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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19. 2024

그리운 사람을 만나던 날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 가슴이 설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을까? 또 어떻게 변하셨을까? 아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으신 걸까? 걱정 반 설렘 반. 저 앞에 그분이 계시는 곳이 보였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서니 머릿속에 그렸던 그분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신다.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서 손을 내미신다. 따스함 속에 절제된 행동과 표현. 여전히 그분의 매력이 묻어난다. 일단 외견상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나는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안부를 여쭈었다. 괜찮다고 하신다.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지막으로 뵌 지 십 년이 넘었다. 세월의 흐름이 정말 빠르다.




상고졸업하기도 전에 열아홉 나이에 회사에 입사하였다. 인사부서에서 주관하는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한 명씩 발령받은 부서로 팔려가던 날, 나는 훤칠한 키에 시원한 외모의 남자에 이끌려 그분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배치받은 곳, 기획부 기획과. 그분은 바로 나의 선임이었다. S대나온 좋은 머리에 외모까지 갖춘 넘사벽 같은 분. 다들 학벌이 쟁쟁한 기획실 직원들 사이에서 유일한 고졸사원 게다가 첫 사회생활. 주눅 들어 있는 나를 항상 챙겨준 분이 그분이었다.


분은 실력도 있었지만 소탈한 성격에 매사에 솔선수범 하는  행동으로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며 수시로 나를 데리고 현장으로 가서 공정흐름과 제품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그분은 업무의 맥을 아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가르쳐 주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내가 제대로 습득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분은 나에게 업무만 가르쳐준 게 아니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에 다니는 나에게 정말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오후 네시만 되면 여유 있게 학교에 가서 리포트도 쓰고 수업준비 하라고 성화를 댔고, 시험기간 때는 근무시간임에도 회의실에 밀어 넣고 시험공부를 하라고 다. 학교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는 대학시절의 낭만인데 그런데 빠지면 안 된다고 대낮부터 나를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물론 회사일이 바쁠 때는 학교수업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함께 철야근무도 했지만, 그분 덕분에 정말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회사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행여라도 휴일에 심심할까 봐, '은호 씨, 요번 일요일에 뭐해요?' 하며 테니스도 가르쳐 주고, 당구장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친형님 이상으로 나를 챙겼다. 휴대폰이 없는 시절이어서 내 친구들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곤 했는데, 그분은 내 친한 친구들 이름까지 외울 정도였다. 먼저 전화를 받게 되면 꼭 아는 체하며 안부를 묻고 나서 나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도 그분을 잘 알았고 모두들 좋아하였다. 그렇게 늘 나를 챙겨주고 회사에서건 밖에서건 같이 붙어 다니니까, 사람들로부터 '둘이 사귀냐?' '친형제간이냐?' 하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다. 이사님께서도 그분이 안 보이면, 나에게 '은호야, 네 형 어디 갔냐?'라고 하셨다.


그 시절 나에게는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형님 같은 그분이 있었기에 매일매일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그분과의 인연은 두 번째 회사로 이어졌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 그분이 먼저 이직을 하였고, 몇 년이 흐른 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분의 추전으로 옮긴 회사에 바로 그분 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곳 사무실 동료들도 다 좋은 분들이었고 그분의 든든한 후원도 있어, 새로 적응하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원래 그 회사에 있었던 사람인 양 곧 조직에 동화될 수 있었다.


그분은 학부 전공이 물리학임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회계공부를 하여 회사의 원가계산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역시 독학으로 PC용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여 원가계산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썼다. 회사에 전산부서가 있었으나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하면 언제 될지 하세월이었고, 개발자들의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원하는 프로그램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부서 간 텃세도 있었고, 조직이나 공정이 바뀔 때마다 프로그램 유지보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예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해결하였다. 그분은 마치 슈퍼맨 같은 분이었다.


그분 따라쟁이였던 나도 자연스럽게 PC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재를 구입하여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였다. 나중에는 그분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아서 할 정도로 수준이 향상되었다. 오지랖 넓게도 다른 부서 일까지 나서서 번거롭고 귀찮은 작업들을 처리해 주기도 하였다. 사무실에 PC가 전체적으로 보급되고부터 각종 양식들을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전사에 보급해 주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기도 다.


세월이 몇 년 더 지나 그분먼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여러 면에서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여건이 안되었고, 그분은 더 이상 회사에서 자기가 할 일이 없다며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과중한 업무를 떠맡게 된 나는 한동안 방황 하였으나, 새롭게 시작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홀로 회사에 눌러앉고 말았다. 후로 가끔 그분을 만나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서로 간에 왕래가 끊어지고 소식을 접하지 못하게 되었다.


비록 직장이라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만난 사이지만, 그분을 통해서 배운 직업관이나 가치관 등은 자연스럽게 나의 의식 속에 내재화되었고, 30여 년을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존중' '인간애' '동료애' 같은 개념이 은연중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항상  부분에 신경을 쓰면서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내가, 새로운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그분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다. 첫 직장에서 첫 상사로 만난 그분은 회사생활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멘토였다.




그분께 직접 구운 빵과 내 소설책을 드렸다.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작년에 한 문예지에 단편소설로 신인상을 받았고, 올해는 부산의 모 월간지에 수필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수필을 쓰다 보니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분이 선배님이라고 하였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 진작에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다고.


그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창한 봄.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훈훈했으며, 거기에 마음은 더없이 편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그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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