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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Oct 18. 2024

십 년 만의 소풍



지난 월요일, 소풍을 갔다. 전에 다녔던 회사의 퇴직임원 모임에서 욕지도로 소풍을 간 것이다. 감사하게도 가게가 쉬는 월요일로 날을 잡아 참석할 수 있었다. 그날 참석 인원은 20명. 아침 7시 반 28인승 리무진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푹신하고 넓은 좌석이 아주 그만이었다. 차가 서서히 출발하자 모임 총무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준비한 아침 식사를 나눠주었다. 김밥은 식상하다며 따끈따끈한 주먹밥과 조미김을 주었다. 비닐장갑까지 주며 적당량씩 분할하여 김에 싸 먹으란다. 그 외에도 떡, 과자, 연양갱, 밀감에 술안주 오징어 채와 땅콩까지. 완전 푸짐하였다. 덕분에 출발부터 잔치분위기다.


"여행은 다리가 건강할 때가 아닌 가슴이 떨릴 때 하라고 합니다. 오늘 비록 다리가 떨리는 분이 계시더라도 떨리는 가슴으로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모임 회장님의 멋진 인사말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 하루 정말 멋진 여행이 되기를 빌어 보았다. 모임이 만들어진 이래 네 번째 나들이라고 하였다. 제일 마지막에 간 것이 십 년 전이었다고 하니, 십 년 만의 소풍인 셈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 한 곳을 들러 경남 통영의 삼덕항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욕지도까지는 배를 타고 한 시간. 65세 이상은 경로우대로 20% 할인, 일행 중에 정상운임을 내야 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하필이면 그날 젊은 회원들이 몽땅 불참하여 내가 제일 막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표를 끊으며 한 사람은 단체할인으로 해달라니 그것은 안된단다. '빨리 나이를 먹든지 해야지 이렇게 차별대우를 받아서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 오르니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비가 온다고 걱정했는데,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이 잔뜩 끼어 오히려 덥지도 않고 좋았다. 삼삼오오 모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배가 욕지도에 도착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그날 주 메뉴는 바로 고등어회. 모두 양식이란다. 욕지도에 유명한 세 가지 특산물이 있는데, 고등어, 고구마, 밀감이라고 하였다. 선입견에 혹시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완전 기우였다. 고등어회는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소주 한잔씩 곁들이며 모두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어서 밥과 함께 나온 고등어 무 . 회를 뜨고 남은 고등어 뼈와 머리로 매운탕 대신 매콤한 찜을 했는데 이게 또 일품이었다. 모두들 순식간에 한 공기씩 뚝딱 해치웠다.


점심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는 육십쯤 되어 보이는 여성분 혼자 있었는데,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이 제각각의 음료를 주문했음에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냈다. 노파심에 커피 좀 내려 본 내가 도와드릴 게 없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나보다 솜씨가 훨씬 좋아 보여 안심하였다. 나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셨다. 그곳의 음료가격이 우리 가게와 거의 똑같았다. 그런데 맛은 우리 가게가 나은 것 같아 조금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가게 커피에 내 입맛이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배 부르게 식사도 했고 후식으로 커피도 마셨고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섬 투어를 할 25인승 버스에 올랐다. 자신의 별명을 '대끼리'라고 소개한 버스 기사님은 아주 훌륭한 여행 가이드이기도 하였다. 욕지도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특산물 설명과 물고기 양식 업황 그리고 문화해설. 나중에는 운전하면서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고, 한 전망대에 세워진 김성우 시인의 시비 앞에서는 그의 시 '돌아가는 배'를 낭랑한 목소리로 암송하기까지 하였다. 정말 멋진 가이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분 덕분에 투어 재미가 배가 었고, 욕지도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욕지도는 한때 이만 명의 인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천 명으로 십 분의 일로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섬주민 전체가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특히 젊은 인구 감소로 초등학교에 1~3학년 학생들이 없어 몇 년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래서 면에서 아이와 함께 욕지도에 정착하는 가족에게는 집도 내주고 땅도 내주고 일자리도 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한 이십 년만 젊었어도 셋째 욕심을 내볼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섬을 돌며 출렁다리도 건너고, 욕지도 그랜드 캐니언도 보고, 욕지도 하롱베이도 보고, 고등어와 참치 가두리 양식장 설명도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우리가  출발한 여객항에 도착하였다. 이제 다시 배를 타고 통영으로 돌아갈 시간.




욕지항을 출발한 배가 속력을 올려 앞으로 나아가는데, 섬이 좌우로 얼마나 긴지 섬 전체 모습을 담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섬 전체 모습이 한눈에 잡혔고, 그 모습은 좌우로 길게 날개를 뻗은 갈매기 형상을 닮았다. 흡사 섬 두 개를 이어 붙인 듯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욕지도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갔다.




통영 삼덕항에서 다시 관광버스에 올랐고 달아 전망대를 거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로 들어갔다. 저녁 메뉴는 바닷장어 구이. 오늘 하루 완전 포식하는 날이었다. 장어구이 먹은 후에 밥하고 나온 장어탕도 아주 좋았다. 보약이라는 말에 다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나이 들어 뭐 힘쓸 일이 있다고 그렇게 싹싹 비우는지.


구경할 거 다하고 먹을 거 다 먹고 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제 차에 올라 집으로 가면 되는 일. 차에서 나이 많으신 원로들부터 여행 소감을 한 마디씩 하셨다. 나 같은 까마득한 막내까지야 차례가 올까 싶어 안심하고 있는데, 총무님께서 유일하게 오늘 경로우대 비대상자라고 한마디 하란다. 덕분에 구경 잘하고, 맛있는 거 잘 먹고, 소설 쓸 소재까지 얻어 간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날 총경비가 사백만 원 가까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간 모아둔 회비로 충당하고 또 여러 원로들께서 찬조금을 내시어 자금에 여유가 있다고 했다. 나 같은 막내는 전혀 부담 없이 즐기기만 하였고, 오히려 참석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었다. 거기에 덧붙여 욕지도 특산물 고구마까지 선물로 받았다. 정말 멋진 소풍이었다.




이번 소풍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점심식사차 들렸던 횟집에서 본 글귀였다.


수평선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다.


그렇다. 욕지도라는 섬에서 삶의 터전이 된 바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고 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면서 만선과 무사귀환을 꿈꾸었을 터인데, 그러나 그것은 하늘의 뜻.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늘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뱃길 따라 수평선으로 나가면서 아래로는 현실이요 위로는 꿈이니, 뱃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욕지도. 십 년 만의 소풍은 나에게 정말 멋진 소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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