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베트남 여행 2025 #6

by 이은호


베트남 골프여행의 마지막 날. 생체시계는 여전히 정확하여 아침 6시에 잠을 깨웠다. 간단하게 씻고 나서 전투복장으로 차려입고 리조트를 나섰다. 밖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작업자들이 곳곳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분들의 땀과 노력이 있기에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쾌적하고 즐겁게 놀다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식사할 때까지는 여유가 있는 시간. 퍼터를 들고 연습그린으로 향했다. 동나이 골프장이 홈그라운드인 김사장님께서 그린이 엉망으로 공이 구르지 않는다는 언질을 주셨기 때문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아니 그린 상태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안심하고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침식사는 당연하게 쌀국수를 주문하였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쌀국수는 꼭 먹어야 했다. 라임 짜 넣고 칠리와 캐러멜 소스 넣고 매운 고추 넣고 고수 듬뿍 넣고, 맛보는 시원하고 진한 국물맛.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맛이 나는지. 금세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식사 후 공짜로 주는 냉커피 손에 들고 대기장소로 내려가니, 김사장님께서 연습장에서 샷연습을 하라셨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라운드인데 후회 없이 잘 치라며. 공 스무 개를 받아 연습 타석에 섰다. 오래전 봤던 프로 지망생들의 샷 하던 모습을 그려보며, 어프로치 아이언 우드 드라이버를 차례로 몇 개씩 쳐보았다. 괜찮았다. '어, 이 정도면 괜찮은데?' 아까 연습그린에서 퍼팅도 해봤고, 왠지 오늘은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장님들 연습 마치고 일행 모두 1번 홀 티박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초록과 파랑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장 찰칵. 잘 가꾸어진 페어웨이,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 파란 하늘엔 구름이 적당하게 떠 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까지. 라운딩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날, 이번 베트남 골프여행의 마지막 라운딩에서 겨우 체면치레를 하였다. 13개 오버 85타를 쳤다. 아쉬웠던 건 파를 11개나 했음에도, 트리플을 두 개나 하는 바람에 점수를 다 까먹은 것이다. 한번은 과감하게 질러야 하는 홀에서 소극적인 플레이를, 한번은 철저하게 절제해야 하는 홀에서 무리한 게 실패로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가장 아까웠던 건 파3 홀에서 버디를 놓친 것이다. 불과 1미터 남짓, 그것도 살짝 오르막이라 과감하게 똑바로 치면 되는데, 홀 바로 앞에서 섰다. 한 바퀴만 더 굴렀어도 되었는데 너무 소극적으로 쳤던 것이다. 그 홀에서 카트에서 내려 사진 찍는 내 모습을 본 신부장님이, '사진 찍는데 정신 팔지 말고 버디에나 신경 쓰라'고 했는데 딱 그 짝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대신에 예쁜 노랑꽃 사진을 남겼으니 만족.




어쨌거나 마지막 라운딩을 기분 좋게 마치고 나서, 우리는 동나이 골프장을 뒤로하고 호치민 시내로 향했다. 명목이 골프여행이지만 그래도 비행기 타기 전 시내구경은 하고 가자 싶었던 것. 그리고 사모님들의 쇼핑 욕심도 있었다. 버스가 호치민에 접어들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기 때 내리는 강한 빗줄기였다. 시기적으로 우기가 끝날 때인데, 마지막 날이라고 시원하게 서비스해 주는 건지도 몰랐다. 첫번째 목적지인 시내 중심에 있는 벤탄시장에 도착하자 비가 딱 그쳤다. 벤탄시장은 현지인들보다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먹거리, 의류, 가방, 신발, 공예품, 여행 기념품 등 없는 게 없는 곳이다. 그 규모가 상당하여 제대로 구석구석 구경하려면 네댓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바쁜 몸.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견과류 가게로 직행하였다. 김사장님 사모님께서 자주 들리는 믿을만한 곳이었다. 거기서 마카다미아와 캐슈너트를 샀다. 그러나 아내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바로 두리안. 아내가 과일가게로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지옥의 냄새와 천상의 맛을 가졌다는 과일의 왕 두리안.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물론 나도 좋아한다. 일단 맛을 들이면 냄새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두리안은 현지에서도 가격이 아주 비싸다. 보통 소분하여 파는데, 두 줄 담긴 작은 팩에 30만 동(한화 만오천 원)이다. 잠시 망설이니 두 팩에 50만 동에 준단다. 두리안 두 팩과 잭플루트 한 팩을 샀다. 잭플루트도 냄새가 좀 나지만 두리안 냄새가 10이라면, 2 정도에 그친다. 식감이 쫄깃하고 살짝 향긋한 게 맛있다.



