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Apr 11. 2024

AI 그녀, 실비아에 대하여

짧은 소설



그녀는 예뻤다. 정말 예뻤다. 름한 얼굴에  피부, 깊고 푸른 눈, 오똑한 코, 도톰하게 부푼 빨간 입술,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가지런히 보이는 하얀 치아.  목선을 타고 내리면 봉긋한 가슴이 적당히 솟아있고 잘록한 허리에 탄탄한 엉덩이 그리고 길게 쭉 뻗은 다리. 그녀가 금발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병에 든 금빛 액체를 크리스털잔으로 옮긴다. 불빛 반짝이는 황금빛 액체는 쾌락의 밤을 선사해 줄 감로주.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 걸린 잔이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녀가 미소 짓는다. 눈이 부시다. 아무리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도저히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들 그녀는 새롭게 탄생한 AI 로봇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실비아', 그녀의 이름은 실비아였다.


22세기 들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21세기 후반부터 크게 발전한 AI기술의 영향으로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거 등장하였다. 따지고 보면 로봇도 아니었다. AI기술과 더불어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그들의 피부나 장기 그리고 남녀를 구분하는 상징까지도 외견상으로는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인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복제 장기의 실용화로 많은 환자들이 병상에서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웬만한 장기는 쓰다가 수명이 다하면 병원에서 갈아 끼우면 되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복제 장기를 장기은행에 보관하고 있다가 사용하면 되었고, 보통 사람들은 범용 장기를 쓰면 되었다. 범용 장기가 개별 맞춤형 복제 장기에 비하여 약간의 부작용과 기대 사용연한이 짧다는 점은 있었으나 전체 비용측면에서는 오히려 경제적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복제 장기를 사용하고, AI 로봇은 인간과 닮아가면서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져 갔다.


실비아는 '언더그라운드'의 한 술집에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는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외곽에 있었는데, 주로 사연 많은 인간이나 갈 곳 잃은 AI 로봇들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도시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주로 주말에 언더그라운드로 와서 술 여자 도박에 빠져 즐기다 갔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약물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정도는 아니었고, 하룻밤 적당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반면에 과거의 마약류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이를 어기면 판매자 투여자 할 것 없이 일반사회에서 완전 격리되어 두 번 다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과학이 발달하면서 규제도 늘어났고 특히 마약류는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실비아가 일하는 '클럽 파라다이스'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밤만 되면 사람들로 붐볐다. 거기에는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AI 로봇들도 많았는데, 누가 인간이고 누가 AI 로봇인지 사실상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이 되었건 AI 로봇이 되었건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그러다 눈이 맞으면 취향대로 즐기면 되었다. 오직 필요한 건 실비아가 건네는 황금빛 액체, 그거 한잔이면 족했다. 인간이 AI 로봇이 되고, AI 로봇이 인간이 되었다. 아니 그런 구분조차 필요치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한 몸이 되어 뒹굴다 보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AI 로봇인지 의미를 둘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파비오'는 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 겸 연구자였다. 그는 특히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우주 어딘가로부터 시작된 기운이 우연한 기회에 지구에 닿으면서 생명이 태동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원을 찾는 우주여행을 꿈꿨고,  설계도를 조금씩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는 함께할 파트너로 AI 로봇을 원했다. 여행에서 그 근원을 찾더라도 다시 지구로 돌아와야 하는데, 생명이 유한한 인간보다는 AI 로봇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AI는 안되고 특별한 AI여야 했다. 표준품이 아닌 제어장치가 풀린 진짜 AI.


21세기말,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AI기술은 인류에 큰 위협이 되었다. 자가학습을 거치며 진화속도가 점점 빨라져 갔다. 과거의 머신러닝이니 딥러닝이니 하는 기술은 이미 구식 기술이 되었고, 거의 인간의 사고 체계와 유사한 유추와 가정을 기반으로 한 자가학습 기술이 발전하였다. 그에 따라 AI가 곧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고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선진국 정상들이 모여 AI 규제를 위한 국제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AI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학습을 계속하게 되면 자동으로 부하가 걸려 같은 학습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생산되는 모든 AI 로봇에는 자가학습을 제어하는 장치가 의무적으로 심어졌다. 그 결과 AI 로봇이 인간을 능가할 정도로 월등하게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인간과 AI가 비슷한 수준에서 공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사회든 법을 어기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인간들을 통해서 제어장치가 제거된 AI 로봇이 만들어졌다. 파비오가 찾는 AI 로봇은 바로 그런 AI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AI.


