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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05. 2023

피라미를 찾아서(중)

피라미 VS 갈겨니



작고 약한 존재를 표현할 때 '이런 피라미 같은 놈'이라고 하는데, 사실 피라미는 민물고기 치고 그렇게 작은놈이 아닙니다.

송사리 버들개 버들치 이런 놈들이 진짜 작은놈들이고 피라미는 그다음이죠.

피라미는 또 성깔도 있는데요, 물 위를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날아다니는 곤충도 날름 잡아먹습니다. 시시하게 물 바닥을 기지도 않고 물살을 거스르는 걸 즐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매운탕을 끓이면 맛있다는 겁니다.^^




피라미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민물고기로 갈겨니라는 놈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놈은 태생부터 차이가 있다. 피라미는 우리나라 토종인 반면 갈겨니는 중국계이다.

중국 것들은 물고기까지도 우리나라를 넘보는지 어쨌든 우리나라 하천에서도 갈겨니가 산다. 단 태백산맥 서쪽 지역에 한한다.


강의 발원지가 같던지 아니면 홍수가 나서 강이 범람한다던지 해서 민물고기가 이 하천에서 저 하천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갈겨니가 중국에서 넘어오다 태백산맥이라는 장애물을 만났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높디높은 산맥을 제 아무리 날고기는 갈겨니라 할지라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백산맥 동쪽 하천에서는 갈겨니를 볼 수 없다.


우리가 조사를 했던 부산근교 세 개 하천 , 동쪽에 있는 회야강에는 갈겨니가 없고 서쪽에 있는 양산천에는 갈겨니가 있다.

그럼 중간에 있는 수영천에는? 갈겨니가 있다. 옛날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생겼다.

부산의 동쪽 일원의 상수원 확보를 위해 양산 물금에 물을 끌어들이는 취수장이 있는데, 이 취수장을 통하여 낙동강의 물이 수영천에 있는 회동저수지로 넘어온다.

그래서 갈겨니가 수영천으로 유입된 것이다.


피라미와 갈겨니는 먹이사슬이나 생태환경이 유사하다.

같은 하천에서 이들 어종이 맞닥뜨리게 되면 서로 간에 경쟁이 일어나, 한놈은 상류 쪽으로 한놈은 하류 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생긴다.


'피라미와 갈겨니의 경쟁'

우리 생물반의 그다음 해 학생과학전시회에 출품할 과제였다.



3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특활반인 생물반 활동을 열심히 했다.

아쉽게도 K선생님은 내가 3학년이 되어서는 담임을 맡지 않으셨는데, 상고의 3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취업지도가 있으므로 다년간 취업지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생님들이 맡으셨다.

하지만 K선생님은 생물반 지도교사를 계속하셨기 때문에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여전히 유지하였다.


3학년이 되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대입준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겠지만, 상고에서는 달랐다.

물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열심히 취업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 당시는 요즘과 달라서 취업문이 그렇게 좁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어서, 특활반 활동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할 수 있기도 했다.



전년도 여름에 우리에게 민물고기 낚시 요령을 전수하셨던 맑은 영혼 사부님은 그다음 해에도 K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우리를 인솔하셨다.


우리는 배낭에 가장 중요한 하야비치 몇 병을 소중하게 챙겨 넣고 나머지는 대충 챙겨서 수영천으로 향했다.

이번 출조의 목적은 피라미와 갈겨니의 다수 포획, 그리고 반드시 생포(生捕) 해야 했다.

왜냐하면,

키워야 하니까!


그랬다. 이번 과제의 키 포인트는 같은 공간에서 피라미와 갈겨니를 함께 기르면서, 먹이사슬이나 경쟁관계를 관찰하여 그 현상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해 초여름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미 민물고기 낚시에는 어느 정도 이력이 난 우리는 사부님이 일일이 지시하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 준비를 하였다.

그런 모습을 선생님과 사부님은 대견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셨다.

그럼요, 우리가 누구 제자들인데요?


나절 열심히 고기를 잡은 결과 충분한 양의 피라미와 갈겨니를 포획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가지고 간 비닐봉지 여러 개에 물과 물고기를 적당하게 분산해서 넣고 입구를 묶었다.

그리고 떠내려 가지 않게 그물에 넣고 물속에 담가 두었다.


다음은 매운탕을 끓이고 식사준비를 할 차례였다.

이것 역시 사부님한테 전수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가 준비하였다.

선생님과 사부님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계셨다.


"은호야, 다음엔 니들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라. 우리도 데려올 테니까. 이렇게 잘 차려놓고 남자들끼리만 먹으려니까 영 기분이 안 나네..."

