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만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수많은 별들. 과연 그 별들 사이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사는 별은 없을까?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 지구. 어쩌면 지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또 다른 우연과 우연이 겹친 별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외계인과의 조우를 기대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주공간 저쪽으로 신호를 보내듯이, 누군가가 우리와 똑같이 우주공간 너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언젠가 서로 만나게 될 때, 그것이 서로에게 희망이 될지 비극이 될지도 모른 채.
대한민국 태백산에 위치한 발사대에서 쏘아 올린 우주탐사선 희망호는 명왕성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희망호의 목적지가 명왕성은 아니었다. 다만 공전주기가 248년인 명왕성의 궤도와 희망호의 항해경로가 우연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암갈색과 검은색 그리고 노란색 등이 버무려진 채 차갑게 빛나는 별 명왕성. 달보다 작은 크기에 영하 250도로 표면이 꽁꽁 얼어있는 별. 게다가 대기층 대부분이 질소 성분이라 생명이 살기에는 불가능한 곳. 그런 곳이기에 명왕성은 희망호 승무원 누구의 관심사도 되지 못하였다. 다만 지나가는 길목에 우연히 마주하게 된 낯선 존재일 뿐.
희망호에는 총 열두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우주선 조종사, 엔지니어, 과학자, 생물학자, 언어학자 그리고 의사인 김태평 박사. 김박사는 사실 우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일 년간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주공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재 위치가 어디쯤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AI가 시뮬레이션해서 화면에 비춰 주는 데이터를 보고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할 뿐이었다. 그동안 긴 항해를 하면서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 똑같았다. 사실 풍경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깜깜함 그리고 그 깜깜함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 그 별이 그 별 같은 모습.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똑같은 모습에 우주선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조차도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전에 나타난 명왕성 역시 그의 눈에는 다른 별들처럼 그저 그런 별들 중의 하나로 보였다.
희망호의 탐사 임무는 명왕성 너머 카이퍼 벨트 언저리에서 전해오는 정체불명 신호의 정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삼 년 전 한 천체물리학자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신호를 감지하였다. 그는 곧 우주항공청에 알렸고, 우주항공청에서는 정밀한 분석을 거쳐 그것이 무엇인가가 보내는 인위적인 신호일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자연현상과는 분명히 그 패턴이 달랐던 것이다. 그에 따라 우주항공청은 곧바로 확인을 위한 탐사대 발사 계획에 착수하였다. 안 그래도 해왕성 너머의 원거리 탐사를 위한 유인 우주선 개발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우주항공청으로서는 분명한 목적을 갖게 된 셈이었다. 그에 따라 모두들 무엇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동기부여 되어 계획 추진에 열을 올렸다.
22세기에 들어서 우주항공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핵융합발전을 추진체로 하는 우주선의 개발로 항해 속도가 과거 우주선 대비 거의 열 배는 빨라졌다. 핵융합발전은 이미 오래전 완성된 기술이었으나 문제는 그 충격이나 속도를 견딜만한 우주선 선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러다 과학자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화성에서 찾아내었다. 화성의 수 킬로미터 지하에서 특별한 광물질을 발견한 것이었다. 기존 우주선 선체 구성에 쓰이는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복합소재에 그 광물질을 섞으면 강도가 다섯 배는 더 강해졌다. 덕분에 더 얇고 더 크게 우주선 선체를 건조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유인 원거리 우주탐사를 위한 종합적인 기반이 완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희망호가 역사적인 여정에 올랐다.
2.
지구를 떠난 지 일 년 반이 지난 어느 날, 희망호는 명왕성을 한참 지나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체불명의 신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동안 신호의 패턴이 몇 차례 바뀌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었다. 희망호의 승무원들은 그 신호가 외계 문명의 신호인지 아니면 어떤 자연적인 현상인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몇 년간 신호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오는 것으로 봐서 그 발신지 또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리고 AI가 시뮬레이션 한 계산에 따르면 이제 한 달 후면 우주선이 목표지점에 다다를 것이었다. 과연 인류가 그동안 꿈꿔왔던 외계 문명과의 조우가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자연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인가? 이제 그 결과가 밝혀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승무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느라 바쁜 오후 시간을 보낸 김태평 박사는 함장인 조규함 대령과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래야 짙은 갈색의 에너지 바 한 개 그리고 미네랄 음료 한 잔이 전부였지만, 인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완전식이었다. 지구인들에게야 '살기 위해 먹느냐' 혹은 '먹기 위해 사느냐'가 오랜 논쟁거리지만, 적어도 우주인에게는 아니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먹는다'가 정답이었다. 그만큼 먹는 즐거움이 철저하게 배제된 우주 생활. 그나마 일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먹어온 음식들에 익숙해져서인지 몸도 마음도 그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 박사가 에너지 바를 다 먹고 미네랄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경보음이 울렸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AI의 건조한 목소리였다.
