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홈베이킹
오랜만에 빵을 구웠다. 아니 사실 일주일에 두세 번 빵을 굽기는 하지만 그것은 가게에서 팔 파운드케이크를 굽는 거고, 취미로 즐기는 홈베이킹이 오랜만이다.
단팥빵을 구웠다. 요즘은 흔하디 흔한 게 빵이고, 맛있는 빵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유독 정이 가는 게 단팥빵이다. 그래서 가끔 단팥빵을 굽는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아무리 춥고 배고팠던 기억도, 아무리 힘들고 가슴 아팠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였다.
단팥빵은 나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이다. 밥 먹듯 밥 굶던 어린 시절, 단팥빵을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특별한 날에나 겨우 한 개 먹을 수 있었던.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맛과 함께 입안에서 사르르 녹던 그 맛. 그날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그러나 그다음 날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단팥빵 하면 달콤한 맛과 함께 그 시절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달콤 쌉싸름이라고 할까.
이제는 단팥빵의 맛도 예전 같지 않고, 모양도 크게 끌림이 없지만, 그래도 단팥빵을 굽는다. 좀 더 달콤하라고 통팥앙금에 더해 고구마 페이스트를 넣고, 모양 좋으라고 윗면에 소보로도 살짝 얹었다. 구수한 빵냄새와 더불어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단팥빵이 제법 그럴듯하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지며 입가에 미소가 잡힌다.
채 식지 않은 따끈한 단팥빵을 한입 베어 물어본다. 부드럽다. 그리고 기대했던 익숙한 달콤한 맛... 이 느껴... 지지 않는다. 에잇, 고구마 페이스트를 괜히 넣었다. 과유불급. 단팥과는 다른 낯선 달콤함이 따로 도는 느낌이다.
살다 보면 원칙을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변화를 주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그때가 그때 같아서 헷갈리기도 하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단팥빵을 구우며 또 한 번 배웠다. 단팥빵에는 단팥만 넣자. 그래야 추억의 단팥빵이지.
※ 단팥빵은 비닐 포장하여 냉동실에 보관한다.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우면 살짝 따끈하고 부드러운 단팥빵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