벤탄시장에서 나와 사이공스퀘어로 향했다. 거기서 2차 쇼핑을 한단다. 그곳은 의류가 주인데, 품질이 더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쇼핑에 별 관심이 없었다. 거기서 두 패로 나뉘었다. 쇼핑파와 발마사지파. 마침 신부장님이 베트남에서 일한다고 고생을 많이 한 터이라 발마사지를 원했다. 그래서 김사장님이 신부장님과 우리 부부를 이끌고 맛사지샵으로, 김사장님 사모님이 다른 분들을 이끌고 쇼핑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맛사지샵에 들어서니 보따리에서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직원이 쳐다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만큼 두리안은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과일. 보따리를 구석으로 밀어 놓고, 직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물에 발 담그고, 따끈한 생강차 한 모금 마시니 벌써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본격적인 발마사지. 일주일간의 다섯 라운드가 넘는 골프여행에 지치고 뭉친 근육이 말끔하게 풀렸다. 그와 더불어 기분도 한결 상쾌해졌다.


쇼핑과 발마사지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식당은 김사장님 사위가 운영하는 식당. 한국의 일류호텔에서 셰프를 했었는데, 몇 년 전 가족 모두 베트남으로 건너와 터를 잡았다. 식사 메뉴는 모둠 수육과 얼큰한 육개장. 사장님들은 먼저 소맥 한잔씩 하시고, 사모님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과일을 드시고. 두리안은 냄새 때문에 실내 취식이 안된다. 때문에 식후 디저트인 과일이 식전 입맛 돋우는 전채요리로 바뀌었다. 그날 저녁식사비는 신부장님이 계산하였다. 삼 개월간 베트남에서 일하면서 돈 많이 벌었다고 하였다. 한편 육개장이 얼마나 맛있던지, 밥 한 공기 다 말아 싹싹 비운 나는 배가 불러 수육은 얼마 먹지를 못하였다. 그 모습을 본 신부장님이 자기가 내는 거니 맘껏 먹으라고 성화였다. 그 마음이 고마워 억지로 몇 점 집어 부른 배 위에 얹었다.


저녁식사 끝내고 공항으로 직행. 이제 귀국할 시간이 되었다. 떤선녓 공항에서 김사장님 부부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일주일간 먼 거리를 안전 운행해 준 운전기사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나서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공항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여유 있게 출국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밤비행기는 역시 힘들다. 게다가 몸도 피곤하고 한잔 술에 정신도 나른하고. 다소 지체된 00:50분에 손님을 태우고 나서도, 뜸 들이던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는 힘차게 달려 땅을 차고 날아올랐다. '아, 이제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베트남을 떠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쉬움과 그리움이 반반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베트남으로 발걸음을 옮기는지도 몰랐다. 기내식도 마다하고 물만 한잔 마시고 좌석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비몽사몽. 어느덧 착륙준비 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창문밖에는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대충 짐 풀고 샤워를 하였다. 그리고 잠깐 꿈나라로. 살짝 늦은 점심식사하고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은 쉬라고 했지만, 내가 없는 동안 독박 근무를 한 사장님에게 미안하여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사장님은 부지런하게도 가게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놓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벌써 연말인가? 시간이 정말 빠르다.


내가 좋아하는 따끈한 카페라테 한잔 내려 창가로 갔다. 손에 온기가 돌고 한 모금 마시니 씁쓸 고소한 그 맛과 느낌이 좋았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베트남에서 에너지 잔뜩 충전하고 왔으니 또 열심히 달려봐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해 보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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