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세월을 낚다

by 이은호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지인들과 경남 통영에 있는 사량도에 다녀왔다. 한 달 전에 일정을 잡았었는데 때마침 장마가 시작되어서 출발을 한차례 연기하였다. 그러다 잠깐 소강상태에 들어간다는 예보를 듣고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랴 싶어 떠났다. 이제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부산에서 아침에 출발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쳤다. 고성 용암포 선착장에서 배에 승용차도 싣고 몸도 싣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량도로 향했다. 배는 겨우 20분 남짓만에 우리를 사량도 상도(上島)의 내지라는 곳에 내려주었다. 거기서 승용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옥동마을. 우리의 목적지.


거기에 같이 간 지인의 친척이 마련해 놓은 집이 있었다. 진주에 사시는 분인데 촌집을 사서 내부 수리를 깨끗하게 해 놓고 텃밭도 제법 탄탄하게 잘 가꾸어 놓으셨다. 며칠 전 다녀가시면서 바닷게를 잡아 깨끗하게 손질해 놓으셔서 그걸로 탕을 끓이고 텃밭의 상추며 풋고추를 따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거기에 곁들이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 그래 바로 이맛이지!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하면서 남부러울 게 없는 표정으로 퍼져있는데 집주인 내외가 오셨다. 바깥양반께서 손님들 온다고 간밤에 먼 곳으로 낚시를 가서 잡아왔다고 갈치며 고등어며를 한참 꺼내 놓으셨다. 어익후! 이제 낚시할 필요조차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손수 손질까지 다 해놓으시고는 재밌게 놀다 가라며 홀연히 떠나셨다. 이거 완전 천사표 어르신들 아니신가!



'이제 슬슬 나가 봐야지?' 일행의 성화에 술 한잔으로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A, B 그분들은 낚시의 달인들이지만 나는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에 사지에라도 함께 뛰어드는 무모한들 아니겠는가? 비옷을 걸쳐 입고 바리바리 낚시도구를 챙겨 들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따라나섰다.


미끼는 이렇게 끼고, 릴대는 이렇게 잡고, 이렇게 던져서, 이렇게 이렇게 감고...


숙달된 A 달인의 시범을 눈으로 익히고 머리로 새기고 나서, 한차례 실패 후 낚시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기다림. 뭐 이미 숙소에는 갈치며 고등어며 생선이 가득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준비해 온 음식이 넉넉하니 조금도 조급 할 건 없었다.


나 같은 초초초보는 고기밥이나 주며 세월을 낚으면 그걸로 .



비가 내리거나 혹은 날이 흐리거나.


2박 3일 내내 해는 구경도 못했다. 특히 밤에 비가 많이 쏟아졌다. 촌집에 누워서 듣는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완전 낭만이었다. 아침엔 창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풍경에 멍 때리며 마시는 커피 한잔. 대낮부터 비린내 1도 없는 생산구이에 기호에 따라 소주 맥주 또는 막걸리 잔을 들고. 술에 취하고 정취에 취하고 낭만에 취하고.


비가 잦아들면 낚싯대 둘러메고 방파제로 고기를 낚으러 갔다. 세 명이 10만 원씩 내고 종류에 관계없이 무조건 길이 긴 놈이 우승. 초초초보는 애초에 욕심을 버렸고. 결국 B 달인의 집념에 굴복한 장어 한 마리가 30만 원을 낚아채갔다.


A 달인의 능력은 의외로 밤에 이어진 산수공부 시간에 빛을 발했다. 한번 잡은 선은 아내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까지 놓을 줄 몰랐다. 운도 따랐다. 두꺼비는 언제나 그의 몫. 피박 광박은 언제나 내 차지. 그나마 선수가 바뀌니 사정이 나아졌다.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 법. 밤은 깊어가고 빗줄기는 굵어져 가고 동전은 쌓여가고.


마지막 날 아침은 하도(下島)로 건너가 섬 일주를 하였다. 흐리고 안개가 자욱한 일주도로를 남자 셋이 즐기는 환상의 드라이브. 전망대에서 보는 비구름 잔뜩 낀 바다풍경은 덤.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세월을 낚는데 날씨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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