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에 알바를 하고 있는 가게에 평일 오전 대타로 근무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서는 날, 부랴부랴 채비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버스로 사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가면서 음악이나 듣자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고 딱 맞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음악소리가 평소와 달리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서고 젊은 처자가 탔다.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입구 오른쪽 구석에 섰다. 잠시 후 또 엘리베이터가 서고 이번에는 젊은 청년이 탔다. 그 역시 나를 힐끗 보더니 입구 왼쪽 구석에 섰다. 아침부터 왜 사람을 힐끔거리는겨? 싶었다.
음악 볼륨을 키웠다. 엘리베이터 기계음에 노래가 영 시원찮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둘 다 나를 다시 힐끗 쳐다봤다. 이어 일층 현관에 도착,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여전히 음악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이런 세상에!음악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힘들 때 너를 만나
잘해 주지도 못하고
사는 게 바빠서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백 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 ♬
확인해 보니 블루투스가 꺼져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젊은 남녀가 속으로 얼마나 나를욕했을 것인가? 아침 출근시간에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꼰대. 딱 그 짝이 아닌가!
등산할 때 듣는다고 소형라디오를 샀을 때, 딸이 '아빠, 제발 조용한 산속에서 트로트 크게 틀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주의 주었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짓을 했으니,꼰대짓도 그런 꼰대짓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이웃브런치 작가님의 글에서 비슷한 글을 보았다.노인들이 핸드폰 음악을 크게 틀고 듣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핸드폰에는 옛날처럼 이어폰을 꽂는 잭이 없다 보니 나이 든 노인들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 그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댓글을 단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모르는 게 아니고 그냥 꼰대짓하는 겁니다."
그래도 회사 다닐 때 IT팀장을 했었고, 한때는 전자기기의 얼리어답터 역할도 했었고, 신문물 출현을 감시하는 초병 역할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빠르게 변하는 문명의 이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감각도 떨어지고 대처능력도 둔해진다. 그 결과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데, 본의 아니게 꼰대짓을 해버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보고 '싸가지 없다' 하고,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보고 '꼰대짓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엘리베이터에서 혹시 또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제발 얘기 좀 해주세요. 시끄러운 음악 듣기 힘드시잖아요? 제가 뭐 험상궂게 생긴 것도 아니고 기골이 장대해서 위협감을 느끼는 것도 아닐테고요. 저는 그저 마음 약하고 평범한 이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