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상무와 전략실장의 사정

by 이은호



J기업에서 관리부문을 맡고 있는 김 상무는 인사제도를 뜯어고치려다 사장님의 강력한 제지를 받았다. 직원들을 아끼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안을 했던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의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길이기도 했는데, 사장님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이 뭐 19세기 산업혁명 시대도 아니고 당근과 채찍으로 직원들을 길들이려는 사장님의 생각에 크게 실망하였지만, 김 상무는 순순히 물러날 마음이 없었다.


"제도를 고치려면 먼저 전략실장과 의논하세요."


사장님의 명령을 떠올린 김 상무는 현 제도를 만든 당사자인 전략실장을 찾았다. 담판을 짓기 위해 호랑이 굴로 뛰어든 꼴이었다.


"어서 오세요, 김 상무님! 그래 어쩐 일로..."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맞으며 전략실장이 말끝을 흐렸다. 아니 어쩌면 김 상무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귀가 있고 눈이 있는데, 김 상무가 많은 직원들을 만나며 인사제도에 대한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었다.


"허 실장님,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회사 인사제도를 좀 고쳤으면 해서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김 상무와 전략실장이 마주 앉았고, 김 상무가 입을 열었다. 허 실장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가 펴며 말했다.


"그래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허 실장님도 아시겠지만 직원들이 평가보상 제도에 대하여 불만이 상당합니다.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렵게 마련한 제도가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만 꺾고 있는 꼴이죠."


"그건 평가자들이 평가를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요? 제도가 잘못된 게 아니고."


허 실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김 상무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제도가 잘못된 게 아니고 평가자들이 잘못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당초에 제도 설계를 할 때, 과정은 무시한 채 일 년에 두 번 6월과 12월에 달랑 종이 한 장에 직원들 평가등급을 적고 두어줄 의견만 달아놓게 해 놓고. 그것도 경쟁을 유도하여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며 상대평가를 도입, 평가자로 하여금 부서 직원들을 줄 세워서 A, B, C, D, E 강제 할당을 하는 악역을 맡겨놓고 평가자들 탓을 하다니. 그리고 사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제대로 정착이 되려면 평가자인 팀장들 교육에 공을 쏟았어야 했는데, 불과 반나절짜리 설명회로 끝내놓고 제도가 아니라 평가자들 탓을 하다니.


'성과주의 보상제도'란 미명하에 새로운 인사제도가 도입된 후 회사 내부는 적자생존의 싸움터가 되어 버렸다. 그래놓고 사장님은 간부회의 때 틈나는 대로 팀워크를 강조하곤 하였다. 팀 내 다른 사람이 못해야 내가 좋은 평가등급을 받는데, 서로서로 끌어내려야 하는데 팀워크라니? 다들 서로 어려운 일은 안 맡으려고 하고, 점수 따기 쉬운 일만 하려고 했다. 팀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장기적이고 중요한 과제들은 단기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무시되었다. 이것들이 다 중간단계는 건너뛰고 보상만을 위한 평가 제도로부터 비롯된 부작용이었다. 그 영향은 이미 김 상무가 일전에 만났던 국내 대리점의 사장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장 사장이 말했었다.


"지금의 경영 스피드로 십 년 뒤에 J기업이 어떻게 되어있을 것 같아요? 회사가 너무 현재에 안주해 있어요. 신제품 개발도 늦고 기술 서비스 대응도 늦어요. 모르긴 몰라도 십 년이 아니라 오 년만 지나도 경쟁업체인 Y사에 뒤쳐지기 시작할 겁니다. 거기는 벌써 3세대 제품 개발이 완성단계라고 하던데 J기업은 어떻습니까? 잘되고 있는가요?"




"김 상무님은 Y이론을 믿습니까? 저는 X이론을 믿고 있습니다만."


허 실장이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김 상무에게 물었다. 김 상무는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나 싶어 잠자코 허 실장의 입만 쳐다보았다. 허 실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은 원래 일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죠. 최소한의 노력을 해놓고 보상은 최고로 받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는 채찍과 당근을 들고 몰아붙여야 합니다. 그게 지금까지 수많은 사례에서 검증된 방법이기도 하고요. 직원들을 돈으로 유인하고 엄격한 감독과 명령으로 통제해야 합니다."


허 실장의 말을 들은 김 상무는 화가 났다. 대체 이런 사람이 인사관리를 전공하고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산업화 시대에나 어울릴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논리로 말씀하시죠? 지금은 창조경제를 논하는 시대 아닙니까? 그렇게 직원들을 통제하고 억압해서 창의적인 업무수행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직원들에게 스스로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인사제도 역시 그런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고요."


허 실장이 미소를 띠며 목소리 톤이 높아진 김 상무를 쳐다보았다. 김 상무는 그의 미소가 마치 자신을 비꼬는 것으로 여겨져 인상이 찌푸려졌다. 허 실장이 입을 열었다.


