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학교에 축구부와 야구부가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응원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월 한 달 내내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 나서 운동장에 모여 2학년 응원단장의 지도하에 응원가를 배우고 응원구호를 외쳐야 했다. 당연히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 동원된 훈련이었고 행여 빠지기라도 하면 다음날 아침 호출당하여 호되게 기합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한 달간 응원연습을 통해 응원가 십여 곡을 장착하고 나서 4월 초에 열리는 춘계대회에 투입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마치 신병교육대에서 겨우 사격훈련을 마치고 최전방에 배치된 꼴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축구부 야구부 모두 성적이 좋아서 하루는 축구장으로 하루는 야구장으로 끌려다니며 'VICTORY'를 외쳤야 했다.
그때는 공부가 학생의 본분이 아니었다. 1학년은 얼마나 열심히 응원에 참석하는가, 2학년은 얼마나 응원을 즐기는가, 3학년은 (응원은 건성이고) 얼마나 시합을 즐길 줄 아는가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렇게 1학년을 경기장에 강제로 끌려다니다 보니 정말 희한하게도 2학년부터는 제 발로 경기장을 찾게 되었다. 마치 뭐에 중독되기라도 하듯 응원의 재미와 경기의 짜릿함을 즐길 능력치가 자신도 모르게 몸에 차곡차곡 쌓였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때 한 반에 보통 6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중 2~3명은 운동부였다. 그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부터는 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하였다. 물론 시합이 열리면 공부는 아예 열외이고 100퍼 시합에 올인하였다. 운동부 입장에서는 전국대회 4강 안에 들어 대학교 특례진학의 길을 닦아야 했고 그리고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더 특출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운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전국구 선수로 인정받으면 여러 곳의 스카웃 대상이 되어 러브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면 능력이 조금 처지는 동기 한두 명을 끼워 패키지로 같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끌어 주기도 하였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신입생시절 응원연습을 마치고 하교할 때 보면, 운동장 한쪽 구석에 있는 마운드에서 피칭 연습을 하는 투수 한 명이 눈에 자주 띄었다. 키도 훤칠하고 몸도 쭉 잘빠지고 피부도 뽀얗고 얼굴도 잘 생기고 귀티가 철철 나는 선수였다. 큰 키에서 크게 와인드 업해서 내리꽂는 묵직한 직구와 낙차 큰 커브가 일품인 우완 정통파 투수. 남자들인 우리가 보아도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그 선수가 피칭 연습을 할 때면 여학생들이 학교로 몰려와 구경을 하곤 하였다. 그때 뭇 여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는 바로 나보다 1년 선배인 윤학길 선수였다.
연세대를 거쳐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한 그는 '고독한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명성을 날렸다. 1992년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성적도 초라하고 빈공에 허덕이던 롯데의 마운드를 거의 혼자 이끌다시피 하여 그런 별명이 붙었다. '무쇠팔'로도 불렸던 그는 무려 100게임을 완투했는데 이는 KBO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선발로 출전한 게임 중 세번에 한번은 완투를 한 셈이다. 거기에 75게임 완투승과 20게임 완봉승은 그의 팔이 얼마나 튼튼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지금처럼 선발-중간계투-마무리로 이어지는 분업화 시대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그렇게 혹사당하면서도 롱런을 하였으니 한국 프로야구사에 남을 만한 대투수임에는 분명하다.
그는 현역 은퇴 이후에는 여러 팀의 투수코치를 거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선수시절의 화려했던 명성에 비하면 지도자로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본인의 이야기는 아니고, 펜싱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윤지수 선수 이야기인데, 바로 윤학길 선배의 딸이다. 과거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은 목에 걸었었는데 개인전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정말 축하해 마지않는다. 티브이로 보니 실력 못지않게 외모도 출중해 보였다. 아빠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틀림없었다. 아빠는 롯데팬들의 가슴에 '고독한 황태자'가 아닌 '영원한 황태자'로 남아있는데, 딸은 '공주님'에서 '영원한 검신'으로 남기를 바란다. 다음은 올림픽 금메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