 두 팔을 벌리고 아랫도리를 씰룩씰룩하며 춤을 추셨다.

두 분이 어찌나 춤을 재밌게 잘 추던지 합을 한두 번 맞춰본 실력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배꼽을 잡았고 나중에는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그랬다! 우리는 이미 피라미나 쫓아다니는 조무래기가 아니었다.

커다란 고래를 꿈꾸며 동해바다를 헤쳐 나가는 모험가였다.


내일은 고래를 잡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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