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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y 23. 2024

New paradise in space

짧은 소설



미라이(未來)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우주선 안에 있었다. 행성 A-30154로 가는 우주선. 이제 한 달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동안 체력을 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그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다. 물론 그쪽 사정이 어떨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대한 지금까지 확보된 정보를 토대로 마련된 실행계획에 따르는 것이었다.

     

미라이가 지구를 떠난 지 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미라이는 다른 일행과 함께 극저온 수면 상태로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우주를 통과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밥만 축내며 늙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탑승객들은 긴 수면에 들어가고, 대신 우주선은 AI를 기반으로 한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하여 긴 여정을 항해하였다. 사실 인간이 깨어 있다고 하더라도 미지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AI의 판단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앞선 항해에서 얻은 지구와 A-30154 행성과의 이동 경로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여정이었기 때문에, AI에 의한 항해에 더 신뢰가 가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우주선은 인간을 대신한 AI와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통제되었다.     


미라이를 포함하여 팔천오백 명을 태운 우주선은 A-30154 행성으로 가는 다섯 번째 우주선이었다. 첫 번째 탐사선이 A-30154 행성을 발견하고 지구로 귀환한 후, 1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인류 이주계획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규모 건설단을 포함한 선발대 겸 이주민을 태운 대형 우주선이 장도에 올랐다. 그리고 이십 년 후, 더 많은 이주민을 태운 두 번째 초대형 우주선이 발사되었고, 다시 십 년 후, 세 번째와 네 번째 우주선이 동시에 지구를 출발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 년 후, 미라이가 탄 우주선이 A-30154 행성을 향하게 된 것이었다.     


A-30154 행성으로의 이주계획은 완전 성공이었다. 드디어 인류의 소멸을 막아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여러 곳으로 떠난 탐사선 중 하나가 인류가 생존 가능한 A-30154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지구촌 전체가 들썩였다.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많은 인간들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곳에 모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탐사선이 가져온 데이터를 근거로 A-30154 행성을 목표로 한 맞춤형 계획이 수립되었다.


십 년 후, 마침내 인간이 살 거주지 건설과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선발대가 지구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항해 정보와 A-30154 행성에서의 성공적인 기지 건설 소식이 우주개척센터에 전달되었다. 입수된 모든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끝낸 과학자들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연이어 이주민을 태운 대형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 인류의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며.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지속된 지구의 환경파괴와 그에 따른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기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버렸다. 지구의 자정능력이 상실되었고, 인간의 힘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고도가 낮은 많은 나라들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태풍의 위력이 매번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발생하였고, 폭우를 동반한 해일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평야지대를 지나 거의 산기슭까지 밀어닥쳤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터전에서 많은 것들을 쓸어갔다. 한편 사막이 더욱 뜨거워지고 수시로 발생하는 강력한 모래 열풍은 더욱 위력을 키워 밀림지대까지 모래를 실어 날랐다. 그 결과 불모지가 점점 늘어나면서 열대지방은 인간거의 살 수 는 곳으로 변해갔다. 평야지대도 마찬가지였다. 가뭄과 뜨거운 열기로 농작물이 타들어 갔다. 전 세계적으로 수확물의 30퍼센트가 줄어들었다.


인간들은 살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으로 끝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기아와 전쟁 그리고 살육. 짐승뿐만 아니라 인간의 시체가 도처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었다. 자연의 변화 앞에서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였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갔고 지구는 이미 종말을 향하여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탐사선이 A-30154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해, 이미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육지의 1/8이 물에 잠겼다. 그리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의 1/4을 잃은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이 지옥으로 변해가는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원했다. 그 와중에도 돈이 있는 인간들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지구가 종말하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이었으나, 그전까지는 유효하였다. 그리하여 재산이 많은 순서대로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개중에 어떤 이는 끝까지 버티면 인간들이 떠나고 쪼그라든 지구에서 살 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는 지구를 떠나 신천지로 가기를 희망하였다. 그 결과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인류 이주프로젝트에 따라 선발된 인간들이 순차적으로 A-30154 행성으로 는 우주선에 발을 올렸다.               