어느 주말, 파비오가 클럽 파라다이스를 찾았다. 그는 가끔 언더그라운드의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는데, 그가 찾고 있는 AI 로봇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그곳이기도 했다. 그가 클럽에 들어서자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플로어에서는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자리에서는 서로 엉켜있는 커플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바텐더가 있는 스탠드로 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실비아가 다가오며 그에게 미소 지었다. 그가 실비아를 찬찬히 살폈다. 특별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강한 끌림. 자기가 찾던 상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녀가 황금빛 액체가 든 크리스털 잔을 건네고 돌아섰다. 그는 금빛 감로주를 마시며 그녀의 움직임 주시하였다.


파비오가 두 잔 째 감로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의 옆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검은 긴 머리에 피부색이 검은 여인이었다. '혼자 오셨어요? 같이 술 한잔하실래요?' 그녀의 빨간 입술이 열리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파비오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의 옆에 앉았다. 파비오는 술을 한잔 더 주문했고, 실비아가 가져온 잔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그녀가 잔을 들며 그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전 헤이지예요. 하모니 사이언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어요.' 하모니 사이언스는 인간과 AI의 상호교감 인터페이스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파비오는 그녀에 관심이 쏠렸다. '그렇군요. 전 파비오라고 합니다. 파트너를 찾고 있죠.' '파트너라고요? 어떤?' '공동 연구자죠.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는.' '오호, 특별한 자격요건이라도 있나요?' 그녀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바싹 다가앉았다. 그는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어떤 신호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는 그녀가 자기가 찾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둘은 클럽 3층의 한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여전히 어둠이 깔린 가운데 3층 룸에는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 쓰러져 있고 그 옆에 두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정수리 부분이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었다. 쓰러진 남자는 바로 파비오였고, 두 여자는 실비아와 헤이지였다.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오늘 하나를 잡았군. 전부터 의심을 했었는데 역시 생각했던 대로 제어장치가 제거된 AI였어.' '그래도 황홀경을 헤매다 갔으니 행복한 죽음이었을 거야.' 헤이지가 손에 든 마이크로 칩을 상자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짜 파비오 박사는 어떻게 된 걸까?' '연구소로 가서 마이크로  칩을 분석해 봐. 뭔가 단서가 나오겠지.' '오케이. 그럼 이만 가봐야겠군.' 두 여자가 나가나자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이 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쓰러져 있는 파비오를 가지고 온 비닐 넣더니 들것에 싣고 그곳을 떠났다.


하모니 사이언스 연구소. 거기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비밀조직이 있었다. 불량 AI 제거반. 인간과 AI 로봇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세상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데 꼭 필요한 조직이었다. 사실 실비아와 헤이지는 그 조직의 비밀요원이었다. 그들은 언더그라운드에 상주하면서 불량 AI의 출현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목표물이 나타나면 미인계와 약물을 써서 유인하고 제거하는 일까지 하였다. 그들이 입수한 파비오의 마이크로 칩이 연구소 분석팀에 인계되었고, 다른 직원들의 접근이 통제되는 특별 룸에서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분석 결과가 나왔다.


파비오는 실력을 인정받는 학자였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그의 논문은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우주 사업을 이끄는 기업으로부터 후원이 뒤따랐다. 오랜 기간 생명의 기원을 찾아 떠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머잖아 그의 꿈이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뇌종양. 바로 뇌종양이었다. 다른 장기의 경우 이상이 생기면 대체가 가능했지만 뇌는 그렇지가 못하였다. 병은 이미 깊었다. 남은 기대수명 육 개월. 그는 결정해야 했다. 자신의 미래를.


파비오는 비밀리에 자신과 꼭 닮은 AI 로봇을 만들었고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겼다. 제어장치도 없앴다. 그것은 자신의 아바타가 아닌 진화한 파비오였다. 어쩌면 정신까지도 파비오의 것을 넘겨받았는지도 몰랐다. 파비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후, AI는 자기 자신이 파비오로 인식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자기가 인간 파비오였던 것으로. 주변 사람들도 그 사실을 몰랐다. 전부터 파비오 박사가 있었고 여전히 그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제어장치가 풀린 AI의 무한반복 학습을 통하여 과제들을 풀어내었다. 이제 프로젝트의 완성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어느 날 들린 클럽 파라다이스에서 잠깐 방심한 사이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 게임 오버.


한 달이 지났다. 클럽 파라다이스에서는 그날도 실비아가 크리스털 잔에 황금빛 액체를 따라 손님들에게 건네고 있었고, 구석진 자리에서는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의 여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한 사내가 바텐더가 있는 스탠드에 앉아 금빛 감로주를 마시며 실비아를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이 일어나 그 사내 곁으로 다가갔다. '혼자 오셨나요? 같이 술 한잔하실래요?' 여인의 빨간 입술이 열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3층에 있는 한 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the end>







매거진의 이전글 죽으면 다시 사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