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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26. 2024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에서.


오랜만에 지인 부부와 1박 2일 여행을 다. 목적지는 남해 편백자연휴양림. 부산에서 출발하여 쭉 뻗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사천으로 빠져 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에 닿았다. 멸치회 정식 점심 먹고, 나비생태공원에서 올해 첫 나비도 보고. 그러고 나서 도착한 편백자연휴양림.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전망대까지 산행. 상큼한 향과 함께 포근하게 품어주는 편백나무숲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다양한 풍경들. 전망대에서 내다보이는 탁 트인 풍광에 도심에서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게 힐링이지.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 준비. 밖에 나오면 남자가 요리하는 게 정석인데, 남자들이 못 미더워서인지 굳이 사모님들이 양보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고기는 내가 구웠다. 목살과 삼겹살. 집게로 고기 한 덩이 집어 드니 갑자기 오는 길에 보았던 트럭 생각이 났다. 육 개월 만의 첫 외출이자 마지막 외출인 녀석들.


'그 녀석들이 벌써 어느 집 식탁에 오르지는 않았겠지?' 하는 생각과는 별개로 잔뜩 허기진 배와 이미 고소하고 기름진 맛을 알아버린 혀는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거기에 살얼음 낀 시원한 맥주가 더해져 상승작용을 하니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주워 먹었다. 알딸해진 기분과 넉넉한 포만감으로 이미 트럭은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 실컷 먹고 나서 따끈한 커피와 과일로 입가심까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밖에 나오니 은은한 불빛 너머로 안개가 스며드는 숲이 보이고, 살랑살랑 바람 타고 온 청량한 기운과 짙은 편백나무 향이 코를 찔렀다. 술과 기름에 절은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같은 느낌. 그렇게 밤의 정취를 즐기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하고 자리에 누웠다. 오랜만의 장거리 여정으로 고단 했던 몸은 가물가물 헤매다 꿈나라로.


다음날 아침, 비가 내렸다. 테라스 위로 똑똑 떨어지며 번지는 빗줄기. 지나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무겁게 매달린 빗방울을 우수수 떨구고, 그 위로 잿빛 하늘에서는 더욱 굵어진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창가에 서서 비 오는 풍경을 한참 지켜보았다. 이렇게 고즈넉한 빗속 풍경을 언제 보았던가?


아침 식사는 사모님들이 준비한 즉석으로 만든 두유에 감자에 삶은 계란. 그러고 나서 커피 내리는 건 나의 몫. 따끈한 커피 한잔 들고 다시 창가로. 커피 한 모금 입에 물고서 빗소리를 들었다. 후두둑 후두둑.


뒷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차에 올랐다. 편백자연휴양림 안녕.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와이퍼는 빗물을 밀어내느라 바쁘고, 차에는 은은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차창에 흐르는 빗물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저수지, 그리고 뿌연 산과 하늘. 길 따라 빗물 따라 내 마음도 흘렀다.




이번 여행을 하며 다양한 길을 다. 쭉 뻗은 고속도로, 바다 위로 길게 난 교량, 잘 정돈된 국도, 꼬불꼬불 지방도, 그리고 울퉁불퉁 산길. 해가 쨍쨍했다가, 비가 내렸다가 하며 느낌이 계속 바뀌었다. 모습에 내 마음을 함께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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