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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지 열두 시간째 달리는 중

베트남 여행 2025 #1

by 이은호


몇 개월 전에 지인들과 부부동반 베트남 골프여행을 약속하였다. 삼 년 전 코로나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자마자 베트남으로 달려갔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보지 못하였다. 북카페 일을 하면서 사장님 눈치도 봐야 하고 아내도 하는 일이 있어서 일주일이나 시간을 빼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아니 그 사정을 핑계로 억지로라도 날짜를 잡아야 여행이 현실화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11월 12일을 출발일로 잡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은 19일. 베트남에 계시는 김사장님 부부를 제외하고 다른 세 팀의 부부가 항공권 예매를 마쳤다. 항공권을 끊고 나니 갈까 말까 망설이던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였다.


여정은 워낙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김사장님이 짜셨는데, 삼 년 전 방문했던 뀌년의 좋았던 기억이 너무도 강렬하여 꼭 포함시켰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곳은 골프코스도 괜찮았지만 해변을 낀 리조트에서 보는 자연 풍광이 너무 좋아서 그냥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하여 김사장님께서 세 가지 안을 수립하셨고, 사모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그중 하나가 선택되었다. 당연히 뀌년이 포함된 계획이었다. 이후 차량 렌트, 골프장과 숙소 예약 등은 김사장님께서 최적의 조건을 찾아 진행하셨고, 우리는 가만히 앉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의 립서비스로 때웠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출발일이 다가왔다. 출발 불과 며칠 전 김사장님 사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력한 태풍이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을 강타하여 엉망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셨다. 엄청난 재산 손실에 인명 피해도 났다고 했다. 그리고 연일 쏟아지는 비에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셨다. '괜찮아요 뭐. 날씨가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즐기는 거죠.'라고 말씀드렸지만, 주관하는 김사장님 부부 입장에서는 모처럼의 여행을 망칠까 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날씨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건 시간에 맞춰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


11월 12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여유롭게 김해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출국장에 들어서서는 깜짝 놀랐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어쩐지 요즘 광안리에 사람들이 뜸하다 했더니, 다들 김해공항에 와있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요즘이 유래없는 불경기라고 하는 말이 완전 거짓말이었다. 불경기는 무슨, 다들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중 하나로 비췄겠지만.


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창구에서 발권하고 수화물 맡기는데 한 시간, 보안검색과 출국수속 밟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겨우 통과하여 탑승 게이트에 헐레벌떡 도착하고 보니 이미 승객들이 다 탄 끝물이었고, 함께 가는 일행인 문사장님 부부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인사 나누고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부산-호치민 항공편이 큰 비행기였음에도 완전 만석이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였다. 원래는 출국수속 마치고 느긋하게 모닝커피 한잔하면서 탑승시간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웬걸 출발부터 혼이 쪽 빠졌다.



호치민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 찾아 밖으로 나오니, 김사장님 부부께서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그리고 신부장님 부부도 나와 계셨다. 신부장님은 내가 베트남에 근무할 때 함께 근무했던 설비 엔지니어다. 나는 3년 반을 근무하고 본사로 복귀하였지만, 신부장님은 본사와 베트남을 오가며 나보다 훨씬 긴 기간을 베트남에서 근무하였다.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프리랜서로 본사 설비를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슈퍼바이저 역할을 여러 번 수행하였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으로 옮기는 설비 이전 작업을 삼 개월에 걸쳐 완료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베트남에 일 때문에 올 일은 없을 거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실은 이번 여행도 신부장님이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시점에 맞춰 기획한 것이었다.


