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날이 무척 덥다. 아무래도 하늘이 미쳤나 보다. 밤에 자다가도 더워서 자주 깬다.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놓을 수가 없어서 타이머를 해놓는데 새벽녘에 다시 더워진 실내공기로 인해 잠을 깬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로가 덜 풀려 여전히 피곤하다. 그런데 밖은 햇볕이 쨍쨍이다. 그래서 어제의 피로 위로 오늘의 피로가 덧쌓인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기도 뭣하고, 무엇보다도 냉방병인지 머리가 무겁고 목도 아프고 코도 맹맹하다.
억지로 밥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서 골프백을 메고 오랜만에 아파트 지하에 있는 연습장으로 향했다. 연습장엔 아무도 없었다. 시원하게 에어컨도 틀고 환풍기도 작동시키고 몸도 좀 풀어주고 나서, 어프로치, 아이언, 우드, 드라이버 순으로 스윙을 하였다. 웬일인지 공도 빵빵 잘 맞고 타격감도 좋았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어! 머리도 몸도 한결 가뿐해졌다.
없는 돈에 필드에 나갈 형편도 못되지만 요즘같이더운 날 필드에 나갔다가는 어떤 불상사를 당할지 모르겠고, 그냥 가끔 지인들과 스크린골프를 친다. 빵빵한 에어컨 밑에서 힘껏 채를 휘두르고, 마음이 동하면 캔맥주도 한잔씩 하면서 즐기니 그보다 더 나은 피서법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번 모임에선 완전 망해버렸다. 그날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간 자리였던지라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스코어가 완전 엉망이었다. 덕분에 꼴찌를 했다.
사실 오십견이 와서 한동안 골프채를 잡지 못했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 돼서 다시 골프채를 잡는데, 그동안 근력운동을 못해서인지 비거리가 형편없이 줄었다. 최대한 왕년에 근접한 상태로 돌아가려면 연습을 부지런히 하는 수밖에 없다. 운동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 더운 날 이열치열이다.
내일 스크린골프를 치기로 하였다. 그래서 연습장에 내려온 것이다. 지금처럼만 맞으면 문제가 없겠다. 내일은 본때를 보여 줘야지!
다음날 아침 10시 반에 스크린골프장에 모였다. 나이 든 분들이라 그런지 참 아침잠이 없다. 마치 조조할인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3:3. 남자 셋, 여자 셋 두 방으로 갈려 라운딩 시작.
골프도사님께서 선택하신 골프장은 코스난이도 5, 그린난이도 5의 험난한 곳이었다. 그래야 우열이 가려진다나 어쩐다나? 우리가 고3도 아니고 꼭 킬링문항 같은 홀이 존재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홈그라운드를 이고 있는 도사님을 따를 수밖에.
어제 연습장에서 연습한 대로 첫 홀 티샷을 힘차게 날렸다. OB. 망했다! 이것이 아닌데?! 시원한 캔맥주를 한 모금했다. 다시 채를 잡고 어깨에 힘 빼고 부드럽게 스윙. 굿샷! 역시 긴장을 푸는데 맥주만 한 게 없지싶었다.
홀이 지날수록 스코어가 빡빡하게 이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게임은 거의 종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세 명이 한 타 두 타 차이.
15번 파 5 홀. 난이도 1번 홀이었다. 티샷부터 해저드를 넘어 좌측으로 꺾이는 도그레그 홀. 바람도 좌측에서 우측으로 부는 영락없는 슬라이스 홀이었다. 그렇다고 왼쪽으로 너무 당기면 OB가 날 수도 있었다. 신중하게 티샷을 해야 했다. 티샷을 그런대로 마쳤다. 그런데 방심했을까 세컨샷에 OB가 났다. 어차피 2온이 안될 거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끊어가면 되는데 우드를 잡은 게 화근이었다.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났다. 결국 그 홀에서 더블을 했다.
1타 차 선두를 달리던 도사님은 찬스를 잡았다고 그 홀에서 버디를 했다. 아! 역시 도사님은 킬링문항 같은 홀을 잘 풀었고, 나는 킬링문항에 무너지고 말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다음 홀에 나는 다시 보기를 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종스코어 3오버, 7오버, 9오버. 결국 2등을 하였다. 분했다! 복수는 다음 기회에...
성적대로 회비를 거두어 스크린비를 내고 점심은 고기를 먹으러 갔다. 날도 덥고 땀도 뺐는데 기운을 보충해야 한다고 대낮부터 고기에 소맥을 했다. 승부는 졌지만 고기는 맛이 있었고 술맛도 좋았다.
좋은 분들과 웃고 떠들며 스크린골프도 치고 밥도 함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햇볕은 뜨겁고 날은 더웠지만 마음은 훈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