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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ug 10. 2023

중학교 때 선생님에 대한 추억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남자 같지 않은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목련화'를 부르시던 K선생님.


"선생님, 노래 한곡 해주세요! 옆반에서는 목련화를 부르셨다면서요?"


"그래, 그럼 한번 불러볼까?"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화에 미소로 답하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호각을 꺼내 '삐' 불어 첫 음을 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감정을 잡기 시작하면 아이들 모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선생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윽고 시작되는 선생님의 노래. 어떤 아이들은 눈을 감고 선생님의 노래를 음미하였고, 어떤 아이들은 입을 헤벌리고 노래를 부르는 선생님의 멋진 모습에 취했다. 남학교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여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러셨다면, 그 인기를 어떻게 감당하셨을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노래를 부르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있었다.


선생님이 어느 반에서건 한 곡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 성화에 수업을 들어가는 1반부터 10반까지 열 번을 불러야 했는데, 선생님은 매번 처음 노래를 부르시는 것처럼 정성을 다 하셨다. 년으로 치반마다 서너 곡, 거의 사십  정도를 부르셨던 것 같다. 당연히 아이들 모두 선생님을 좋아하였고, 선생님께서 가르치시국어 과목의 성적은 평균점이 월등히 높았다.




내가 2학년 새 학년이 되었을 때 꾀죄죄한 몰골에 꼬릿한 냄새를 잔뜩 풍기는 아이와 짝이 되었다. 그 아이는 아침 조회가 끝나고 1교시가 막 시작할 무렵, 헐레벌떡 뒷문을 열고 들어와 냄새를 풍기며 옆에 풀썩 앉고는 하였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면서 날이 따뜻해지자 그 아이는 꼬릿한 냄새에 땀냄새까지 더해져 더 역겨운 냄새를 풍겼고, 나는 코를 감싸 쥐고 그 아이를 외면해야 했다.


5월 8일. 당시 어머니 날이 되었을 때, 내 짝지 어머니가 '장한 어머니상'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표창장 전달식을 하였다. 짝지 어머니는 빛이 바래고 제대로 다림질도 안된 구겨진 치마저고리를 입고, 화장이 잘 먹지 않아 분이 덕지덕지한 거친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서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같은 상 수상자인 학부모회장 어머니가 금테안경에 세련된 복장을 하고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서계셨다.


짝지는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 셋까지 다섯 식구가  어렵게 살았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생선장사 노점을 해서 먹고살았는데, 변변한 가게가 없는 관계로 아침 일찍 리어카로 그날 팔 생선을 날라야 했다. 내 짝지가 앞에서 끌고 어머니가 뒤에서 밀면시장에 , 내 짝지는 빈 리어카를 다시 집에다 갔다 놓고 나서야 서둘러 학교에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짝지는 저녁에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 가서 어머니가 팔다 남은 생선과 손질해서 내일 팔 생선을 다시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밤늦도록 어머니를 도와 생선손질을 하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짝지가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학교에 꾸준히 나오도록 격려를 해오셨고, 어머니께도 장한 어머니상 표창을 추천하여 용기를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하셨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 짝지 어머니께서 상을 받기 전날에야 반아이들에게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시면서, 모두들 짝지에게 다정하게 대해줄 것을 당부하셨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라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 내 짝지가 좀 더 반아이들과 편하게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제서야 우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짝지에게 함부로 대했던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더 이상 짝지한테서 냄새난다고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중학생이 되었을 때, 교사 발령 2년 차인 꽃다운 처녀 선생님이 부담임을 하셨다. 그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셨는데, 얼굴도 예쁘고 자태도 고와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완전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도 당연히 선생님을 좋아하였고, 선생님께 잘 보이려는 욕심에 영어 교과서를 달달 외어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학기 초에 학급 미화물 꾸미기를 할 때는 부담임인 선생님과 함께 글씨도 쓰고 그림도 예쁘게 그려서 꾸미기도 하였다.


반아이 중에 정말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영어를 잘할뿐더러 수업시간에 질문도 많이 했고, 심지어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시는 선생님을 쫓아가면서까지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선생님도 그렇게 영어공부에 적극적인 아이를 기특하게 여겼고 평소에 자상하게 대해주셨다.


언젠가 그 아이 덕분에 둘이서 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일요일에 선생님댁을 방문해도 되나요?' 해서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댁에서 점심도 얻어먹고 책도 한 권씩 얻어서 들고 왔는데,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정말 좋아하는 처녀 선생님이 혼자 자는 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분홍색 침구가 깔린 침대에서는 장미향이 솔솔 나는 것 같았고, 노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앞에 놓인 책상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스탠드 불빛은 방안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 아이와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선생님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애를 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선생님을 생각하며 잠을 설치고 말았다.


2학기가 되어서 교정에 노란 국화꽃이 활짝 피었을 때, 정말 슬픈 소식이 들렸다. 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신 것이었다. 아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소식을 들은 반아이들 모두 슬퍼하였다. 밥맛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거의 일주일을 아프게 보냈다. 반면에 열흘 만에 나타난 선생님은 얼굴이 활짝 펴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수업을 하셨다. 어찌나 얄밉던지! 나는 심한 배신감에 선생님을 한번 째려주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미소가 커질수록 마음속으로 더 슬픔이 차오르고 있었다.




* 요즘 선생님들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들려서 학창 시절 좋았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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