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내외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였다.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대동하고 가서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2030년까지 40억 달러의 유상원조를 지원한다고 한다.
베트남은 개도국이다. 만년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치가 없으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할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아주 당당하다. 오히려 '당신한테 나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선심을 쓰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원조를 하는 편에서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하다. 이천 년을 중국과 싸워왔고 프랑스와 싸워서 독립을 이루어냈고 미국과 싸워서 이겼다. 그들은 절대 항복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가슴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한 자루씩 품고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악연이 있다. 베트남전 때 미군을 대신하여 우리 군인이 싸웠다. 그것도 자진해서 참전하였고 가서 수많은 베트남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베트콩들이 한국군을 가장 무서워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미군에 비해 체구도 작고 자기들처럼 까무잡잡한 놈들이 어찌나 용맹스럽고 잔인한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베트남전에 한국군인이 누적인원 35만 명가량 참전을 했고, 5천 명가량 전사하였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몇 가지가 된다. 당시 우리나라 군은 북한군보다 약했다. 주한미군이 남북대결 구도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밀리면서 주한미군 철수 위기가 닥쳤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나라는 자진해서 베트남에 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전투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실전만큼 중요한 경험은 없다. 그래서 베트콩을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았다. 다음은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원조이다. 베트남에서 미국 대신 싸우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현대화 산업화시키는데 종잣돈으로 쓰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볼까? 자진해서 군인을 보내 자기들을 죽인 사람들. 실제로 한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베트남 중부지방에서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자기 식구 중에 또는 친척들 중에 한국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데 그중에는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인들 왜 없었겠는가?
내가 베트남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인연이 있는 절의 주지스님과 그 절의 노 보살님께서 베트남에 오셔서 하루를 모신 적이 있었다. 노 보살님은 현재 보훈부 장관의 모친으로 남편이 베트남전에 장교로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신 미망인이셨다. 그때 오신 이유는 남편이 돌아가신 지역에 가서 전쟁 때 돌아가신 국군과 베트콩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자녀들은 이미 여러 차례 그 지역을 방문하여, 학교 도서관도 짓고 컴퓨터도 기증하는 등 뜻깊은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민간차원에서는 베트남전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베트남 정부에서 우리나라에 피해보상을 하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사죄한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간간히 양국의 민간단체 쪽에서 사죄와 피해보상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분위기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우리는 걸핏하면 일본에 대고 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예 사죄를 구걸하는 분위기이다. 일본은 그럴수록 더 배를 내밀 것이다. 만일 베트남에서 우리나라에 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중잣대를 들이댈 것인가? 만일 거절하면 싫어하는 일본과 똑같은 놈이 될 것이고, 응하면 일본에는 찍소리 못하면서 다른 나라에는 머리 숙이고 물어주는 못난이가 될 것이다.
지금은 베트남이 힘이 없고 자신들의 경제논리가 우선이어서 참고 있는지도 모른다. 훗날 자신들의 힘이 강해지면 언제고 요구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해 놓은 규모가 엄청나다. 그들이 피해보상으로 그것들을 다 몰수할 수도 있다. 베트남은 여전히 예측불허의 공산주의 국가이다.
정치와 외교는 다르다. 국내 정치는 국민을 편 가르기 하여 교묘한 줄타기로 잇속을 챙기면 되지만 외교에는 내편 네편이 없다. 다 한 나라다.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려면 일본보다 힘이 세지고 일본보다 영향력이 커져야 한다. 최소한 일본쯤은 없어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자신 있나? 아직 멀었다.
하필이면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나라에 태어나, 하필이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에 태어나, 하필이면 열강의 틈바구니에 위치한 나라에 태어나, 하필이면 국민이 반반으로 갈린 나라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결코 포기하여서는 안된다. 우리도 좀 당당해지자. 그리고 힘을 더 키우자.
* 이 글은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