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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15. 2024

졸지에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 남자의 횡설수설



매주 토요일에 알바를 하고 있는 가게에 평일 오전 대타로 근무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서는 날, 부랴부랴 채비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버스로 사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가면서 음악이나 듣자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고 딱 맞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음악소리가 평소와 달리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서고 젊은 처자가 탔다.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입구 오른쪽 구석에 섰다. 잠시 후 또 엘리베이터가 서고 이번에는 젊은 청년이 탔다. 그 역시 나를 힐끗 보더니 입구 왼쪽 구석에 섰다. 아침부터 왜 사람을 힐끔거리는겨? 싶었다.


음악 볼륨을 키웠다. 엘리베이터 기계음에 노래가 영 시원찮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둘 다 나를 다시 힐끗 쳐다봤다. 이어 일층 현관에 도착,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여전히 음악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이런 세상에! 음악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힘들 때 너를 만나

잘해 주지도 못하고

사는 게 바빠서

한 번도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백 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


확인해 보니 블루투스가 꺼져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젊은 남녀가 속으로 얼마나 나를 욕했을 것인가? 아침 출근시간에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꼰대. 딱 그 짝이 아닌가!


등산할 때 듣는다고 소형라디오를 샀을 때, 딸이 '아빠, 제발 조용한 산속에서 트로트 크게 틀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주의 주었던  생각났다. 그런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짓을 했으니, 꼰대짓도 런 꼰대짓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이웃 브런치 작가님의 글에서 비슷한 글을 보았다. 노인들이 핸드폰 음악을 크게 틀고 듣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핸드폰에는 옛날처럼 이어폰을 꽂는 잭이 없다 보니 나이  노인들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 그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댓글을 단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모르는 게 아니고 그냥 꼰대짓하는 겁니다."


그래도 회사 다닐 때 IT팀장을 했었고, 한때는 전자기기의 얼리어답터 역할도 했었고, 신문물 출현을 감시하는 초병 역할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빠르게 변하는 문명의 이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감각도 떨어지고 대처능력도 둔해진다. 그 결과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데, 본의 아니게 꼰대짓을 해버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보고 '싸가지 없다' 하고,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보고 '꼰대짓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엘리베이터에서 혹시 또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제발 얘기 좀 해주세요. 시끄러운 음악 듣기 힘드시잖아요? 제가 뭐 험상궂게 생긴 것도 아니고 기골이 장대해서 위협감을 느끼는 것도 아닐테고요. 저는 그저 마음 약하고 평범한 이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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