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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Nov 11. 2024

숨은그림찾기

최명숙 소설집



숨은그림찾기. 브런치 이웃작가 최명숙 소설가의 단편집이다. 작가님의 책은 산문집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 산문집을 읽으며 작가님의 어릴 적 환경이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집안형편이지만 그래도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슬프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다. 이번에 읽은 단편집 '숨은그림찾기'는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소설가라 하시면서 이제야 첫 소설집을 내시다니, 조금은 야속한 기분마저 든다. 작가님의 글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주시길 기대해 본다. 특히 소설을 많이 써주시길.


책에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읽다 보면 작가님의 인생궤적에서 소재를 차용했음인지 작가님이 직접 겪으신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가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데서 '아, 아니구나!' 하고 현실로 빠져나온다. 그만큼 실감 나고 재밌다. 역시 작가님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힘은 참으로 탄탄하다.  


첫 번째 이야기가 책 제목과 같은 '숨은그림찾기'이다. 책을 손에 넣기 전에 작가님이 말하는 숨은그림찾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처음부터 보여주다니 작가님은 역시 프로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다 읽었음에도 숨은 그림을 끝내 못 찾았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님이 말하는 숨은 그림이란, 인생에 있어서 만나거나 혹은 비껴가거나 엇갈릴 수 있는 길목에서 내가 찾아내야 하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작가님은 그냥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세요' 하고 툭 던지고 이야기를 끝낸다.


두 번째 이야기 '달빛'은 주인공이 어렸을 때 육 개월간 함께 살았던 작은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할머니, 어머니, 작은엄마. 그 시절 질곡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작은며느리를 모질게 대하는 시어머니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주인공이 달빛 아래서 본 장면은 사실이었을까, 환영이었을까? 자칫 부도덕하게 흐를 뻔한 스토리 전개를 작가는 멋지게 마무리하며 끝을 맺는다.


세 번째 이야기 '아주 진부한 것들의 목록'은 선생님들의 연수교육에 강사로 나선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 마음을 품었던 여자의 여동생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작가님은 이야기 내내 진부한 듯, 진부하지 않은 듯 이끌어 간다. 사실 나는 작가님의 진부한 듯한 표현 방식을 좋아하는데, 그만큼 작가님의 구성력과 글 솜씨가 탄탄하고 매력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나열되는 진부한 것들의 목록과 결론은 책을 읽으며 직접 확인해 볼 일이다.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열쇠'이다. 요즘은 디지털 도어록이 대세여서 열쇠의 역할이 미미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쇠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었다. 열쇠고리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쇠. 대문, 현관문, 책상서랍 심지어 다이어리까지. 소설 속에 나오는 열쇠는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열고 들어가는 열쇠이다. 외부인으로부터 나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물쇠와 열쇠. 그래서 남에게 선뜻 내어줄 수가 없는 것. 그럼에도 열쇠로 나의 보금자리를 열어 남을 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벽을 연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감추고 싶은 마음을 열어 보이는 마음의 열쇠일 수도 있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새로운 인연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다섯 번째 이야기 '유를 찾아서'는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진 여인을 만나다'라는 문장 하나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한국인으로서는 흔치 않은 푸른빛의 눈동자.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과거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난 그녀. 두 여인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혹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지만 작가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역시 독자의 상상 속으로.


최명숙 작가 소설집 '숨은그림찾기'의 내용 소개는 이상의 다섯 편으로 끝낸다. 나머지는 독자가 직접 읽어 보실 일.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님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힘은 참으로 탄탄하다. 독자로 하여금 쉽게 빠져들어 재밌게 읽도록 한다. 스토리 전개가 물 흐르듯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현재와 과거가, 상상과 현실이 계속해서 오가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학창 시절 보물찾기나 숨은그림찾기에 소질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보물찾기나 숨은그림찾기에는 소질이 없었을지 몰라도 숨기는 데에는 탁월한 소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 편마다 작가는 숨겨 놓고 독자는 그것을 찾는다. 때로는 물건일 수도, 때로는 사람일 수도, 때로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잘 안 보인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면서 꼭 찾아야만 할 인연, 나에게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작가의 소설책 책장을 덮으며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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