"전방 일만 삼천 킬로 지점에 암석지대 출현. 승무원 전원 정위치 바람."
암석지대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승무원들 모두 서둘러 자기 자리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화면을 응시하였다. 화면에는 마치 지구 하늘의 양떼구름처럼 끝없이 펼쳐진 암석지대가 나타났다. 물론 실물은 아니고 시뮬레이션된 화면이었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어 보였다. 그대로 나아갔다가는 선체가 암석과 충돌해 그대로 끝장날 것처럼 보였다. AI가 분석된 데이터를 보여 주었다. 우주선의 예상 진행경로와 함께 제시된 통과 확률은 27.75%.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결정이 필요하였다. 조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역추진 하여 속력을 줄이고 우현으로 선로를 튼다. 최대한 신속하게 암석지대를 벗어나도록!"
속력을 줄인 희망호가 본격적인 암석지대에 들어서기 직전 크게 반원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선회하였다. 그 옆으로 우주선보다 몇 배 더 커 보이는 암석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연이어 커다란 암석이 나타났다. 그 사이로 우주선이 가까스로 통과하였다. 승무원들 모두 심한 진동을 느끼며 숨조차 멈춘 채 주먹을 꼭 쥐고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기도하는 일밖에. 암석 사이를 곡예하듯 스쳐 지나가는 우주선의 항해가 한참을 이어지고 나서야 저 멀리 암석지대의 끝이 보이면서 까만 어둠이 이어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렇게 희망호가 암석지대를 무사히 벗어나는가 싶던 순간,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선미 부분이 암석과 충돌한 것이었다.
'삐. 삐. 삐!' 경고음이 울리고 화면에 우주선 내부 구조도가 나타났다. C-13 구역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C-13 구역 회복불능의 손상발생으로 폐쇄합니다. 통로가 이어진 C-13, 14, 15 구역 전면 통제 합니다."
AI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리며 자동조절시스템이 손상된 구역을 폐쇄시켰다. 이어서 우주선은 암석지대를 빠져나와 검은 우주공간으로 나아갔다. 우주선의 선미쪽 옆부분에서 하얀 기체가 검은 우주공간으로 뿜어져 나오다 그쳤다. 그렇게 희망호는 처음으로 마주친 위기상황에서 결코 작지 않은 손상을 입고 말았다. 그나마 그 정도의 손상만으로 위험지대를 벗어난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우주공간이라는 게 워낙 예측불허의 공간이므로.
사실 명왕성까지의 항해는 과거에 발사한 무인 우주탐사선으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근거로 한 항해였다. 그간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수차례 무인 우주탐사선을 쏘아 올렸다. 그렇게 해서 명왕성까지의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였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 항해경로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데이터가 상당히 부족한 미지의 공간이 많았다. 지금 희망호가 항해하는 방향은 더 그랬다. 때문에 유인 우주선인 희망호가 나아가는 매 순간이 인류가 새롭게 써 나가는 역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암석지대가 나타났고, 희망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혀 관측되지 않았던 암석지대가 나타난 것이 이상한 일이기는 하였다. 적어도 그 정도의 규모라면 진작에 발견되어 희망호의 항해경로에 반영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새로 생긴 것? 어쩌면 우주공간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희망호 승무원 어느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인간은 너무도 미약한 존재였다.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또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때도 희망호가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중단할 수는 없는 일. 저기 저 앞에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외계문명의 신호가 있는 한 희망호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었다. 과연 한 달 후 외계 문명과의 조우는 이루어질 것인가?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