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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사랑 그녀

그때는 말이쥐~ #8

by 이은호



이제 쥐 이야기를 끝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극혐 동물 중 하나인 쥐 이야기로 많은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린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에피소드가 몇 개 더 있는데 저조차도 쥐가 절대로 친근감이 가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만 접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해드릴 이야기는 쥐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다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시죠?

예? 첫사랑이 바로 옆에 계시다구요?

그렇다면 정말 복 받으신 겁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첫사랑 하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야 멋있는 거 아닌가요?

이루어질 듯했지만 인연이 어긋나서 순수하고도 아픈 기억으로만 남은 아련함 같은 것.. 그것이 진짜 첫사랑의 멋이 아닐런지요.^^


마우스 시리즈의 마지막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로...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옆집 순희랑 소꿉놀이를 할 때 뽀뽀를 하면서 '사랑해!' 했다던가, 두 손 꼭 잡고 같은 이불에 누워서 잠(?)을 잤다던가, 혹은 고추 내놓고 누가 오줌 더 멀리싸나 시합을 했다거나 하는 철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 눈을 떠 알 거 다 알고 이것저것 볼 거 다 봐서, 상당한 지식과 감정이 축적된 사춘기 이후 시절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 별명이 '쥐똥'인 선생님이 계셨다. 보통 '쥐똥'이라고 하면 '작고 보잘것없고 정말 하찮은 존재'를 말하기도 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란 속담이 있듯이 최소한 개똥은 약에 라도 쓰이는데, 쥐똥은 그렇지도 못하니 말이다.


학창 시절의 별명은 대부분 외모나 이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는데, 그 쥐똥 선생님도 바로 외모에서 비롯된 별명이었다.

선생님께 죄송한 얘기지만 그 선생님의 외모를 언급하자면.. 우선 체구가 작고, 피부가 검은 편이며, 머리숱도 적은 데다, 대머리끼가 있어 아예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셨으며, 이목구미도 옹기종기 모여.. 정말 쥐똥이란 별명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든 '쥐똥' 하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딱 맞는 별명이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마음만큼은 바다보다도 넓고 푸근하셔서, 학생들이 자기 별명을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결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나는 당시 학도호국단(學徒護國團) 간부였다.

학도호국단은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설치된 일종의 유사 군사조직으로, 전시에 향토방위 임무를 맡게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교련이라는 학과목을 통하여 군사훈련을 하였다.

운동장에서 교련복을 입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제식훈련을 하고, 무거운 M1 고무총을 들고 '집총 16개 동작'과 '찔러 총'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승의 날이 며칠 남지 않은 5월 초순 어느 날, 우리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다.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스승의 날에 학생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지만, 직책도 담임도 없으신 선생님들여기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각자 소외된 선생님들을 맡아 조그만 선물이라도 성의껏 마련하여 전해드리기로 결정하였다.


요즘은 김영란법인가 뭐시기로 이러한 미풍양속이 죄다 없어져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 선물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돈독하게 사제지간의 정을 쌓았던, 정말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물을 하겠다는 데, 세상에 그걸 법으로 막는 법이 어디있느냔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맡게 된 분이 바로 쥐똥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외모와 다르게 정말 마음이 으신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 선생님을 찾기로 했다.



교무실에서 쥐똥 선생님의 댁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한 다음, 수업이 일찍 마친 토요일 오후 시간에 건강식품 선물세트와 카네이션 꽃을 사들고 선생님 댁을 찾았다.


전혀 이런 계획을 모르고 계셨던 선생님은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사모님도 선물만 전해드리고 나오려는 나를 억지로 붙잡아 앉히고, 과일도 깎고 꿀물도 타 주시며 잘 대해주셨다.

그런 선생님과 사모님 모습을 보며, 찾아뵙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내 마음도 흐뭇해졌다.^^*




"다녀왔습니다!"

사과 한쪽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청량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천사가 하얀 블라우스에 옅은 하늘색 치맛자락을 살랑이며 들어서는 아닌가?


"이제 오니? 날이 덥지? 이리 와서 과일 먹어라!"

"어? 아빠 후배가 와있었네요?"

"그래, 스승의 날이라고 간부 학생이 찾아왔구나. 얘는 공부도 썩 잘하는 아주 모범생이다."

그랬다. 쥐똥 선생님은 사실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잘 빠진 몸매, 어깨까지 드리운 생머리에 앞머리는 약간 웨이브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생기가 넘쳐흐르는 밝은 모습...

땀에 살짝 젖은 발그레한 얼굴에는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아-!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넋을 잃은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야말로 내가 꿈에서 그리던 바로 그 모습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어떻게 쥐똥 선생님 밑에서 이런 2세가 나올 수 있을까?

