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아 작가님 에세이집
기다리던 채수아 작가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 에세이집이 다른 책들과 함께 도착하였다. 오전에 볼일보고 일찍 도착한 가게. 손님이 뜸한 시간, 카페라테 한잔과 책을 들고 창가에 자리 잡는다. 독서대에 책 올리고 따끈 고소한 커피 한 모금하니 책 읽는 분위기가 제대로이다.
책은 사랑의 '의미' '진실' '이해' '이유'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총 팔십팔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가족 이야기지만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채수아 작가님은 수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톨릭 신자가 아닌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교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정말 존경하는 아버지 그리고 온화하신 어머니 밑에서 곱게 자란 작가님이 부모님을 거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는 작가님의 롤모델이 아니었나 싶다. 당연히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듯, 사십 초반에 학교를 나와야 했다.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병이 몸을 쇠약하게 만들었고, 더 이상 몸이 지탱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작가님의 마음병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차남인 남편이 형님을 제쳐두고 본인이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면서, 작가님에게 '거절하면 이혼하겠다.'고 경고하였다고 한다. 요즘 세대 같았으면 진짜 이혼사유였겠지만, 작가님 세대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작가님이,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그만큼 남편을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삶은 자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거친 말과 비수처럼 꽂히는 악담. 게다가 시어머니의 부주의로 작가님의 어린 딸이 큰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작가님을 지탱했던 건 기도였다. 진심 어린 기도. 그리고 그 기도가 작가님을 견디게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작가님의 진심이 통하였을까. 모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거기에는 작가님이 시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컸다. 변변치 못한 남편을 만나 역시 모진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던 시어머니. 그리고 악착같이 지켜내야 했던 자식들. 그런 시어머니의 삶을 작가님이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시어머니의 마음도 열렸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님과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는 시어머니로부터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진정 어린 사과와 따뜻한 마음까지 받아내었다.
팔 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마음에만 남아있는 분이 되었지만, 작가님이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쁜 감정이 전혀 없고, 작가님도 떳떳하게 시어머니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책에는 시어머니와의 이야기 외에도 작가님의 어린 시절, 부모님 이야기,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아이들과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따뜻함과 사랑이다. 작가님은 남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분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분이기도 하다. 그랬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힘든 삶을 버텨내고 남들을 사랑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
책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작가님이 살아오면서 한 일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권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은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때로는 가장 고통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남과 달라 마음에 안 든다고 함부로 떼어낼 수 없는 존재. 싫으나 좋으나 얼굴 보며 부대껴야 하는 존재가 가족이다.
내가 글쓰기 모임을 하며 젊은 사람들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다. 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관계회복을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지나친 간섭과 통제, 자식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손에 쥐고 휘두르려는 말과 행동 등.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과 반항.
그들에게 나는 '나 자신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부모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나와 부모님을 마치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처럼 설정하고, 제삼자적 시점에서 관찰해 보라고 한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부모의 입장이 이해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쁜 감정이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추상적인 조언을 해주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작가님의 책을 권하려고 한다. 작가님의 책을 읽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고.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보자고. 작가님 책에서 처럼 사랑의 '의미' '진실' '이해' '이유'를 생각하며.