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알바를 하고 있다. 세탁 편의점이다. 8시 반에 출근해서 알바의 기본인 청소 깨끗하게 하고 단말기 켜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말이 알바지 자리만 지키고 놀고 있다. 유튭에서 7080 노래 틀어 놓고 믹스커피 한잔 마시며 책을 읽는다. 이렇게 놀면서 용돈을 받으려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가 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토요일에 세탁물을 맡기러 오지 않는다. 몇 년 전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가게를 직접 했을 때는 젊은 맞벌이 세대가 많아서인지 토요일에 무척 바빴다. 한 번씩 세일을 할 때면 커피 한잔할 여유는커녕 밥 먹을 시간도 내지 못하고 하루종일 바쁘게 보내야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이곳의 토요일은 완전 천국이다. 아내와 처조카가 이곳을 맡아서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나보고 토요일에 매장을 봐달라고 할 때 옛날 생각을 하고 꺼림칙했었는데, 한 달 넘게 토요일에 매장을 지키다 보니 완전 꿀보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장사가 안 돼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맘 편하게 노래나 들으며 책도 보고 글도 쓰기로 했다. 살다 보면 이런 호시절도 있는 거지 뭐!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첫 방문인데 '요금은 선불입니다' 문구를 보고 지갑을 가지고 오겠다며 도로 나가시려고 하였다. 내가 '후불로 하셔도 됩니다.' 하고 말했다. 남자분이었으면 잠자코 있었을 텐데 여성분을 번거롭게 오가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옷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곰팡이 처리과정이랑 그 외 공지사항을 알려드리고 개업 기념품을 이것저것 챙겨드렸다. (장사가 대박 날걸 기대했는지 사장님이 개업 기념품을 너무도 많이 준비하여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가게 접을 때까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수고하세요!' 아주머니가 밝게 인사를 하고 갔다. 남의 것으로 인심 팍팍 쓰고 알바주제에 사장님 소리도 들었다.
난 여성분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남자들에게는 극히 사무적으로 담담하게 대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상대적 약자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어쨌든 서비스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과거에 직접 가게를 할 때에도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챙기는데 그게 먹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토요일에만 일하기 때문에 그런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사실 여성을 상대하는 일이 내 적성에는 맞지 않는다. 다만 성격상 소질이 조금 있을 뿐이다. 적성과 소질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다. 어쨌든 이곳에서의 토요일은 느긋하다.
사장과 직원의 입장은 확실히 다르다. 점장과 일개 알바의 입장도 확실히 다르다. 손님이 없으면 사장의 속은 타들어가지만 알바는 마음이 편하다. 몸은 더 편하다. 반면에 손님이 많으면 사장은 입이 귀에 걸리고 알바는 숨이 목에 걸린다. 호흡이 가쁘다. 세상에 공평과 평등은 없다. 그것은 나중에 천당에 가서나 찾아 볼 일이다.
느긋하게 점심 먹고 이번엔 베트남에서 건너온 코코넛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손님이 왔다. 이어서 또 한분이 오셨다. 어라? 또 오신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슬슬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