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을 읽고

그 남자의 책 이야기, 최명숙 산문집

by 이은호



내가 글을 쓰는 최종 목표는 소설이다. 소설은 많은 것들을 리얼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극적으로 꾸며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마구마구 샘솟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경험했거나 마주쳤던 장면 또는 전해 들었던 사연들을 소재로 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살을 붙이고 흥미롭거나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엮어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일이다.


내가 최명숙 작가의 글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몇 개의 제시어만 있으면 순식간에 스토리를 만들어 일사천리로 써내려 가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한껏 끌어올리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물론 문학을 전공하시고 교육계에 오래 몸담고 계셨기에, 단어의 선택이나 문장의 구성, 스토리 전개 기법 등이 뛰어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에 작가가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는 선비였다면, 번득이는 재치와 유려한 문장력으로 장원급제는 따놓은 당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문학의 비전공자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작가로서의 꿈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명숙 작가의 글들을 보면서, '진작에 이런 분을 만나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웠더라면 나도 지금쯤 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졌었다. 그랬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에 작가가 쓴 산문집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을 펼쳐보게 되었다.


역시 종이에 활자로 찍힌 책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많지 않은 분량이기도 했지만 책을 받은 날 단숨에 읽어버렸다. 게다가 작가의 화가 아드님이 삽화를 그려서 인지 그림과 글이 더 은근하게 다가왔다.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은 작가가 유년시절 삼촌과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시절을 '현실은 가난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 빈자리를 삼촌이 고스란히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조카들을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했고 늘 아끼고 감싸주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여러 모로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었다. 비록 작가는 촌에서, 나는 도시에서 자랐지만, 나 역시 결코 녹록지 않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익숙한 상황들이 나오고,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덕분에 작가의 그때 마음을 더 이해하고, 작가의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 삼촌과 가족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엮어 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삼촌이며 삼촌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인 셈이었다. 가난한 빈농의 가장으로, 어머니, 형수 그리고 어린 조카 삼 남매와 함께 살면서,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사고로 39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안타까움까지...




작가는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바탕에 사랑이, 그리움이 없다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다들 살기 바빠서 남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 피를 나눈 가족이나 나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늘 가슴 한구석에 남아서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리워하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간 삼촌이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담고 있는 조카가 있는 한, 삼촌의 인생은 충분한 의미가 있었고 가치가 있는 삶이었지 않았나 싶다.






처음엔 작가의 글이 좋아 그 문장력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모방하고 싶은 마음에 펼쳐 든 책이었지만, 페이지가 넘어 갈수록 작가의 유년시절과 삼촌과의 추억의 길을 나란히 함께 걷게 되었다.


나의 유년시절, 나를 위로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각해 보며...




to. 작가님

허락도 없이 서평 썼다고 뭐라 하지 마셔요. 책을 쓰는 건 작가 마음이고, 책을 읽고 서평 쓰는 건 독자 마음이랍니다.^^


혹시 서평 원하시는 작가님 계시면 말씀하셔요. 한달에 한번 내돈내산 해서 써드릴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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