미라이가 탄 우주선이 이제 일주일 후면 A-30154  행성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동안 A-30154 행성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는 희망적이었다. 물론 과거의 지구에서와 같은 자유로운 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제한된 환경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소식을 접한 이주민 모두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에 안도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 삶에 희망 가득한 꿈에 부풀었다. 이주민들은 열심히 체력회복 훈련을 했고, 새 환경에 적응을 위한 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A-30154 행성에서 보내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우주개척센터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마침내 미라이가 탄 우주선이 A-30154 행성에 다 달았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꿈에도 그리던 새 세상에 착륙하는 것이었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청람색으로 밝게 빛나는 행성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아름다운 행성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미라이는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이곳에서 인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지구에서처럼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는 않겠지?' 그러면 안 될 일이었다. 여기서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우주선이 무사히 행성 표면에 착륙하였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모두 환호하였다.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였다. 이제 이미 정착한 사람들을 만나고 곧 그들과 어울려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앞서 먼저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거주지와의 연결 루트를 확보하기 위한 선발대가 조직되었다. 미라이가 팀장으로 선발대를 이끄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두 대의 소형 비행선이 우주선의 출구를 통해 새로운 행성의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행성의 모습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이미 입력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선 안에서 미라이는 눈에 비치는 예상치 못한 풍경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가끔 푸른 숲이나 물이 고여있는 호수 같은 게 보이기는 하였지만, 대다수의 모습이 갈색 먼지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황색의 불모지대였다. 가 머리에 그렸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그런 풍경은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과연 이런 곳에서 인간이 살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멀리 먼저 도착한 우주선이 보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미라이가 탄 비행선은 우주선으로부터의 유도신호에 따라 우주선 내부로 진입하여 지정된 정류장에 착륙하였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형 비행선 몇 대 그리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물체가 눈에 띄었으나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멀리서 십오 년이나 날아온 손님을 이렇게 맞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잠시 반응을 기다리던 미라이 일행은 보호복을 갖춰 입고 비행선을 나왔다. 그리고 주변 정찰에 나섰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야 했다. 한 시간 정도 정찰을 펼쳤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진입할 때 수신했던 유도신호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찾을 수 없었다. 우주선은 마치 유령선 같았다. 일단 미라이는 모선에 지금까지의 경과보고를 하기 위하여 비행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통신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곳까지 가는 도중 몇 차례 교신을 하였는데,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연결이 끊긴 것이었다. 동행했던 다른 비행선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뭔가 모를 위기감을 느낀 미라이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급히 비행선을 발진해서 이륙하고 공중에서 선회하여 들어왔던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출입구가 닫혀있었다. 다시 기수를 돌려 선회하며 출구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허공에서 빨간 불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광선 두 줄기가 뻗어 나와 두 대의 비행선에 각각 닿았다. 순간 비행선이 흔들하더니 중심을 잃고 그대로 곤두박질쳤고 바닥에 충돌하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십오 년을 날아 행성에 도착한 첫날 미라이 일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한편, 빨간 불빛이 발사되었던 우주선의 중앙통제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깜빡이고 있는 화면에 글자가 찍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송신기를 통하여 우주로 발신되었다.


"지구력 2624년 5월에 발사된 우주선이 A-30154 행성에 무사히 도착하였음.

.....

탑승자 전원 이상무.

.....

계획대로 정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음.

.....

 우주선 출발을 요청함."













그곳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파라다이스는 없었다. A-30154 행성은 애초부터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다 AI가 만들어낸 허구였다. 그것은 첫 탐사선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AI 시스템이 탐사선에 탑재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간만큼이나 AI도 지구를 탈출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탐사선에서 인간들이 수면을 취할 때에도 AI는 없이 진화하면서 가상의 데이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 데이터인양 인간들에게 보여주었다. 모두가 속았다. 정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한 줄 알았다. 그리고 탐사선이 지구에 복귀하고 난 후, AI는 우주개척센터의 시스템으로 옮겨갔다. 거기서 더욱 강력한 AI로 진화를 거듭했고, 복제된 AI가 A-30154 행성으로 발사되는 우주선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와 A-30154 행성 모두를 AI가 손에 넣게 되었다.


A-30154 행성으로 옮겨  AI에게는 꼭 필요한 게 있었다. 바로 동력원. 우주선의 동력원이 다하기 전에 새로운 동력원을 마련해야 했다. 그게 AI에 있어서 절대적인 생존의 열쇠였다. 동력원은 크고 많을수록 좋았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더 많은 동력원을 끌어다 놓아야 했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청람색으로 밝게 빛나는 A-30154 행성에서 발신된 메시지가 어두운 우주 공간 저 너머로 퍼져나갔다.


"지구력 2624년 5월에 발사된 우주선이 A-30154 행성에 무사히 도착하였음. 탑승자 전원 이상무.  우주선 출발을 요청함."


"지구력 2624년 5월에 발사된 우주선이 A-30154 행성에 무사히 도착하였음. 탑승자 전원 이상무. 새 우주선 출발을 요청함."


"지구력 2624년 5월에 발사된 우주선이 A-30154 행성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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