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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07. 2023

피라미를 찾아서(하)

산에서 낚시한 사연



표지사진으로 덕유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넣었는데요, 이 사진은 그럴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칫했으면 이 사진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찰나의 순간에 운명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수도 있죠.

돌이켜보면 그때가 그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얼마 만에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인가?

사실 여행이 아니고 식물채집을 가는 학교 특활반 활동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들뜬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우리뿐만 아니라 K선생님과 사부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두 분 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셔서 연신 벙긋거리시는 게 그 기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몰랐다. 오랜만에 사모님으로부터 벗어나 남자들의 자유를 꿈꾸고 계셨는지도...


이번 여행이 생물반의 특별활동이었지만 나와 친한 절친들이 함께 동행하였다.

이들은 생물반이 아닌 원예반, 보이스카웃, 원불교 등에서 특활반 활동을 하였는데, 내가 생물반 반장인 데다 다들 1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K선생님이 당시 담임이었으므로, 같이 어울린데도 조금도 불편할 없었다.

선생님도 환영하셨다.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3학년 학생들은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국적군으로 편성된 우리들은 덕유산 정복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우리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동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무주구천동행 시외버스를 탔다.

무주까지는 잘 포장된 도로를 달렸으나 무주에서 구천동까지는 아니었다.

비포장 도로였는데 마침 도로포장공사를 하는 중이라 도로 곳곳에 공사차량들이 넘쳐났고, 공사를 하는 구간에서는 양방향 차들이 차례로 교차를 하면서 힘들게 가야 했다.

덕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차가 심하게 흔들려 꽤나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에다가 형님 같은 선생님 그리고 놀라운 재주를 지닌 사부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옆의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다가 버스가 공사구간의 울퉁불퉁한 길을 가며 크게 흔들릴 때는 함께 박자를 맞추어 몸을 들썩이며 낄낄댔다.


구불구불 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달리다 한 번은 커브길을 도는데 바로 맞은편에서 다른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좁은 커브길에서 버스 두 대가 딱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런 길을 하루이틀 다녀본 솜씨가 아닌 듯한 우리 믿음직한 베테랑 기사님은, 피우던 담배 연기를 훅 내뿜 능숙하게 버스를 크게 회전시키며 돌아 나갔다.


'어어어어~'

두 버스의 머리 부분이 거의 맞닿으려순간 상대편 버스가 살짝 기우뚱하더니 길 가장자리미끄러지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앗! 저 버스 왜 저래?'


상대편 버스가 바깥쪽으로 살짝 기우뚱 기운채 멈춰 섰고 동시에 우리 버스도 멈춰 섰다. 그렇게 양쪽 다 정지된 상태에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버스 기사님이 피우던 담배를 창문밖으로 내던지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승객 여러분! 모두 움직이지 마시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계십시오. 그리고 앞쪽 손님부터 한분씩 일어나 운전석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오십시오. 짐은 그대로 두시구요."


그랬다!

기울어진 건 바로 우리 버스였다.


안 그래도 공사 중이라 더욱 좁아진 커브길을 버스가 크게 돌면서 오른쪽 앞바퀴가 길옆으로 이탈하였던 것이다.

 바람에 우리 버스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것인데 나는 반대편 버스가 기울어진 것으로 착각하였다.

오른쪽 옆은 거의 10여 미터 이상은 족히 될 만한 비탈길이었는데, 조금만 더 나갔더라면 영락없이 비탈길 아래로 차가 구를뻔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우리 선생님과 스승님은 역시 지도자였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고 바로 사태 수습에 나서는 것이었다.

스승님은 승객들을 앞쪽에서부터 차례차례 한 사람씩 내리도록 지휘를 하였고, 먼저 차에서 내린 선생님은 큰 키를 십분 활용하여 비스듬히 기울어진 운전석 문으로 힘들게 내리는 손님들의 손을 한 명씩 잡아주면서 안전하게 차에서 내리도록 도와주었다.

빠르고 일사불란한 지휘 덕분에 모든 승객이 조금도 동요 없이 무사히 다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나 궁금해서 버스 뒤쪽과 앞쪽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버스 오른쪽 앞바퀴가 도로를 완전히 이탈했는데, 마침 길옆 끝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바위 하나가 바퀴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만일 그 위치에 바위가 없었다거나 차바퀴가 한 바퀴만 더 굴렀더라도, 앞쪽 오른쪽 바퀴가 완전히 빠지면서 미끄러져 언덕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휴~ 완전 황천길 문턱이었네!'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고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마터면 새파란 청춘이 장가도 못 가보고 불귀의 객이 될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게 콩알만 해진 심장진정시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 있는데, 사부님께서 바로 옆에서 젊은 아가씨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버스에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분들이었는데, 몸매도 늘씬하고 얼굴도 예쁘게 생긴 이십 대 후반쯤 된 누나들이었다.


얼굴에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사부님이 누나들에게 말했다.