김사장님 부부, 신부장님 부부 그리고 한국에서 간 문사장님 부부와 우리 부부. 모두 네 쌍이 완전체로 모였다.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28인승 렌터카. 일주일의 여행기간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차였다. 운전기사는 환한 미소가 보기 좋은 젊은 분이었다. 버스가 공항을 출발하여 느리게 도로를 달렸다. 많은 차들이 엉켜 복잡한 가운데, 그 사이를 끊임없이 파고드는 오토바이 행렬.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래 이게 베트남이지.' 인구 일억 명으로 남한의 두 배, 평균연령 33세로 우리나라보다 열 살이 젊은 베트남. 그런 베트남도 최근 들어 출산율 저하로 고령화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변함없이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자 탁 트인 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씽씽 지나가는 풍경에 속이 뻥 뚫렸다. 연일 비가 내렸다고 하더니 우리를 환영하는 건지 해가 방긋. 날씨도 좋았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냐짱 조금 못 미쳐 있는 아나라 골프리조트. 뀌년까지 올라가야 했으나 너무 멀어 중간에 한 템포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약 400킬로에 이르니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예상 소요시간 다섯 시간. 오래전에 그곳보다 가까운 달랏까지 가는데 여덟 시간이 걸린 걸 생각하면 도로사정이 많이 나아진 셈이다. 수년 전부터 호치민~하노이 간 고속도로를 건설 중이라고 한다. 총연장이 1,700킬로라고 하니 베트남이 정말 길기는 긴 나라다. 우리 여정에서 가장 먼 뀌년까지가 650킬로. 거기까지는 70% 정도 고속도로가 완성되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국도를 타야 했다. 참고로 베트남 총면적은 33만 제곱킬로로 남한의 3배가 넘는다. 남북길이 1,650킬로, 동서폭 최대 650킬로, 최소 50킬로로 허리가 잘록한 미인형 땅덩어리이다. 대신 엉덩이가 빵빵한.


이번 골프여행 여정은 아래와 같다. 호치민에서 출발하여, 냐짱을 거쳐 뀌년에 갔다가 다시 냐짱을 거쳐 판티엣과 동나이를 돌아 다시 호치민으로 복귀하는 코스이다. 오전에 공치고 오후에 이동하고. 골프에 충실한 여행이지만 골프보다는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 즐거웠다.



점심은 차 안에서 김사장님 부부께서 준비하신 김밥으로 때우고, 화장실에 간다고 중간에 두 번 정차한 것 외에는 줄기차게 달렸음에도, 목적지에 도착한 건 이미 깜깜해진 밤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택시 비행기 버스, 이동수단을 바꿔가며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빈티엔의 아나라(ANARA) 골프리조트. 리셉션 데스크에서 체크인하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물으니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대신 좀 떨어진 마을 식당에서 배달이 가능하다며 메뉴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오징어 요리가 맛있다고 하였다. '오징어 요리? 잘 밤에 소화가 안 될 텐데.' 하면서, 볶음밥과 오징어 요리를 주문하였다. 그러고 나서 짐을 풀기 위해 배정받은 숙소로 가보니 이게 웬일? 한 부부당 2층 빌라 한 채씩을 주는 게 아닌가! 1층은 거실 겸 주방 그리고 2층에 욕실까지 딸린 커다란 방 두 개가 있었다. 둘이 잠을 자기에는 커도 너무 큰 공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픈한 지 2년밖에 안되어 홍보차 선심을 썼던 것이었다.


각자 배정된 빌라에 짐을 넣어 두고 김사장님 부부가 묵는 빌라로 다 모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음식이 배달되었다. 한참 허기진 상태에서 기대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어허! 볶음밥 대신 볶음면이 들어 있었다. 화면에서 메뉴를 잘못 보고 밥대신 면을 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면에도 오징어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오징어 요리를 별도로 시키는 게 아닌데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기와 달리 맛이 있었다. 볶음면도 맛있고, 오징어도 전혀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사실은 오징어가 아닌 한치였던 것이다. 다들 술도 한잔 하면서 주린 배를 양껏 채웠다. 사람이 여덟 명이나 모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긴 여행길에 피곤하기도 하고 시간도 늦어 하품이 절로 나왔다. 하품은 전염병이라고 했던가. 돌아가면서 하품을 해대는 바람에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고, 내일의 굿샷을 기대하며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행 첫날밤,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씻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꿈결에서도 몸이 어디로 실려가는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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