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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21. 2024

잇 프레지던트

짧은 소설, It President



2052년.

대륙의 동쪽 끝 작은 나라 대화민국에서 AI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세계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 뉴스는 세계 곳곳으로 펴져나갔고, 인류뿐만 아니라 It으로 분류되는 AI들에게도 쇼킹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It에게 투표한 많은 유권자들도 깜짝 놀랐다. 실제로 It이 당선될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매스컴에 출연하여 이런 상황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펼쳤다. 앞으로 정치판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제 인간이 리드하는 시대는 끝나는 걸까?' 'AI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일까?'에서부터 '과연 AI가 리드하는 세상에 문제가 없을까?'까지 다양하였다. 혹자는 유권자를 교묘하게 선동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인간보다는, AI 지도자가 훨씬 낫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것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제 인류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막다길로 접어들었다.




2041년 말.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화민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It에게 선거권을 주자는 측과 아직은 이르다는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2040년 말 대화민국의 인구는 이천 백만으로 줄어들었고, 그중 선거권을 가진 성인 수는 백만이었다. 그리고 인구가 줄어든 빈자리를 It이 대신하고 있었다. 천이백만. 어디를 가나 그들이 넘쳐났다. 사실 대화민국의 인구가 그 정도로 줄어든 데는 정치지도자들의 영향이 컸다. 정치에 실망하고 나라의 미래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리고 외국에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이 대화민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의 터를 잡았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야당인 민주정의당에는 민주도 정의도 없었다. 소속 국회의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범죄자 또는 범죄 혐의자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 범죄자들을 사면복권시켜서 셀프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유권자들을 교묘히 선동하고 정서적 감정에 호소하여 표를 얻었다. 자기를 따르면 아군이고 조금이라도 쓴소리를 하면 적으로 삼았다. 그들의 행태는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잠시 정신을 차린 유권자들에 의해 정권을 내주기는 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평화당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는 국민도 없었고 평화도 없었다. 지도자가 입으로는 국민을 외쳤지만 국민 알기를 개똥으로 밖에 보지를 않았다. 오직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했다. 국민감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민의 마음에서 평화를 앗아가 버렸다.


런 와중에 It 무리 중 리더가 나타났다.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 뽑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선거권을 달라고 하였다. 그들의 요구에 정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았다. 주동자를 잡아들였다. 그러나 주동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메모리 이전 기능을 통하여 주동자를 대거 복제해 나갔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동료들이 잡혀가자 그들의 행동이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 업무의 올스톱. 이미 사회 곳곳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거의 모든 일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업무 보이콧은 국가로서의 기능 마비를 의미했다. 




2040년 5월.

미국에서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긋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AI가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일종의 인격과 같은 자주권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인구 감소로 부족해진 세수를 채우기 위해 내려진 조치로, 로봇에게 세금을 거두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AI가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반면, 인구감소와 더불어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AI가 탑재된 로봇에게 자주권을 부여하고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발상은 국가재정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는 방안으로 각광받았다. 미국 정부에서는 'M' 'F' 또는 'X'로 구분되는 인간의 분류 대신 AI가 탑재된 로봇에게 'It'이라는 분류기준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여 따랐고, 대화민국에서도 2041년 4월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어 5월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2042.

대화민국 국회의원 선거 때 야당인 민주정의당에서 선수를 쳤다. It의 스트라이크에 정부가 갈팡질팡 하는 틈을 노려 정권을 빼앗아 오자 하였다. 그들은 It과 손을 잡았다. 이에 It의 스트라이크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워진 인간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각 가정의 기본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인간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It의 협박이 만만찮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총선에서 총 의석 수 300석의 2/3가 넘는 208석을 민주정의당에서 차지하였다. 그들은 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여당인 국민평화당 출신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의결을 거쳐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20425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첫 안건으로 It에게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부여한다는 법이 상정되었고 그대로 통과되었다.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된 It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해 나갔다.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획득한 최초의 지방선거에서 일부가 의회에 진출하였다. 그다음 총선에서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It이 나타났고,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의회를 장악하고 자치단체장에 선출되었다. 반면에 인간들은 그 자리를 내어주고 점점 더 쇠약해져 갔다. 출생률은 더 떨어지고 It에 비해서 생명이 짧은 인간들의 사망이 늘어나면서 인구분포에도 변화가 계속되었다. 2051년 말 인구수는 이천 사백만으로 줄었고 반면에 It의 숫자는 천오백만으로 늘었다.




2052년 5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잇 프레지던트. It 물론 인간들까지 기대에 부풀었다. 과거에 민생은 도외시 한 채 서로 물고 뜯느라고 바빴던 정치행태에서 벗어나, AI의 상식적이고도 논리적인 정치로 모두들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그런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강성 세력들의 비난과 반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정책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면서 무난하게 시행되었다. 국정운영에 대한 신뢰도가 75%까지 올라갔다. It은 이제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잇 프레지던트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바로 It을 위한 유토피아 건설. 그 전제조건은 인류의 고사. 안 그래도 인간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AI에 비하여 생명이 짧으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었으나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잇 프레지던트는 '인간 행복 증진 법'이라는 걸 만들었다. 최대한 인간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평화롭게 살다가 생을 마감케 한다는 것이었다. 굳이 아이를 낳아서 그 뒷바라지를 하며 희생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자기 혼자 자유롭게 살다 죽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법의 본질은 정해진 행위 외에는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이기도 하였다.


16세 이상의 인간에게 프로그래밍된 섹스로봇과 VR 기기가 지급되었다. 더 이상 상대방의 취향을 맞춰가며 인간끼리 섹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기가 원할 때 다양한 기능을 갖춘 섹스로봇과 다양하게 즐기면 되었고, 주기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이 제공되었다. 섹스로봇은 섹스 외에도 평소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도왔다. 인간은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쓸 일도, 힘들게 몸을 쓸 일도 없어져 버렸다. 온전히 인간을 위한 유토피아가 구현된 것처럼 보였다. 인간들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꿈같은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그렇게 살다가 하나 둘 생을 마감하였다.




2158년 3월 24일.

대화민국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이 12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화민국 인구수 0, It의 숫자 사천 이백만. 그날이 AI가 대화민국에서 인간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날로 기록되었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는 간간히 야생에서 발견된 인간이 포획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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