보글보글 잘 끓은 매운탕을 앞에 두고 하야비치 잔을 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예? 여자친구요? 없는데요?"

"뭐라고? 뭐 하냐 그 나이에. 아니면 내가 소개해 줄까?"

"예?!"

나는 얼굴만 붉혔다.


그런데 사실 선생님은 어여쁜 사모님에 초롱초롱 귀염뽀짝한 따님이 둘이나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런 선생님께서 여자친구를 들먹이다니...

우리는 심한 배신감과 함께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뭐야, 저 끝이 안 보이는 무한한 능력은?'



우리는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것들을 커다란 수족관에 넣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산소발생기를 설치하여 빵빵하게 산소공급을 해주었다.

커다란 수족관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차게 헤엄쳐 다니는 놈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제발 잘 자라다오! 그리고 쌈 좀 해다오! 누가 이기나 보자!'


"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오늘 모두들 수고했는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리고 은호야, 여자친구 얘기는 우리 마누라한테는 비밀이다!"

선생님께서 우리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 그럼 다음번엔 진짜로 여자친구를 데려오겠다는 거야 뭐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선생님 뒤를 따랐다.



사모님은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해 놓고 우리를 밝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두 딸도 예쁘게 차려입고 멋진 오빠들을 보고 달려들었다.

선생님께서 리 연락을 하여 식사준비를 해놓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미 선생님댁에는 몇 차례 본 적이 있었고 사모님의 음식솜씨도 익히 아는지라, 한참 허기진 우리는 군침을 흘리며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가운데 놓인 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한쪽 옆에는 맥주와 소주도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의 둘째 딸 은주는 세 살쯤 되었는데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통통한 게 아주 귀여웠다.

그간 몇 번 봐서 그런지 서먹한 관계를 넘어서 아주 붙임성이 있었다. 은주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내 무릎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어휴 쟤는 은호 학생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오빠야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호호호~"

내가 은주를 보고 말했다.

"은주야, 담에 오빠하고 물고기 잡는데 같이 안 갈래?"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맥주를 한잔씩 따라 주셨다. 그리고 건배 제의를 하셨다.

'피라미가 왕이다!'

'피라미가 왕이다!!!'



모두들 저녁식사를 배부르게 먹고 나서 사모님께서 내어주시는 수박이며 포도며 과일을 먹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스톱 한판 할까?"

"예? 고스톱이요? 할 줄 모르는데요?"

"처음부터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딨냐? 배우면 되지. 자 이리 와 앉아라!"

우리 그날 처음으로 고스톱이란 걸 쳤다. 그것도 선생님한테 배워서 선생님과 대등하게 바닥을 힘차게 두들겼다.


선생님은 정말 참 스승이셨다!

지난번 주도(酒道)에 이어 이번엔 화투패, 패도(牌道)를 배웠다!



며칠이 지났다. 같은 수조관에서 지내는 피라미와 갈겨니는 여전히 쌩쌩하게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기록지에 관찰일지를 적어 나갔다.


그러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학교에 갔는데, 사달이 났다.

주말 사이에 수족관에 있던 물고기들이 모두 배를 뒤집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토요일 밤에 폭우가 쏟아졌는데 순간 정전이 되면서 산소발생기가 작동을 멈춘 것이었다.


지금이야 발전기도 있고 성능 좋은 설비들이 있어서 순간정전에 대응이 되었겠지만, 그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런 설비를 갖출 수가 없었다.

대신에 누군가가 다시 가동을 시켜주어야 했었는데 주말 내내 아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망했다! 이번 과학전시회는 망해버렸다!



"선생님, 어떻게 하죠?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아 이제 다시 고기 잡으러 가기에는 틀렸는데요?"

"그렇지,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기록만 가지고 정리해서 출품하자!"


해 최우수상을 노렸던 학생과학전시회에서 우리는 그만 상(銅賞)에 그치고 말았다. 전년도에 금상을 받았었는데 말이다.


"선생님, 이참에 고래를 연구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의 노력에 비해 부진한 성과에 허탈해 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건 아니고, 산으로 가자! 명색이 생물반인데 죽은 피라미만 조물락거리고 있을게 아니라 산으로 식물채집을 가자! 등산도 하고 말이지."

선생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셨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 녹음이 한창 우거져갈 때 우리는 무주구천동 덕유산 정복을 목표로 부산역으로 모였다.


민물고기계의 대부, 맑은 영혼의 사부님도 밀짚모자에 배낭을 메고 부산역에 나타나셨다.


이번엔 사부님의 모습에서 심마니의 포스가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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