"역시 김 상무님은 Y이론 신봉자시군요. 하하하.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환경에서는 여전히 멀었다는데 문제가 있죠. 김 상무님이 생각하는 이론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성과가 보장되지도 않는 직원 육성에 돈도 많이 들고요. 우리나라 경영자 중에 기약할 수 없는 성과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으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우리 최 사장님도 포함해서요. 그리고 직원들도 마찬가지죠. 이미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 직원들이 팀장만 되어도 팀원들을 똑같이 대하죠. 아마 사장님의 생각보다 더 지독하게 부하직원들을 다루는 상사도 많을 걸요? 그들에게는 부하직원들의 성장보다는 자기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하니까요."


김 상무는 할 말을 잃었다. 현실적인 상황을 볼 때에는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인사관리를 전공하는 전문가라면 경영자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조언해야 하는 게 아닌가? 경영자가 회사를 하루이틀 경영하다 말 것이 아니라면,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당연히 행동의 주체가 되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와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일에 대한 보람도 얻고 그 결과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했다.


"김 상무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를 옮겨서 함께 식사하면서 계속하면 어떨까요? 이미 퇴근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러고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김 상무는 그나마 허 실장이 대화를 피하지 않는 데에 한가닥 기대를 하면서 그를 따라나섰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일식집의 조용한 방에 김 상무와 허 실장이 마주 앉았다.


"자, 우선 한잔 하시죠."

"그럽시다!"


허 실장이 술병을 들어 김 상무의 잔에 술을 따랐고 김 상무도 허 실장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둘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삼켰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자 속이 짜르르 울렸다. 신선한 회 한 점을 집어서 오물오물 씹어 넘긴 허 실장이 입을 열었다.


"김 상무님, 인사컨설팅 사업도 비즈니스인 건 아시죠?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바로 고객의 입맛에 맞추는 거죠. 컨설팅할 때 가장 먼저 경영자의 스타일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입맛에 맞을만한 것을 제안하죠. 우리는 다양한 방법론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회사에 도입된 것도 있고, 김 상무님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방법론도 있죠.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쁜 가는 없어요. 어떤 방법론을 선택할지는 경영자의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 최 사장님이 선택한 것처럼요. 사장이 선택하면 그게 최선입니다. 컨설턴트들은 거기에 맞춰 그럴듯하게 꾸며는 역할을 하죠."


허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 상무는 생각했다. 경영자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올바른 스텝이라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잡도록 조언을 해야 했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한다고 생각하는 인사컨설팅 회사로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든 고객사 경영진의 입맛에 맞게 꾸며서 오더를 따고 돈을 벌면 그만인 것이었다. 고객사의 직원들이 피해를 보든 말든. 그러고 보니 많은 회사에서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왜 컨설팅을 새로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앞사람이 해놓은 제도를 새로 바꾸어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하는 것. 바로 그것이 목적이었다.


"그랬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허 실장님은 왜 J기업에 남았죠? 굳이 기업체에 근무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김 상무는 허 실장이 회사에 남은 이유가 정말로 궁금하였다. 컨설턴트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대기업도 아닌 J기업 같은 중견기업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은 허 실장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솔직히 말씀드리죠. 상무님은 일에 진심인 분이니까 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실 최 사장님이 제시한 연봉도 컸지만 제가 J기업에 남게 된 건 제 커리어 때문입니다. 컨설턴트라는 게 이론만 가지고서는 안되죠. 회사 근무경험을 쌓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솔직히 J기업에 오래 근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J기업에서 제가 설계한 인사제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습니다. 하나의 레퍼런스에 불과하니까요. 성공하면 성공사례, 실패하면 실패사례가 되겠죠. 다 컨설팅 자산입니다."


허 실장의 말을 들은 김 상무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자기가 설계한 제도로 인해 회사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조직이 엉망이 될 수도 있는데, 거기에 아랑곳없이 무책임하게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사람. 그는 인사 전문가도 사업가도 아니고 양심없는 장사꾼에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가 왜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까?


"김 상무님, 내 충고 한마디 해도 될까요? 상무님의 진심을 알기에 아끼는 마음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죠? 말씀해 보세요."


허 실장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 상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 실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J기업에서 상무님 위치 정도되면 이제 사내정치를 하셔야 합니다. 오너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김 상무님이 직원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자유지만 도를 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김 상무님은 바닥부터 커왔지만 저는 사장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일종의 전략공천인 셈이죠.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세력과도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 뭐라고요? 그러면 회사에서 내 존재 이유는 뭐죠? 저는 정치를 모릅니다. 사장님도 제 진심을 알아주실 거고요. 입 다물고 살 수는 없습니다."


"허참, 답답하십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제 말을 명심하십시오."


'정치를 하라고? 내가 정치를 할 수 있을까?' 허 실장의 말을 들은 김 상무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를 불길한 감정에 휩싸였다.



* 이 글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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