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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Nov 06. 2023

근로자와 노동조합 그리고 경영자



회사 경영자와 노동조합 간의 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일까? 아니면 '협력과 상생'관계일까? 그리고 노동조합이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반드시 근로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올까?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대기업 중심의 산업화 과정에서 관 주도로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이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오히려 회사 편에 서서 근로자들을 조직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 당시 진짜 노동운동을 하는 근로자나 지식인은 탄압 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모진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전반적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근로자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운동도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게 되었다.


"투쟁하여 쟁취하자!"


슬로건 하에 진보적 급진적인 노동운동은 근로자의 권익향상에 크게 기여를 하였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노조의 '귀족화' '계급' 등으로 노동운동의 본질이 상당 부분 훼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활발한 노조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노조 결성률이 20% 정도에 지나않는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정도에서나 노조가 있을까 하루하루가 힘든 영세한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노조는 그저 잘 사는 부자동네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정말 노조가 필요하고 근로자들의 권익향상이 절실한 곳이 그곳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노동조합이 1980년대 말 민주화 시기에 설립된 제법 역사가 오래된 회사였다.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는 회사와 분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였고, 무교섭 타결도 여러 차례 이끌어 낼 정도로 노사관계에 있어서 모범적인 회사였다. 


IMF나 금융위기  회사가 어려울 때는 노조에서도 희생을 감수하였,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의 정리 및 해외공장으로의 이전을 지원하는 등 회사의 경영활동에 대해 노조가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신에 회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성과가 날 때는 성과금으로 그리고 평소에는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보답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렇게 상호 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된 데에는 경영자의 투명한 정보공개 사람에 대한 투자 의지가 컸다. 매월 결산이 끝나면 경영실적을 가감 없이 노조에 공개하였고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금의 가이드라인도 미리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서도 정보를 공유하여 노조 모르게 중요한 결정사항이 집행되는 일이 없었다. 


이렇듯 회사 사정을 빤히 알다 보니 노조 측에서도 억지를 부릴 수가 없었고, 최소한 회사가 하고자 하는  노조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당시 회사의 사람에 대한 투자 의지를 보여준 사례 중에는 근로자들의 일본기업 연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거의 600명에 이르는 생산직 근로자를 조별로 나누어 일본기업의 생생한 현장을 보고 오도록 한 것이다. 막대한 연수비용은 물론이고 결원에 따른 생산차질을 감안하면 경영자의 확고한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30년의 장기불황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같으면 장기불황이 5년만 지속되어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그 긴 불황의 터널을 버텨냈다.  그 노하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도록 하자는 게 근본 취지였다.


당시 방문한 일본기업은 아주 다양했다. 사업분야는 물론 우리보다 규모가 큰 기업도 있었고 작은 중소기업도 있었다. 작업환경이 우리보다 우수한 기업도 있었고 열악한 기업도 있었다. 회사마다 조건들이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회사와 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작은 성과라도 내기 위하여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쥐어짜며 개선활동에 임했었다. '저렇게까지?'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에 대하여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들의 월급 수준이나 복리후생은 결코 우리보다 낫지 못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며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기꺼이.


일본 기업연수를 통해서 근로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기분으로 '일본이 우리보다 선진국이니까 좋은 환경에서 대우 잘 받으며 편하게 일하겠지' 하는 생각는데, 눈으로 직접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는 것이었다.


", 이게 바로 생존이라는 것이구나!"




우리나라 모 대기업 노조 대의원들이 해외공장 시찰을 가서 현지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일 못한다. 이렇게 일하면 죽는다."


회사에서는 내심 열심히 일하는 해외공장을 보고 좀 느껴보라는 의미였는데,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현지 직원들의 물만 흐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나아가 해외공장에서 창출한 이익까지 나눠달라고 요구를 하였다. 열심히 일할 생각은 없고 무임승차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기업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에 거의 꼴찌 수준이다. 스스로 노동경쟁력을 올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투쟁하여 쟁취하자는 8~90년대 의식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 경영자와 노동조합 간의 관계가 '대립과 갈등'의 관계이건, '협력과 상생'의 관계이건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경영환경에서 근로자들의 입지는 어떻게 변해갈까?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점점 떨어지는 노동경쟁력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채용을 늘리기는커녕 있는 사람도 줄이는 자동화 성력화선택하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노동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다른 나라로 생산기반을 옮겨간다. 그에 따라 국내 대기업 -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경제 생태계가 무너지고, 중소기업의 몰락이 더욱 가속화되어 간다. 일자리가 없어진다.


노사관계가 협력과 상생의 관계로 잘 유지되어 오던 내가 다니던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회사 역시 생산기반을 외국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왜냐하면 국내 생산으로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경제생태계에서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미 망가진 국내 경영환경에서 혼자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떠난다.


결과 근로자 수가 서서히 줄어들어 거의 반토막이 되고 말았다. 조합원 수가 결국 노동조합의 파워인데 인원수가 줄어드니 노동조합도 쪼그라들 수밖에. 그것마저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국내 사업장이 모두 떠나버리면 노동조합도 없다.




국가 경제력의 원천은 제조업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왜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자동차, 2차전지,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으라고 요구하는지, 거기에 이끌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앞다퉈 미국땅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만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세 개의 축마저 옮겨가고 나면 뭐가 남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K-팝이니 K-컬춰니 K-푸드니 해봤자 그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다.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대기업이 지배하는 플랫폼에서 허덕이는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 그리고 공무원만 남는다. 얼마 남지 않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거기서 도태되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아 잘 키워보겠다는 희망은 점점 요원해질 뿐이다.


요즘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선배들이 맨땅에서 일궈낸 산출물들이 너무 풍요로웠던 걸까? 그걸 빨아먹기에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정치인들은 편을 갈라 싸움하기 바쁘고, 2세 경영자들은 쉽게쉽게 생산기반을 옮겨버리고, 노동조합은 귀족놀이에 바쁘고, 근로자들은 눈앞의 이익만 좇아 피켓 들기에 바쁘다. 곳간이 비어 가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비어 가는 곳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두 정신을 차리고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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