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돌연변이 설'을 굳게 믿게 되었다.



"자네 뭘 하나?"

쥐똥 선생님이 멍해있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예, 저는 B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은호라고 합니다."

나는 선생님 말씀은 완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 그녀를 보고 내 소개를 하였다.

"그래, 반가워! 난 J라고 해."

그녀의 도톰하고 빠알간 입술이 벌어지며 옥구슬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본 뒤, 난 완전 얼이 빠져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선생님댁을 나왔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의 모습, 그녀의 도톰한 입술과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난 잠도 제대로 못 잤고 학교에서 공부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J의 모습을 한번 더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오후 방과 후에 선생님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J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쥐똥선생님과도 친해지려고 수업시간에 커피도 뽑아 놓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야, 쥐똥이 뭐가 그리 좋으냐?'하고 물었지만, 난 입을 꼭 다물었다. 쓸데없이 경쟁자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얻어낸 정보는 J가 대학교 1학년이고, 영문학을 전공하며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쥐띠 누나라는 것이었다.


다시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혹시 장래에 장인장모(?)가 될지도 모르는 두 분께 문안인사를 드렸고, 대학가 주변을 헤매며 우연을 빙자하여 J와 마주치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나는 J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거의 인간승리의 순간이었다.*^^*



9월이 되었다.

마침 시민회관에서 '가곡과 아리아의 밤' 공연이 있었다.

나는 표 두 장을 사고 나서 J의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말했다.


"누나, 가곡과 아리아의 밤 표가 두 장 있는데 시간 되면 같이 가실래요? 사실은 여자친구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그 애 집안에 일이 생겨서 고향에 간다고 하잖아요."

괜히 부담을 주면 J가 어려워할까 봐 그렇게 둘러대었다.

내 대타작전은 멋지게 성공하였고, J는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승낙을 하였다.



원래 나는 노래도 못 부르고 특히 클래식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학교성적도 노래 실기가 번번이 발목을 잡아 반에서 일등을 놓친 적도 있었다.


그런데 1학년 때 친했던 반 친구가 특활반으로 음악반을 했는데, 그 친구는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같은 지휘자를 꿈꿨다.

그 친구는 늘 지휘봉을 옆에 끼고 다녔는데,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손으로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지게 보였다.


그 친구랑 어울리다 보니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한 번은 오페라 영화를 같이 보러 간 적도 있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였는데, 오페라를 성악가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공연이 아니고 영화로 본다?

그것은 정말 보통 사람들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게다가 나 같은 문외한에게 있어서는 거의 고문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조금씩 물이 들었는지 클래식 음악이 조금은 익숙해졌고, 봄가을에 열리는 가곡과 아리아의 밤 공연 같은 것을 보러 가기도 했다.

김성길, 엄정행, 신영조 같은 성악가들의 격조 높은 노래나, 소프라노의 높고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세상으로 빠지는 황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해 가을, 난 J와 가곡과 아리아의 밤 공연을 보며 가슴 떨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5월에 J를 처음 본 후, 4개월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J에 온 정신이 쏠려 공연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고 밖으로 나왔다. J는 신세 질 수 없다며 늦은 저녁을 샀다.

밥을 먹고 나서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밤거리를 걸으며 나는 용기를 내어 J의 손을 잡았다.

J는 손을 살며시 빼려고 하였고, 나는 힘주어 그 보드라운 손을 꼭 잡았다. J가 손에 힘을 풀었다.

J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어갈 때, 나는 너무도 행복하여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 후 연극공연이나 미술전시회도 몇 번 같이 같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J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너벨 리'를 영문으로 외어 낭송하기도 했다.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사실 J의 입장에선 두 살이나 어린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남동생이 없어서인지 아님 내 노력이 가상해서 인지 잘 받아주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지 않은 12월 중순 어느 날, 이번 크리스마스를 J와 어떻게 보낼까 설레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J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J는 '멋진 동생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괴로움과 방황과 갈등 속에서 헤매었다.


J 떠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이제 3학년이 나는 그동안 농땡이 쳤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다.

아니 그보다도 대학생이 되어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날 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유학생활은 계속되었고 나는 정신없는 3학년을 보냈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교의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가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동안 신바람 나는 신입생의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였다.

그해 스승의 날에 모처럼 쥐똥 선생님 댁을 찾았다. J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혹시라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지도 모른다는 바램을 간직하고서...



"우리 애가 영국에서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하네. 내년쯤 결혼식을 올릴 것 같은데, 아예 영국에서 살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유학 간다고 하더니 연애하러 갔구만!


J가 원망스러웠다.

에잇!

토종쥐를 영국쥐한테 빼앗겨 버렸다.



난 정말 쥐가 미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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