"저기 저 쪽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있죠? 아까 차에서 내릴 때 부축해 주었던 사람이요. 제 친구인데 부산에 B상고 선생님이에요. 옆에 아이들은 그 학교 학생들이구요. 아이들 인솔해서 특활반 활동을 온 것이죠."

"어머, 그러세요? 그럼 아저씨도 선생님이세요?"

"아뇨, 전 선생은 아니구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 사장님이시구나!"

"그리구요, 전 아직 미혼입니다. 아저씨가 아니구요."

"어머, 죄송해요."

"뭐 괜찮습니다. 제때 결혼했으면 애가 둘은 있을 나이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되세요?"

"우리도 부산에 사는데요, M백화점에서 일해요. 휴가 받아서 둘이 놀러 온 거예요."

"아 그러시군요! 여기서 동향사람을 만나니 반갑네요. 일정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그런 건 없는데 생각해 봐야죠."

"이렇게 예쁘신 여성분 둘이 여행하는 게 염려되는데, 다른 계획이 없으시면 저희랑 동행하는 건 어떠세요? 저희는 내일 덕유산에 올랐다가 모레 계룡산으로 갈 거거든요."

"어머! 계룡산엘 가신다구요? 거기 가고 싶어요."

"그럼 함께 가시죠! 여기서 동향사람을 만난 것도 그렇고,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그렇고, 우린 분명히 인연이 있었던걸 거예요."

"호호~ 그런가요? 좋아요! 함께 가요."


스승님이 선생님한테 가서 둘이 뭔 말을 속닥속닥 주고받더니, 선생님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부님과 함께 누나들한테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있던 자리에서 슬쩍 물러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중간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누나들한테 다가간 두 사람은 서로 뭔 말인가 주고받더니 이내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처럼 '하하!' '호호!'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랬다!

스승님은 역시 낚시의 귀재였다. 즐겨 쓰는 미끼는 바로 선생님!


미끼를 던져 놓으면 물고기가 입질을 했고, 스승님은 적당하게 밀당을 하다 정확한 타이밍에 낚싯대를 챌 줄 알았다.

하기야 얼굴 잘났지 키 크지 뽀얀 피부에 씩 미소를 날리면 어떤 처자가 심쿵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게 해서 스승님은 산속에서.. 그 위기 상황 속에서 월척을 낚으셨다.


피라미를 잡으러 갈 우리 보고 여자친구를 데려오라고.. 자기들도 데려오겠다고 하더니, 심지어 나보고 '여자친구 소개해 줄까?' 하시더니 실제로 빈말이 아니고 자신이 있으셨던 것이었다.


두 분은 필시 소싯적부터 함께 손발을 무수히 맞춰온 사이가 분명하였다.

 사람은 미끼, 한 사람은 낚시꾼으로...



공사장 덤프트럭이 와서 밧줄을 버스 뒤쪽에 단단하게 연결하고 조금씩 끌어당겼다.

버스 앞쪽에 연결된 밧줄에는 남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행여라도 버스가 비탈길 쪽으로 넘어가않도록 단단히 잡았다.

버스가 흔들~ 하며 오른쪽 앞바퀴가 도로 위로 올라왔고 버스는 안정된 모습으로 도로 한가운데 섰다.


'!'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우리는 모두 버스에 다시 올랐고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였다.

차는 굽이굽이 맑은 계곡과 우거진 푸른 산을 헤치며 힘차게 달려 나갔다.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끝>



PS. 분량조절에 실패하여 이야기를 끝까지 전개하지 못하고 마무리 하였습니다.

글 중에 월척이니 낚시니 하는 말은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당시 사용하던 은어를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서 차용한 것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음날 힘들게 덕유산 정상에 올랐고, 발아래로 구름을 내려다보는 절경을 감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룡산으로 넘어갔는데, 동학사~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로 이어지는 코스로 산행을 하였습니다. 물론 버스에서 만난 누나들도 동행하였습니다. 

중간에 버너로 불을 피워 밥도 하고, 감자, 양파를 넣은 고추장찌개도 끓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민물고기 매운탕이 없어서 허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누나들이 찌개 맛을 보고 엄지 척을 해주어 기뻤습니다.

식물채집을 하러 가서 식물채집한 이야기는 전혀 못했는데요, 당연히 했구요 덕유산의 고도별 식물분포에 대해서 관찰을 하였답니다.

그러고 나서 부산에 돌아왔는데 뭐 나중에 두 분이 누나들과 만남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분들의 사생활이니까요.^^

3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에서 군밤장사를 했습니다. 고교시절 마지막을 재밌게 보내고 추억을 쌓위해서였죠.

그때 M백화점에 찾아갔는데 누나들이 많이 팔아 주었습니다. 그날 팔려고 준비했던 군밤을 몽땅 떨이해 주셨죠.

근무복을 차려입은 누나들이 무척 세련되고 예쁘게 보였던 게 생각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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