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섬을 경매받은 이유

by 이은호



보이스 톡이 왔다. 누구지? 보이스 톡으로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혹시 은호 씨 맞습니까?"

"예, 그런데요?"

"나다."


그는 바로 K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 오래전에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락처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카톡 상세 찾기에서 내 흔적을 찾아서 연락한다고 했다.


K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에 없다. 십 년이 넘었나 아직 십 년까지는 안되었나? 잘 모르겠다.


"그래, 친구야! 어떻게 지내냐?"

"어, 여기 통영 쪽에 있는 여의도라고 하는 작은 섬인데, 여기서 '나는 자연인이다'하고 있다. 여기 온 지 삼 년 다되어간다."

"여의도? 오, 대박! 완전 부자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K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다. 커서 사회에 나와서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 모임도 하면서 꽤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왕래가 끊겼었다.


K와 나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나는 내향적이고 조용했지만, K는 우수에 찬 듯하다가도 때로는 거칠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K는 그림을 잘 그렸고 글자도 예쁘게 잘 그렸다. 맞다. 글자를 잘 그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K와 나는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만들어서 시내 번화가에서 팔았다. 물감으로 그림을 예쁘게 그리고 시나 명언 문구를 예쁘게 그려 넣었다. 수제 카드가 제법 멋이 있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학창 시절 그랬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다.



K가 오래전에 경매로 나온 섬의 땅을 낙찰받았다고 했다. 그 섬 말고도 다른 무인도의 땅도 낙찰받은 게 있는데, 거기는 왕래할 교통수단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했다. 지금 있는 곳에 농막을 짓고, 과일나무도 여러 종류를 심고, 각종 야채도 재배하고, 닭도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식 둘은 서울에, 아내는 부산에 그리고 자기는 혼자 섬에, 완전 자연인이 되어서 살고 있다고 했다. K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고 그걸 실천에 옮겨 살고 있는 것이었다.


K는 섬에 혼자 사는 게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를 보고 멍 때리고 있으면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져 자연과 한 몸이 된다고 했다. 그러다 배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심심하면 일 조금 하다가 힘들면 멍 때리고...


듣고 보니 완전 내가 그리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아니던가!


K가 놀러 오라고 했다. 하루도 좋고 일주일도 좋고 한 달도 좋고, 원하는 대로 묵었다 가라고 했다. 단, 본인이 먹을 쌀만 들고 오면 된다고 했다. 거기는 쌀이 안 나온단다.



안 그래도 앞으로 장편소설을 쓰게 되면 어디로 한 달 살기를 하러 가야 되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갈 곳이 생겼다.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가을에 가서 풍요로운 청춘 로맨스를 쓸까, 겨울에 가서 가슴 시린 노부부의 숨은 사연을 쓸까, 봄에 가서 생동하는 학창 시절의 풋사랑을 쓸까 아니면 뜨거운 여름에 가서 중년의 막장 불륜 판타지를 쓸까? 행복한 고민이다.

'친구야 고맙다!'


건너갈 때 내가 먹을 쌀 하고 소주는 한 상자 가지고 갈게. 혹시 아냐? 매일 마시는 한잔 술에 명품이 나올지. 친구야, 횟감은 네가 장만해야 한다. 난 낚시는 완전 초초초보라서...



그런데 친구야, 우리가 연인사이도 아니고 44분이나 통화한 건 좀 심했다. 다음엔 용건만 간단히! 알겠쟤?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서 섬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 발음이 안 좋아서 '여의도'인 줄 알았다. 내 귀가 안 좋은 건가? 덴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의미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