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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07. 2022

골프와 인생

* '골프와 인생' 제목처럼 거창한 이야기는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랜만에 아파트 지하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연습장에서 느긋하게 몸 풀고.. 어프로치 아이언 우드 드라이버 순으로 땀 좀 흘려 보려고 맘먹었는데.. 생각과 달리 힘만 들어가고 공은 영 맞지를 않았다.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손을 타고 느껴지는 깔끔한 느낌을 기대했는데.. 타구음은 둔탁하고 몇 치지 않아 팔만 저려왔다.


결국은 채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올라오고 말았다.

골프 연습마저 뜻대로 안 되는 요즘이다.




현직에서 은퇴를 하고 골프 라운딩 기회가 줄어든 데다가.. 이어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혀 해마다 가던 동남아 골프여행도 . 그러다 작년 11월 어느날 거의 2년 만에 라운딩을 나가게 되었다.


단풍이 짙게 밴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 나는 화창한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라운딩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서 보는 필드는 무척이나 낯설고 어색하였다.


첫 티샷은 어정쩡한 스윙으로 겨우 페어웨이로 보냈지만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잇단 헛스윙뒤땅에 생크까지..


'하.. 이렇게 해서 오늘 18홀을 어떻게 마치지..'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골프를 배운 지 15년이 넘었고 그동안 라운딩을 수백 번은 나갔는데.. 아무리 오랜만에 필드에 나왔기로서니 이렇게나 안 맞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첫 홀을 망치고 어영부영 두세 홀이 지나가자..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감이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전반을 식은땀을 흘려가며 겨우겨우 마치고.. 잠깐의 휴식 뒤 후반 라운드에 들어갔는데.. 정말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막걸리 한잔에 긴장이 풀렸는지 후반 첫 홀 티샷부터 공이 쭉~ 뻗어 나갔고.. 아이언이 손에 쫙쫙 달라붙는 게 그림 같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린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결과 후반 나인홀 성적은 버디 2개, 파 4개.. 합계 2개 오버를 쳤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성적이었는데.. 마지막 홀에 변두리 투온을 하고 포 퍼트로 더블을 기록한 게 옥에 티였다.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먼저 골프코스를 살펴보면.. 언덕이 있고 계곡이 있고 물이 있고 벙커가 있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만일 골프코스가 도그레그(dogleg)도 러프도 없는 평평한 평지에.. 계곡도 물도 벙커도 없고.. 그린마저 바둑판처럼 반듯하다면 어떨까?

정말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희로애락이 있고.. 굴곡진 고난과 환희의 순간이 있어야 빛이  것이다.


매번 골프를 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단 하루도 샷감이 같은 날이 없다.

드라이버가 잘 맞으면 퍼트가 문제고.. 아이언이 잘 안 맞는 날은 어프로치로 겨우 체면을 살린다.


드라이버가 잘 맞아서 만만한 거리가 남게 되면.. 버디 욕심에 힘이 들어가 여지없이 뒤땅을 때린다.

드라이버가 잘 안 맞았을 땐 맘 편하게 끊어가면 되는데.. 3번 우드를 들고 기어이 그린에 올리겠다고 있는 힘껏 휘두르는 순간 심슬라이스로 OB가 나고 만다.

'어차피 인생은 한방~!'이라며 3번 우드를 들고.. 결국 그 홀에서 양파를 하고 만다.

어프로치로 홀컵에 잘 붙이면 파 아니라도 보기를 하는 자리에서 양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은 따박따박 치는 사람이다. 공이 잘 맞으면 잘 맞은 대로 잘못 맞으면 잘못 맞은 대로.. 그 상황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따박따박 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순리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지.. 괜한 욕심을 부리다간 십중팔구 낭패를 보게 된다.


골프가 우리네 인생사와 비슷한 게 또 있는데..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골프공이 안 좋은 곳에 떨어졌을 때 은근히 옆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럴 때 남이 안 본다고 슬쩍 발로 차서 좋은 곳으로 옮긴다고 다음 샷이 '굿샷~!'이 나올까?

보통사람이라면 거의 십중팔구 미스샷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고.. 그 찜찜한 기분이 마음속에 남아 스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개중에 보면 습관적으로 공을 발로 건드리거나 없어진 공대신 몰래 알까기를 하고.. 그린에서도 볼마크를 원래 위치에서 10cm쯤 앞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인생도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다.

자기 자신이 반칙을 일삼고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 남을 속이는 행위쯤이야 뭐 꺼릴 게 있겠는가..


소위 자칭 타칭 지도자라고 하는 정치인들 중에.. 불법을 저지르고 반칙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는 행위는 다 괜찮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꼭 입에 거품 물고 남의 탓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 스코어를 직접 기록해가면서 진솔하게 골프를 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코어를 내가 적으면 스코어를 속일 수가 없다.

바로 내가 아니까..




올해 1월에 다시 라운딩을 나가게 되었다.


지난번 후반에 워낙 성적이 좋았기에 한껏 고무되어 첫 홀부터 드라이버를 힘껏 휘둘렀다.

'땅~!'

그날 라운딩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추운 날씨에 옷을 겹겹이 껴입은 게 문제였을까.. 아님 지난 11월의 경이로운 후반 라운딩에 자만심이 생긴 것일까.. 그만 엉망으로 치고 말았다.


18홀 동안 버디는 고사하고 파 한 개도 올리지 못했고.. 거의 100타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하고 말았다.

노 파 게임은 비기너 시절 이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이다.

한마디로 '망.했.다.'


바로 그게 골프고 그게 인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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